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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희운 Feb 27. 2024

민족의 아픔을 승화시킨 K오컬트

<파묘> 단평

※ <파묘>의 강력한 스포일러 및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 영화계에서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오컬트 영화를 꾸준하게 제작해 온 장재현 감독의 신작 <파묘>가 드디어 개봉했다. 전작들에서는 천주교-기독교-밀교 등 외부의 종교들을 다뤄왔다면 이번 신작에서 장재현 감독은 이제 외부가 아닌 내부 즉, 한국의 토착 종교인 무속 신앙을 다룬다.



영화는 큰 금액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과 그의 제자 봉길로부터 시작한다. 의뢰를 받고 LA에 도착한 화림과 봉길은 대대로 기이한 저주를 받은 한 집안을 만난다. 그 집안에서는 계속해서 장손들이 이상한 일에 휘말리고 있었고, 화림은 그들을 보면서 조상의 묫자리가 문제임을 알아챈다. 자신들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눈치챈 화림은 풍수사 상덕과 장의사 영근을 만나 이 일을 함께 해결하기로 한다. 본격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상의 묘지를 찾아가고, 상덕은 조상의 묘가 묻힌 곳이 땅 중에서도 가장 질이 안 좋은 악지임을 눈치챈다. 상덕은 일에서 손을 떼려고 하지만 화림의 설득에 못 이겨 결국 묘를 이전하기로 하고 관을 꺼내는데, 그 과정에서 얘기치 못하게 관이 열리고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면서 네 사람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기 시작한다.


<파묘>의 이야기는 크게 두 갈래로 갈린다. 첫 번째 이야기는 앞서 서술된 조상의 묫자리를 파헤치는 이야기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그 조상의 묘 아래 묻혀있던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관을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사실 <파묘>의 첫 번째 이야기는 두 번째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빌드업에 가깝다. 영화는 자신이 정말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위해 상덕, 영길, 화림, 봉길 네 명의 캐릭터를 한 이야기에 모이게 만든다.


첫 번째 이야기의 말미에서 굳게 닫혀 있던 조상의 묘가 열리고 악귀로 변하게 된 조상이 자신의 장손들을 찾아가기 시작하면서 파묘를 요청한 상주에게도 결국 악귀가 덮치고 만다. 악귀에게 씐 상주는 테이블 위로 올라가 이상한 말을 외치기도 하고,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라고 일본어로 말을 하기도 한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이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 “는 말이다. 두 번째 이야기로 전개되면서 악귀가 된 조상이 바로 친일파였다는 점이 드러나는데,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 “는 문장은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나라의 정기를 끊기 위해 일본인들이 곳곳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설을 영화 속에서 그대로 재현한 말이다. 즉, 악귀가 된 조상의 이야기는 영화가 두 번째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위한 밑거름으로 이제부터 영화가 본격적으로 말하고 싶은 바를 전개시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악귀가 된 조상을 성불시키기 위해 관을 통째로 태워버린 네 사람. 무덤이 파내진 자리를 마무리하던 중 한 인부가 무덤에서 나온 괴이한 생명체를 삽으로 죽여버리고, 그 뒤로 인부는 고통을 호소하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그의 모습을 보고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상덕이 다시 묏자리로 가서 살피던 중 관이 묻혔던 땅 더욱 깊은 곳에서 또 다른 관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기이하게 세워져 있던 관을 확인한 상덕은 관에 대한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 묘가 있는 곳으로 가던 길에 있던 절에 들려 관을 잠깐 맡기기로 한다. 그러던 중 불길하게 잠겨있던 묘에서 정체 모를 것이 깨어난다. 조상의 묘 아래 묻혀 있었던 것은 바로 일본의 음양사가 저주를 걸어 만든 실체가 있는 정령이었다. 파묻혀 있던 땅에서 나온 정령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정령의 압도적인 파괴력에 화림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봉길은 정령에게 공격당해 쓰러지고 만다. 상덕과 영길도 그들이 있는 곳으로 도착하지만, 도깨비불로 변한 정령 앞에서 그저 혼을 빼놓고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파묘>의 두 번째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다소 급격하게 전개되는 느낌이 들다가도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여러 의미들을 파악하고 보면 좀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악한 귀신이 되어버린 친일파 조상은 자신의 자손들에게 막대한 부는 물려주었지만, 자신들의 자손들에게 올바른 것을 물려주지는 못했고, 심지어 그 조상은 자신의 자손들을 죽이려고까지 했었다. 파묘를 의뢰했던 상주는 상덕이 호텔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테이블 위에서 일본어로 충성을 바치겠다고 말하는데, 그가 묵고 있는 더 플라자 호텔 창문 밖으로는 바로 1996년도까지도 남아있었던 조선총독부가 있었던 곳이 보인다. 이러한 것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 속에서 남아있는 일제 강점기의 잔재이다. 여기에 조상의 밑에 숨겨져 있던 실체가 된 정령은 과거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시절 느낄 수밖에 없었던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공포심의 이 극대화된 것이다. 정령이 무덤에서 나온 뒤 처음으로 그와 조우한 화림은 그의 모습을 보고 공포에 질려 일본어로 하는 그의 말에 자신이 그의 부하라고 일본어로 대답한다. 이 장면은 영화 초반 오프닝에서 화림이 자신에게 일본어로 말한 스튜어디스에서 자신은 일본인이 아니라고 일본어로 말하는 장면과 연결된다. 화림은 분명 자신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자신이 일본인이라고 말하고 만다. 이는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인들이 겪어야만 했던 치욕스러운 현실을 우회하여 드러낸 것과 같은 장면이다. 그 당시 일부 사람들은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 갖고 있었지만,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는 공포스러운 현실에서는 일본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화림은 자신이 아끼는 제자인 봉길이 혼수상태에 빠지자, 그를 위해서 죽기 살기로 정령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화림의 이러한 모습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화림이 어떤 상황을 겪었고, 그 상황 이후에 화림이 어떤 결심과 행동을 하는지를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 상덕은 정령이 땅속 깊숙이 박힌 말뚝을 가리기 위해 묻혀 있다는 사실을 유추해 내고, 화림을 통해 정령을 유인한 뒤 그 말뚝을 뽑아버리기로 작정한다. 화림이 목숨을 걸고 정령을 유인하는 동안 상덕과 영길은 말뚝은 찾아 헤매지만 아무리 찾아도 그 어디서도 말뚝을 찾지 못한다. 그 사이 정령은 다시 자신이 원래 묻혀있던 곳으로 돌아오고 상덕은 말뚝이 정령 아래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정령 그 자체가 말뚝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들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말뚝’은 아직도 과거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현시대에도 남아있는 실체가 있는 잔재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정신 속 깊숙이 뿌리 박힌 나쁜 것들을 끊어내야 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렇기에 상덕이 이 정령과 맞서 싸우다가 마침내 해치우는 장면도 단순한 장면이 아니라 어떠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친일파의 후손들이 아직도 이 땅에서 호의호식하며 잘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서 화림, 봉길과 같이 젊은 세대가 아닌 그들보다 훨씬 더 윗세대인 상덕이 정령을 해치우는 모습은 과거에 대한 청산이 윗세대로부터 끊어져야 이것이 다음 세대로도 계속 이어지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파묘>는 매끄러운 완성도를 지니고 있는 작품은 아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들 때도 있고, 엔딩에 이르러서는 다소 급하게 끝나는 듯한 느낌마저도 든다. 하지만 최근 아니 현대의 한국영화들 중에서 이렇게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아픔과 더불어 여전히 친일파가 남아있는 현실의 과오에 대해 앞으로 우리나라가 나아갸야할 방향성에 대해 보여준 영화가 있었나 싶다. 메시지 자체가 굉장히 우직하고 단호해 어떤 지점에서는 통쾌함마저 느껴지는 한 영화 <파묘>. 앞으로 이 작품이 시리즈로 나올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한국의 토착 종교를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우리의 민족적인 아픔을 위로하면서 그 상처를 정면으로 직면하는 작품이 더 만들어질 수 있다면 더욱 흥미진진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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