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했던 시대를 꿰뚫는 호러

<씨너스: 죄인들> 이 시대와 장르를 결합하는 방식에 대하여

by 송희운

※ <씨너스: 죄인들>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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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팬서>로 국내에 잘 알려진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신작 <씨너스: 죄인들>이 지난 5월 28일 국내 개봉하였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연상시킨다. 초반과 후반이 완전히 달라지는 전개를 갖고 있다는 점,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하지만 <씨너스: 죄인들>은 조금 더 독특한 타입의 영화인데, 이 영화에서 더 두드러지는 차별점은 그동안 무수히 많은 역사 속에서 차별당하고 살아왔던 흑인들의 삶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이를 상당히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던 역사가 뱀파이어 호러물이라는 장르와 결합하는 순간 영화는 훨씬 더 다층적이고 흥미로워진다.


<씨너스: 죄인들>은 1932년대 미시시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목화 농장에서 일을 하는 지미는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지만, 목사인 아버지는 사탄을 불러일으키는 짓이라며 이를 반대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지미는 사촌인 쌍둥이 형제 스모크와 스택의 제안을 받아 형제들이 오픈하는 음악 주점 '주크 조인트'에서 연주를 하기로 한다. 지미의 실력을 본 쌍둥이들은 그의 재능에 놀라워하고, 가게가 오픈한 뒤 지미가 첫 연주를 하기 시작하면서 이내 주점의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는다. 하지만 한밤 중 예상하지 못했던 불청객들이 찾아오고 목숨을 위협받으면서 이들은 살아남기 위한 사투를 벌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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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초반부터 술집에 이르기까지 등장한 인물들의 이야기들을 꽤나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이는 영화 속에서 등장했던 인물들이 한 장소로 모이기 위한 빌드업이면서 동시에 그 시대를 살았던 흑인들에 대한 사회적인 배경을 더욱 자세히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름난 연주가인 델타 슬림을 캐스팅하기 위해 스택과 새미가 기차역으로 갔을 때 음악을 연주하려고 하는 새미를 슬림과 스택이 막는다던지, 백인인 메리가 기차역에서 스택에게 다가가 말을 걸자 스택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그녀에게 모질게 군다던지, 슬림을 캐스팅한 뒤 일행들이 차를 타고 목화밭을 달려갈 때 한때 슬림과 함께 있었지만 이제는 죄수가 되어 일하고 있는 다른 동료들을 보여준다던지 등 영화는 이야기를 전개시키면서 동시에 그 당시의 상황을 아주 자세히 묘사하면서 이 시절이 얼마나 그들에게 끔찍한 환경이었는지 관객들이 알 수 있게끔 한다. 이를 더욱 뒷받침하여 보여주는 것은 바로 영화 속 조명이다. 영화의 첫 시작 어디에선가 차를 몰고 온 새미가 교회 안으로 들어갈 때 영화 속에서 교회 안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장면은 태양광을 활용하여 촬영한 듯 보이는데, 영화는 이 장면에서뿐만 아니라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주점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명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어 화면이 어두운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영화의 배경인 1930년대는 미국에서 전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때였기에 미시시피에서도 모든 가정에 조명이 설치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최대한 자연광 아래에서 최소한의 조명을 활용하여 연출된 화면들은 그 시대에 대한 충실한 재현으로 영화는 이야기적으로나 미장센적으로나 그 당시의 시대 배경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어준다.


이야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주점으로 모여들고 주점에서 본격적인 파티가 시작되기 전 영화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하나 보여준다. 해 질 녘 백인 남자인 레믹이 몸에 화상을 입은 채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장면이 시작된다. 거대한 밭 한가운데에 있는 집으로 간 레믹은 급하게 문을 두드리고 인디언들에게 쫓기고 있다면서 자신을 집안으로 들여보내달라고 한다. 집에 있던 백인 부부는 총을 들고 그를 위협하면서 쫓아내려 하지만 집안에 있던 하얀 복장(나중에 밝혀지지만 이것은 KKK단의 복장이었다.)을 보고 나서 레믹이 그들에게 황금을 보여주며 살려달라고 하자 그들은 그를 집안으로 들인다. 이윽고 인디언들이 집에 찾아오자 아내는 그들을 쫓아내고 남편을 부르지만 남편은 레믹에게 물려 뱀파이어가 되어 있었고, 아내도 곧 남편에게 물리고 만다. 시대극을 표방하는 것처럼 보였던 영화는 이 시점부터 호러물 장르로 진입하기 시작한다. 급작스럽게 분위기가 변모하는 것처럼 보이나, 영화는 인트로에서부터 어떻게 흘러갈지를 이미 명확하게 명시해 놓았다. '영혼이 담긴 음악은 과거와 미래의 영혼들을 불러오는데, 이때 다른 악한 것들도 불러올 수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라고. 영화는 이 이야기를 따라 충실하게 흐름을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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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점의 본격적인 영업이 시작되고 많은 흑인들이 몰려와 파티를 벌인다. 주점의 분위기는 무르익어가고, 새미가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정점에 달한다. 이 음악은 밖에 있던 뱀파이어 레믹에게까지 닿고 레믹은 이내 주점으로 향한다. 처음 그들은 주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절당하지만, 흑인들이 진짜 화폐가 아닌 농장 화폐로 계산하면서 주점이 적자를 면치 못하자 보다 못한 메리가 그들을 회유하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 메리는 곧 공격당해 뱀파이어가 되고, 문지기인 콘브레드에게 허락을 받고 들어간 메리는 스택을 유혹한 뒤 그의 목을 물어뜯는다. 이후 술집은 아수라장이 되고 주점에 있던 흑인들은 모두 밖으로 나간다. 하지만 밖에는 뱀파이어가 된 이들이 있었고, 바깥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물려 뱀파이어가 된다. 이들은 새로운 삶을 얻고 함께 모여 춤을 추며 술집에 있는 사람들을 위협한다. 뱀파이어들은 주점에 갇혀 있는 흑인들을 유혹한다. 한 명씩 마주할 때 뱀파이어들은 개개인이 갖고 있는 트라우마나 약점들을 말로 건드리면서 유혹하지만, 하나의 군집체가 되었을 때 그들의 우두머리인 레믹은 흑인들이 겪고 있는 뼈아픈 인종 차별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들을 유혹한다. 영화 초반 스택과 스모크가 주점으로 만들기 위해 제재소를 샀는데 그들에게 제재소를 판 백인은 사실 KKK단의 고위 간부이고 주점에 오기 전 레믹이 뱀파이어로 만들었던 부부는 KKK단의 단원이었다고 말하면서 사실 그들은 주점에 모인 흑인들을 죽이려고 했었고 레믹이 오히려 그들을 구원해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 속에서 악마의 유혹을 받는 것이 흑인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뱀파이어가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말로 건드리면서 이들을 뱀파이어로 만들려고 한다.' 이는 결국 종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려서 타락하게 만드는 악마의 수법이 그대로 재현된 것처럼 보인다. 그 당시 흑인들은 미국에서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영화 속 흑인들은 자신들의 인간성을 저버리는 것이 아닌, 인간으로 남아 악마와 맞서 싸우는 길을 택한다. 영화가 이러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과정에서 표현되는 묘사는 다소 잔인해 보일 수 있으나, 악과 맞서 싸워서 인간다움을 보여주는 장면은 어떤 의미에서는 종교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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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를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었는데, '백인들로 인해 고통받았던 흑인들이 왜 뱀파이어들에게 고통을 받는가?'라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벌어졌던 엄청난 사투가 모두 끝난 뒤, 살아남은 스모크의 마지막 결투를 보면서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바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실제 역사에 대한 영화적인 복수이다. 레믹으로 인해 KKK 단원들에게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스모크는 그들을 맞이할 만반의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스모크는 풀 속에 숨어 KKK 단원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그들이 차에서 내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총격을 가한다. 갖고 있던 총알이 다 떨어진 뒤, 땅밑에 숨겨 놓았던 기관총을 꺼내 그들에게 연사 하는 장면에서는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스모크는 배에 총상을 입고 기력을 다해 죽어가던 중 환상 속에서 이미 죽은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본다. 환상 속의 아내에게 아이를 건네받기 전 스모크는 자신에게 목숨을 구걸하던 백인을 총으로 쏘아버리고, 담배를 끊고 아이를 건네받아 안는다. 1930년대 흑인들은 백인들과 구분된 삶을 살았어야만 했다. 백인들과 흑인들이 쓸 수 있는 화장실, 가게가 모두 따로 있었고 흑인들과 백인들이 거리에서 서로 말하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는 삶이었다. 극단적인 예시이긴 하지만, 한 KKK단의 말처럼 백인들이 흑인들을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일들은 역사 속에서 행해져 왔었다.)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씨너스: 죄인들>은 단순히 말로만 복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스모크라는 인물을 통해 그것을 스크린 속에서 실현해 낸다. 인간이 아닌 것들에게서 살아남은 스모크는 이제 실제 자신의 삶을 위협했던 현실의 적들을 처단한다. 흑인의 억압받아왔던 역사를 알고 있는 관객들은 비록 실제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지만, 일말의 망설임 없이 KKK단을 공격하는 스모크의 모습을 통해서 끔찍했던 실제 역사가 스크린 속에서 되풀이되지 않고 비껴나가는 통쾌함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라이언 쿠글러 감독이 이 영화에 대해 "한 끼 식사처럼 느껴지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단 한편만으로도 포만감을 주는 영화이다. 시대물로서도, 장르물로서도 완벽하며 인트로부터 엔딩 그리고 이야기 마지막 여운까지 (회상 속에서 목화밭을 가로지르는 차 위에서 새미가 처음으로 연주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던 모습, 그리고 그런 새미를 보면서 환호하는 스택의 모습까지) 오래간만에 관람했던 영화 중 가장 만족스러운 영화였고, 다른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영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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