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글리 시스터> 단평
※ 이 리뷰는 <어글리 시스터>의 결말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29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작품상, 관객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던 <어글리 시스터>가 지난 8월 20일 국내 개봉하였다. <어글리 시스터>는 우리가 어린 시절 접해왔던 신데렐라 스토리를 다른 방식으로 뒤집어 보여주는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신데렐라가 크로넨버그를 만났을 때’라는 한 해외 매체의 평이었다. 기괴한 폭력의 세계를 보여주던 크로넨버그 감독과 신데렐라의 만남이라니, 영화가 대체 어떠한 방식으로 신데렐라 스토리를 보여줄지 개봉 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고, 국내 개봉 일정이 확정되자 주저 없이 영화관으로 향했다.
<어글리 시스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신데렐라가 주인공이 아닌, 신데렐라의 의붓동생의 시점으로 시작한다. 왕자와의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는 엘비라는 어머니의 결혼으로 인해 의붓언니 아그네스와 함께 살게 된다. 어머니와 새아버지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날 새아버지는 급작스럽게 사망하고, 새아버지의 돈을 보고 결혼했던 어머니는 새아버지가 죽자 실의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 날, 왕국에서 왕자의 신붓감을 찾는다는 소식이 들리고 엘비라는 언니 아그네스와 함께 무도회에 초대받는다. 엘비라가 왕자와 결혼하면 일확천금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엘비라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갖은 고생 끝에 엘비라는 아름다운 외모와 몸매를 갖고 무도회장으로 가나, 거기서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를 만난다.
<어글리 시스터>는 신데렐라가 아닌 악역으로만 여겨졌던 의붓동생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여기에 사회적으로 만연해 있는 외모지상주의를 신랄하게 비튼다. 주인공 엘비라는 아주 평범한 소녀처럼 보이지만 영화의 첫 시작부터 엘비라가 ‘외모‘로 인해 사람들에게 얼마나 차별받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처음 새아버지 집에 도착해서 마차에서 내릴 때 엘비라는 활짝 미소를 짓지만 그를 본 어머니는 그에게 교정기가 보인다며 면박을 준다.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섹시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는 어머니와 달리 엘비라는 마치 미운 오리 새끼처럼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어머니에게 끊임없이 외모를 지적당한다. 그로 인해 엘비라는 자신의 인생에서 ‘아름다운 외모’만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게 된다.
외모에 대한 엘비라의 잘못된 가치관은 엘비라를 현실이 아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그것은 바로 왕자에 대한 환상이다. 영화 초반부터 엘비라는 왕자가 쓴 시를 읽으며 그와 로맨틱한 사랑에 빠지는 꿈을 꾼다. 엘비라의 환상 속에서 엘비라는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고, 왕자는 그런 엘비라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고백한다. 엘비라의 환상은 영화 속에서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 환상의 종착점은 현실에서 왕자와 결혼에 성공하는 것이지만, 이 환상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관문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환상은 영화 속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이는 엘비라가 왕자에 대한 환상을 얼마나 크게 갖고 있는지 그리고 그 환상에서 깰수록 현실과의 괴리감이 얼마나 더 커지는지 단적으로 드러낸다.
왕자의 무도회로 초대된 이후부터 외모에 대한 엘비라에 대한 집착은 더욱 심해진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엘비라의 외모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가와 비판이 더욱 심해지면서 외모에 대한 엘비라의 집착이 더욱 심해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왕자 앞에서 선보이는 공연을 위한 연습에서도 엘비라는 춤을 가리키는 선생님에게 늘 조롱당한다. 맨 앞줄에 서서 열심히 춤을 배우던 엘비라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지만, 아름다운 언니인 아그네스와 비교당하고 맨 뒷자리로 쫓겨난다. 사람의 내면이 아닌 외면으로 한 인간에 대한 가치가 결정되는 영화 속 사회는 시대적 배경만 다를 뿐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듯하다. 여성에게 다른 어떤 것보다 외모가 최우선이 되는 이 세계는 외모로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비이성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게 만든다.
이러한 비이성적인 행동의 일환이 바로 ‘성형 수술’이다. 이 시대의 배경 속에서 자행되는 성형 수술은 참으로 끔찍하다. 아름답고 예쁜 코를 만들기 위해 엘비라는 마취도 제대로 하지 않은 맨 정신인 상태로 코뼈가 부서지는 것을 경험한다. 여기에 아름답고 풍성한 속눈썹을 만들기 위해 역시 맨 정신인 상태로 커다란 낚시 바늘로 눈가의 생살이 뚫린다.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서 이뤄진다고 상상하기 어려운 성형 수술 장면들은 어떤 고어한 장면보다도 끔찍하다. 코를 정으로 내리쳤을 때 엘비라는 고통에 몸부림치지만 아무도 그에게 괜찮냐고 물어보거나 말리는 사람 하나 없다. 특히 코 수술을 하기 전 어머니가 코 모양이 나와있는 팸플릿을 보고 있고 의사가 어머니에게 몇 번 코를 고르겠냐고 하는 장면은 인간의 신체가 아닌 마치 하나의 진열된 상품을 고르는 것처럼 아무 감정 없이 진행되어 더욱 기괴하다. 두 번째 속눈썹을 수술할 때도 엘비라가 의자에 누워있을 때 의사와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의사를 보조하던 간호사들 모두 풍성한 속눈썹을 갖고 있는데, 이때 엘비라에게 어떤 간호사의 한쪽 눈이 멀어있는 것이 비쳐서 더욱 끔찍한 장면을 연출한다. 사실 이러한 장면들은 바디호러라는 장르적인 측면에서 수위는 매우 약해보이만, 오히려 의료 설비나 치료 장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시대에서 오로지 예뻐지겠다는 욕망 하나를 채우기 위해 자행되는 이 수술들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다른 어떤 것보다 더욱 끔찍한 것은 엘비라가 먹은 벌레의 알이다. 엘비라를 가르쳐주는 한 선생님이 준 벌레의 알은 현대 사회에서 수없이 생산되고 있는 다이어트 약을 연상시킨다. 선생님은 엘비라에게 그가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있으며, 이것이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약을 건넨다. 엘비라는 그 약을 받고 자신의 동생에게 자랑한다. 하지만 동생은 언니가 미쳤다고 말하며 엘비라를 떠나고, 잠깐 고민하던 엘비라는 주저 없이 그 알을 넣고 삼킨다. 약간 통통한 몸매를 갖고 있던 엘비라는 그 약을 먹은 이후부터 살이 쭉쭉 빠지기 시작한다. 이 약의 부작용이 단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밤마다 엄청난 허기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아무리 먹어도 엘비라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고 엘비라가 벌레의 알을 먹은 이후 영화에서는 계속해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엘비라 뱃속의 알은 현대 시대의 다이어트 약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욕망’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타인의 기준에 자기 자신을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는 엘비라. 그 행위는 만족을 모르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만든다. 엘비라의 뱃속으로 들어간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은 실제로 나를 아름답게 만들기는 하지만, 내면 속에서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만든다. 이 허기는 결곡 나를 파괴하는 것에 이르는데, 겉으로는 계속 아름다워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영양소를 흡수하지 못해 엘비라의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린다. 무도회 전날, 어머니는 엘비라의 머리카락이 빠지고 있는 것을 보지만, 엘비라의 건강은 신경도 쓰지 않고 가발로 가리면 된다고 말하면서 그의 휑한 머리를 가발로 덮어버린다.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채워지지 못한 욕망은 결국 온전했던 자신의 신체마저 거부하게 만든다.
엘비라는 기존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결국 무도회장에 나타난 신데렐라에게 왕자를 빼앗기고,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채 구토하면서 벌레의 알도 함께 토해낸다. 신데렐라는 무도회장에서 구두 한쪽을 놓고 사라지고, 다음 날 왕자는 신발의 주인이 자신의 신부가 될 것이라고 공표한다. 절망에 빠진 엘비라는 무도회장에 들어온 신데렐라가 아그네스라는 것을 알고 구두를 빼앗지만, 아그네스의 구두는 엘비라가 신기에는 너무 작았다. 극단적인 광기에 사로잡힌 엘비라는 결국 커다란 식칼 갖고 와 자신의 발을 구두에 맞추기 위해 발가락을 잘라내지만, 끔찍한 고통만 느끼고 제대로 잘라내는데 실패한다. 딸의 비명소리를 듣고 온 어머니가 그 광경을 보고 딸에게 수면제를 주고 딸이 잘못 자른 다른 쪽 발을 대신 잘라준다. 아름다움 만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어머니는 딸이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고 있는 장면을 보고도 그를 치료해주기는 커녕, 그의 신체 훼손을 도와주는 모습은 참으로 끔찍하고 기괴한 외모지상주의의 결정체라고도 볼 수 있다.
꼭 맞는 구두를 신고 왕자에게 안겨 집을 떠나는 엘비라의 환상과 정확히 같은 모습으로 아그네스가 딱 맞는 구두를 신고 왕자에게 안겨 집을 떠난다. 머리카락도 거의 다 빠지고 발가락도 모두 잃은 처참한 모습의 엘비라는 동생의 도움을 받아 회충약을 먹고 자신의 뱃속을 망치고 있던 벌레를 꺼낸다. 이 기다란 벌레가 엘비라의 목구멍을 통해 빠져나오는 장면은 영화 속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기괴한 장면이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엄청나게 긴 길이의 벌레는 비주얼적으로도 끔찍하지만,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엘비라의 강박과 욕망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후 엘비라는 온몸이 만신창이인채로 동생에게 이끌려 집을 떠나고, 밖으로 내다 버린 벌레를 까마귀들이 쪼아 먹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온전하지 못한 신체를 갖게 되었어도 자신을 억압하던 외모지상주의를 모두 벗어나게 된 엘비라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안쓰러움과 연민이 느껴지지만 그와 동시에 홀가분함도 느껴진다. 이 엔딩은 외모지상주의가 온전했던 한 인간을 얼마나 끔찍하게 망치는지 영화가 가장 드러내고 싶었던 메시지를 압축해서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어글리 시스터>를 보고 있노라면 작년 개봉한 <서브스턴스>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는 최근에 개봉한 여성을 메인으로 한 바디 호러 장르들이 공통적으로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 영화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아닌 타인이 요구하는 미에 맞춰 사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종국에는 이것이 자기 자신을 얼마나 끔찍하게 파멸시키는지 다소 섬뜩한 방식으로 말하고 있다. 어떤 주제 의식을 갖고 설교한다기보다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다소 과격한 장르로 환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이 두 영화는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영화로 손꼽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