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듄: 파트 2>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봉 전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 파트 2>를 드디어 관람하였다. 아이맥스로 관람한 덕분에 압도적인 화면의 위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는데 이러한 비주얼 적인 측면 외에도 눈에 띄었던 건 바로 ’폴 아트레이데스‘라는 캐릭터가 어떻게 ’폴 무앗딥 아트레이데스‘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는지에 다룬 이야기였다.
<듄: 파트 2>는 <듄: 파트 1>의 마지막 부분에서 폴과 레이디 제시카가 간신히 살아남아 프레멘들과 합류한 모습에서부터 시작된다. 프레멘들 사이에서 이방인으로 배척되었던 폴과 제시카는 점차 그들 사회 속으로 녹아들기 시작한다. 제시카는 프레멘들의 대모가 되고, 폴은 샤이 훌루드를 타는 데 성공하며 프레멘 무리 사이에서 조금씩 전사로 인정받는다. 제시카는 베네 게세리트인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여 폴을 프레멘들이 기다려왔던 리산 알 가입으로 공고히 자리매김하기 위한 물밑작업을 시작하고, 이에 따라 점점 폴을 따르는 프레멘들이 늘어난다. 그러한 와중에 폴은 아버지인 레토 공작의 부하였던 거니 할렉을 만나 그로부터 레토 공작이 숨겨놓았던 핵무기를 손에 얻게 된다. 폴은 자신의 예언 능력을 통해 자신이 남부로 가게 될 경우 끔찍한 일 벌어지게 되는 것을 알고 남부로 가기를 극구 거부했지만, 프레멘들과 함께 은신해 있던 은신처가 발각되어 공격당하자 어쩔 수 없이 남부로 가는 것을 선택한다. 이후 어머니 제시카의 유도에 따라 생명의 물을 마시고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각성한 폴은 아직도 자신들을 불신하고 있는 남부의 프레멘들 앞에서 전지전능한 능력을 드러내 보이며 그들을 하나로 규합해 하코넨과의 본격적인 전쟁을 벌인다.
<듄: 파트 1>에서는 폴은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 휩쓸리게 된 나약한 ‘도련님‘의 모습이 강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폴은 완벽하게 구세주로 각성한다. 영화는 폴을 구세주가 된다는 암시를 초반 곳곳에서 보여주는데 제일 두드러지게 보이는 지점은 폴과 제시카가 제일 처음 프레멘들의 은신처로 들어갔을 때이다. 폴과 제시카가 자신들을 적대하는 프레멘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며 앞으로 나아갈 때 군중 속 어떤 이가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외친다. 이 대사는 성경 속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에게 저주를 퍼붓는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부르짖을 때 하는 말이다. 바로 이 대사를 통해 영화는 폴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명확하게 드러내 보인다.
캐릭터가 나아가야 할 ‘구세주’라는 방향성이 드러났지만, 영화 초반 폴은 본인이 구세주라는 자각과 확신이 없는 상태이다. 그는 언뜻언뜻 보이는 환상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내다보나 그 미래는 불완전하고 파편적인 것이라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계속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가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신이 남부로 가서 프레멘들을 규합하는 순간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러한 폴의 불완전한 모습을 지속적으로 비춰주는데, 어떤 시점에서부터 폴이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남부로 가서 생명의 물을 마신 폴은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각성한다. 이 시점부터 폴은 더 이상 망설이거나 두려워하거나 고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완전히 각성한 능력을 통해 명확한 미래를 알게 되고,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리고 자신이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완벽하게 깨닫고 거침없이 자신의 행동을 전개시키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폴을 연기하는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톤이 달라진다. 전사로서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었지만, 아직도 유약한 모습을 보였던 폴은 생명의 물을 마신 이후 시점부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프레멘 군사 회의에서 폴이 발언권을 얻기 위해서는 프레멘의 수장인 스틸가를 죽이고 발언권을 얻어야 했지만 폴은 모든 프레멘들이 모인 앞에서 프레멘들의 전통을 부정하고 자신의 능력을 통해 특정 인물들의 개인사를 줄줄이 털어놓으며 특유의 카리스마로 프레멘들을 사로잡는다. 뒤이어 모든 프레멘들을 한데 모아놓고 그들 앞에서 녹색의 낙원을 약속하겠다는 일장 연설로 그들을 선동한다. 프레멘 군사 회의 씬에서 폴이 대사를 하는 방식은 기존과 완전히 다르다. 조용조용하면서도 힘 있게 자신의 주장을 말했던 것과 달리 이 장면에서 폴은 프레멘들의 언어로 고함을 치며 그들을 완전히 휘어잡는다. 그들을 구할 구세주로서 완전히 각성한 뒤 모든 프레멘들이 모인 앞에서 그들을 낙원으로 인도하겠다고 연설하는 그의 모습은 자신을 맹목적을 따르는 이들을 이용하는 교주의 모습에 가까워진다.
그 이후 이어지는 전투씬은 이 영화가 지향하는 바가 단순히 블록버스터가 아닌, ‘폴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구세주로 각성하는가’가 중점임을 더욱 확실하게 보여준다. 파트 1의 전투씬은 가히 압도적인 비주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기존 SF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형형색색의 화려한 비주얼이 아닌 건조하면서도 차가운 색감이지만 큰 규모를 자랑하는 건축물들 속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스케일의 전투씬들이 <듄: 파트 1>이 보여주고 싶었던 궁극적인 모습이었다면 <듄: 파트 2>의 전투씬은 프레멘들의 구세주가 된 폴이 어떻게 자신의 위용을 공고히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이번 파트 2 전투씬은 프레멘들이 사막에서 위협으로만 간주되었던 샤이 훌루드를 타고 폴을 선두로 하여 일제히 아라킨 일대를 공격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하는데, 파트 1의 전투씬들과 마찬가지로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나 이 장면은 파트 1만큼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뒤이어 이어지는 캐릭터들 간의 결투씬이 더욱 강조되어 드러난다. 이후 폴은 하코넨 남작을 죽여 자신의 복수를 이루고 황제 일행을 포로로 잡는다. 황제와 직접 마주하며 대척한 폴은 황제가 직접 싸우거나 혹은 황제를 대신할 전사를 고르라고 말하고 이에 하코넨의 조카인 페이드 로타가 앞서 나간다. 이전까지 폴은 구세주로서의 면모는 갖추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직 그들을 압도할 수 있는 ‘권위’는 얻지 못했다. 그렇기에 전투씬보다도 페이드 로타와의 결투씬이 훨씬 더 중요한데, 이는 황제를 대신하는 페이드 로타와 싸워 이겨야지만 폴이 다른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자신의 왕권을 비로소 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폴이 왕권을 대표하는 왕권계승자와의 목숨을 건 혈투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이 장면은 마치 한 편의 신화와도 같이 연출된다. 폴과 페이드 로타 두 캐릭터 뒤편으로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는 이 결투씬은 이 장면을 기점으로 하여 ‘폴 무앗딥 아트레이데스’라는 새로운 구세주가 탄생할 것이라는 것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아슬아슬한 결투가 벌어진 뒤 폴은 마침내 페이드 로타와 싸워 이기고, 황제를 굴복시킨다. 자신의 권위를 비로소 획득한 폴이 아라키스 상공에서 버티고 있는 대가문들을 향해 본격적으로 전쟁을 선포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블록버스터의 외양을 갖추고 있지만, 단순히 시각적인 물량 공세만을 퍼붓는 보통 블록버스터들과 달리 <듄: 파트 2>는 이야기, 비주얼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한 면모를 보인다. 영화화에 쉽게 성공하지 못했던 과거 원작들의 실패를 딛고 새로운 시작을 알렸던 것이 <듄: 파트 1>이었다면, <듄: 파트 2>는 본격적으로 아슬아슬했던 캐릭터가 어떻게 한 행성을 지배하는 메시아로 등극하는지를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파트 2에 이르러 더욱 흥미진진해진 이야기는 이제 서로 어긋난 사이가 되어버린 챠니와 폴의 관계와 더불어 굵고 짧게 등장한 폴의 여동생 엘리아까지 대미를 장식하는 파트 3에서 이들이 어떻게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궁금증을 더한다. 2년 만에 놀라운 작품을 보여준 드니 빌뇌브 감독이 마지막으로 메가폰을 잡는 <듄: 파트 3>에서 또 다른 어떤 놀라운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올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