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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희운 Apr 04. 2023

드디어 완성된 사랑의 형태

<길복순> 단평 

※ <길복순>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변성현 감독의 다섯 번째 연출작 <길복순>이 3월 31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킬러이자 동시에 엄마인 길복순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다른 무엇보다도 전도연이 킬러 역할을 맡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 중 손꼽히는 배우가 워킹맘 킬러 역할을 한다니,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상당히 호기심을 자극했다. 공개된 <길복순>을 다 보고 나서 들었던 첫 번째 생각은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을 한다면, 전도연이 연기한 길복순이라는 캐릭터가 펼칠 또 다른 활약을 더욱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맞을 것이다. 그만큼 <길복순>은 최근에 봤던 영화들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보고 즐길 수 있었던 영화였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단순히 '킬링 타임' 즉 시간 때우기에만 좋은 영화라는 뜻은 아니다. 어느 정도 완성도가 있으면서도 보고 나서 왠지 모르게 자꾸 생각나게 하는 나름 여운(?)을 갖춘 영화라고 느껴졌다. 


<불한당>, <킹메이커> 변성현 감독의 이전 작품들을 연이어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사랑'이다. 그것이 같은 성별을 가진 이들의 사랑 혹은 애증이건, 혹은 나와 다른 타인 간의 뒤틀린 사랑이건 변성현 감독의 영화 속에서는 늘 사랑이 가장 큰 화두였다. <길복순>도 조직 내에서 손꼽히는 킬러인 길복순이 조직을 떠나 사는 것을 결심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도 가장 중요한 주제는 바로 '사랑'이다. 


<길복순>에서 모든 사건은 '사랑'때문에 벌어진다. 복순이 속한 킬러 회사 MK의 차민규 대표가 길복순을 좋아하기 때문에 길복순은 회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한희성은 낮은 등급의 일 밖에 받지 못하며, 차민규 대표에 대한 차민희 이사의 사랑으로 인해 길복순은 다른 킬러들의 타깃이 되어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게 된다. 변성현 감독의 다른 작품에서도 으레 그러했듯, <길복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인공 길복순을 제외하고 대부분 '사랑'으로 인해 파국을 맞는다. 길복순에 대한 차민규의 사랑으로 높은 등급에 올라가지 못했던 한희성은 결국 자신의 애인인 복순에게 죽음을 맞이하고, 오빠에 대한 뒤틀린 사랑으로 길복순을 자극하던 차민희도 길복순에게 죽고, 길복순에 대한 사랑을 계속 간직하던 차민규도 길복순에게 죽는다. 복순의 손에 죽은 이 인물들은 모두 제대로 된 사랑을 하지 못했던 인물들이다. 한희성을 길복순을 좋아하지만 길복순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기도 한 인물이었고, 차민희는 자신의 오빠를 사랑하는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차민규 대표는 복순을 사랑하기에 자신의 칼로써 복순을 곁에 두려고 했지만,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인해 복순을 가장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넣는 인물이 되었다. 


영화 속에 등장했던 대부분의 인물들이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비극적인 엔딩을 맞이한 이전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나름의 해피엔딩을 맞는 영화이다. 이 해피 엔딩을 맞이하는 인물들이 바로 복순과 그녀의 딸 재영이다. 영화 초반 복순은 딸인 재영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과는 사이가 좋은 것처럼 보인다. 복순은 희성과 민규에게 딸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다른 인물들과 다르게 복순은 늘 재영과 투닥거린다. 복순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처리할 때, 몇 수 앞을 내다보면서 상황을 돌파하고 해결해나가지만 딸에게는 그런 것들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담배를 피우는 딸과의 대화를 시도해 보지만 제대로 통하지도 않고 복순의 분통만 터진다. 다른 것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잘 굴러가는데 딸과의 일들은 도무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를 않는 것이다. 이러한 복순과 재영의 관계성 밑면에는 서로에게 모든 것을 솔직하게 오픈하지 못한다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재영은 자신이 갖고 있는 비밀로 인해, 복순은 자신의 딸에게 자신의 직업에 대해 알릴 수 없다는 비밀로 인해 이들 사이에서는 벽이 생기고 만 것이다. 


이러한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은 복순이 학교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 순간이다. 재영은 자신의 비밀로 자신을 협박하는 학교 동기 남자애를 가위로 찌르고 복순은 이 일로 인해 학교로 불려 간다. 재영은 자신의 비밀을 솔직하게 복순에게 털어놓지만 복순은 딸의 비밀에 놀라고 당황해 자신의 딸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 일을 계기로 완전히 닫혀있던 두 사람의 세계는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엇나가기만 했던 두 사람의 대화는 싸우는 형식이지만 조금씩 서로 주고받는 형태로 바뀌고 완전히 오픈된 형태는 아니지만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는 형태로까지 바뀌어 간다. 처음에는 딸인 재영이 엄마인 복순에게 마음을 여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의 엔딩에 이르러서는 재영도 엄마 복순의 비밀을 알게 되었지만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복순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특히 재영이 답답하다고 복순에게 자신의 방문을 닫고 나가지 말라고 하는 장면은 서로에게 비밀만 가득하고 닫혀있었던 두 사람의 벽이 완전히 무너지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완전히 받아들이며 '해피 엔딩'을 맞이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엄마와 킬러라는 다소 낯선 조합으로 시작한 <길복순>은 변성현 감독의 전작인 <불한당>과 <킹메이커> 속 모든 사랑이 결실을 이루지 못하고 파멸을 맞이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엄마와 딸 사이의 관계성에서는 유일하게 행복한 결말을 허락한다. 이는 가족 간의 관계 속에서만 진정한 사랑이 피어날 수 있다는 진부한 메시지가 아니라, 닫힌 마음을 열고 비로소 서로에게 모든 것으로 오픈하고 서로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진정한 사랑이 완성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길복순>은 보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영화가 분명하지만 변성현 감독의 이전작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사랑이라는 주제가 드디어 완성된 형태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만하다. 앞으로 변성현 감독은 자신이 계속 이야기해 왔던 사랑이란 주제를 어떤 또 새롭고 신박한 방식으로 풀어나갈까? 그렇기에 다음에는 변성현 감독이 또 어떤 차기작으로 우리를 찾아올지 벌써부터 기다려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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