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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희운 Jun 10. 2024

알고 있는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일지라도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단평

※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2015년 개봉하여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자 명작의 반열로 올라선 조지 밀러 감독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속편이다. 한국에서 특히 흥행 성적이 좋았고,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한 퓨리오사 캐릭터가 워낙 인기가 많았기에, 수많은 관객들이 '퓨리오사'의 과거를 다룬 속편이 제작된다는 소식이 기대감을 표했었다. 개인적으로도 오랜 시간 기다려왔던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드디어 24년 5월 베일을 벗었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퓨리오사의 고향인 녹색의 땅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신들의 마을로 들어온 바이커족을 물리치기 위해 오토바이 연료선을 끊어버리던 퓨리오사는 바이커족들에게 걸려 납치되고 만다. 그러한 퓨리오사를 되찾기 위해 퓨리오사 어머니가 뒤쫓아가고 그를 몰래 구해내지만 그의 어머니는 디멘투스에게 붙잡혀 목숨을 잃고, 퓨리오사는 디멘투스에게 붙잡혀 감금되는 신세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디멘투스는 임모탄의 워보이를 만나게 되고, 임모탄의 땅을 빼앗기 위해 그와 대치하지만 참패를 당하고 만다. 끊임없이 임모탄에게 복수를 계획하던 디멘투스는 임모탄의 땅 하나를 점령하고, 임모탄과의 거래 조건에서 퓨리오사를 임모탄에게 넘겨주게 된다. 임모탄의 곁에서 험난한 위험을 극복해 나가던 퓨리오사는 그의 곁에서 조용히 머물며 힘을 키우면서 디멘투스에게 복수할 기회만을 노리게 된다.



사실 <퓨리오사>는 전작인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와는 상당히 다른 결의 영화이다. 매드맥스를 주로 이루고 있는 에너지가 거친 황무지 위를 빠르게 질주하는 카타르시스라면, <퓨리오사>에서 주를 이루는 것은 조용히 숨죽이며 복수할 날만 기다리는 차가운 분노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퓨리오사>는 전작 <매드맥스>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용광로와도 같은 뜨거운 에너지를 기대하고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에게는 자칫 당혹스러움을 안겨줄 수도 있는 영화이다. 또한 일부에서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퓨리오사가 임모탄에게 보여줬던 강렬한 분노가 오히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에 와서 희석되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물론 부분에 대해서는 완전히 동의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전편에서부터 속편에 이르기까지 퓨리오사 캐릭터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바로 '억압받은 삶'이었다. 바이커 족들에게 잡혀갔을 때도 틈만 보이면 자신을 붙잡은 바이커족을 죽이려고 했던 퓨리오사였지만, 자신의 어머니를 디멘투스에게 잃고 말았고 디멘투스와 임모탄 사이에서는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거래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퓨리오사는 황폐해진 삶에서 살아남기 위해 항상 자기 자신을 억압하고 살아왔다. 퓨리오사의 삶에 있어서 '억압'은 자신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없이 안고 가야 하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우리가 이전에 만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퓨리오사 캐릭터와 이어지기 위해서 모두가 알고 있는 결말을 향해 달려 나갈 수밖에 없는 영화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우리가 알고 있는 '퓨리오사'라는 인물의 이야기가 완전해지기 때문이다. 퓨리오사는 디멘투스 때문에 자신의 어머니를 잃었고, 가족을 제외하고 자신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었던 사람도 잃고 말았다. 퓨리오사는 이 영화 속에서 축적된 어마어마한 분노를 단지 자신의 적을 처단하는 데에만 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분노를 거름으로 삼았는데, 이 말은 단어 그대로의 의미와 비유적인 의미 모두를 포함하다. 디멘투스를 사로잡은데 성공한 퓨리오사는 디멘투스를 자신의 비밀 공간으로 데려와 그의 몸에 씨를 심어 복숭아나무의 거름으로 만들었다. 사실 영화가 여기서 끝이 났다면 이 속편이 만들어진 의미는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끝을 맺지 않고,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퓨리오사 이야기의 시작점과 연결된다. 퓨리오사는 임모탄에게 갇혀 있는 여성들을 몰래 데리고 나와 자신의 고향으로 데리고 갈 계획을 세운다. 퓨리오사는 자신의 분노를 적에게 쏟아부으면서도 자신에게 남아있는 분노를 타인에게 쏟아붓는 것을 택하지 않고, 그 분노를 거름으로 삼아 타인을 구하는 데 사용했다. 이 엔딩이 더욱 특별한 것은 영화가 끝나고 짧게 편집되어 보이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이야기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녀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도 잃고, 자신의 고향도 잃었지만 결국 자신의 분노를 거름으로 삼아 타인들을 구원하면서 자기 자신도 구원했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기 때문이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일지라도, 이번 영화는 여기서 끝이 나지만 이 이야기의 끝과 그다음에 이어지는 영화를 통해 퓨리오사가 결국에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 두 영화의 이야기가 연결될 때 비로소 퓨리오사라는 인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자신의 억압받은 삶에서도 복수에만 얽매이지 않고 모든 이야기가 끝나는 끝에 이르러서 자신의 손으로 구원을 쟁취함으로써 영웅이 된 퓨리오사의 사가(saga)가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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