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후> 단평
※ 이 리뷰는 <28년 후>의 결말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좀비 영화의 전설로 불리던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가 약 개봉 22년 만에 후속작으로 돌아왔다. 무려 22년 만에, 그것도 처음 연출한 대니 보일 감독이 직접 메가폰을 잡은 속편이기에 해당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감도 상당했고, 나 역시 그러한 기대감을 갖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기대했던 것 이상의 영화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만족할만한 영화였고, 그렇기에 이 영화가 앞으로 어떻게 완결성을 갖고 3부작으로 마무리될지 기대감이 더해졌다.
<28년 후>는 분노 바이러스 창궐 이후 영국이 전 세계적으로 격리된 뒤 그 이후의 영국의 모습을 다룬다. 아버지, 아픈 어머니와 함께 문명에서 동떨어진 섬에 살고 있는 스파이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좀비 사냥에 나선다. 좀비 중에서도 강한 알파를 만나 죽을 위험에 처하지만 다행히 무사히 섬으로 돌아온다. 아버지가 스파이크의 모험담을 다소 과장되게 말하면서 마을에서 영웅처럼 취급받지만 스파이크는 생각했던 것보다도 무서웠던 바깥세상에 대해 두려워하고 아버지의 그러한 취급을 불편해한다. 그러던 와중 스파이크는 자신의 아버지가 아픈 어머니를 놔두고 다른 여자와 바람피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충격받는다.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과 더불어 아버지가 알려주지 않았던 바깥세상에 남아있는 의사에 대한 사실을 알게 된 스파이크는 자신의 아픈 어머니를 고치기 위해 의사를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서 스파이크는 생각하지 못했던 위험을 겪고, 죽을 뻔한 위기를 여러 번 넘기면서 간신히 의사를 만나지만 거기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예상치 못했던 진실을 듣게 된다.
영화 초반 인트로는 전작인 <28일 후>를 상기시키듯, 영화가 어떠한 배경으로 시작되는지 짧게 보여준다. 어린이들이 모여있는 집에 좀비가 들어와 공격하고 거기서 유일하게 지미라는 소년만 살아남는다. 영화는 이 지미의 이야기를 바로 전개시키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섬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스파이크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 개인이 분노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남는 이야기를 그렸던 <28일 후>와 다르게 영화는 어린아이가 잔인한 세상의 진실을 마주하고 커나가는 성장담을 다룬다. 이러한 성장담은 사실 뻔한 이야기 같아 보이지만 <28년 후>는 성장물과 좀비물을 결합하면서 뻔하지 않은 흐름으로 나아간다.
특히 이 영화의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죽음만이 가득한 좀비물에서 죽음과 삶에 대해 고찰한다는 점이다. <28년 후>는 장르물의 외양을 갖고 있지만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소 철학적이다. 바닥에 시체를 늘어놓고 있어서 모든 이들이 미쳤다고 생각했던 의사는 사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감염자와 비감염자의 죽음을 기리고 있던 사람이었다. 스파이크는 자신의 어머니를 살리려고 만난 의사에게서 어머니를 치료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서 어머니를 떠나보낸다. 스파이크가 처음 좀비 사냥을 나가서 아버지에게 배웠던 것은 살아남기 위한 기술이었고, 이는 무조건 좀비를 죽이기 위한 기술이다. 좀비 영화에 등장한 인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길 밖에 없다. 그것은 살아남거나 혹은 물려서 좀비가 되느냐이고 좀비가 되는 것은 결국 죽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렇듯 좀비 영화에서는 늘 죽음이 가까이 있지만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에 삶과 죽음에 대해 고찰할 시간 따위는 없다. <28년 후>는 어떤 영화보다도 가까이 있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다루지 않았던 죽음과 삶을 좀비물 속에서 진지하게 고찰한다. 켈슨이 스파이크에게 말하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처럼 영화는 감염자, 비감염자 간의 모든 죽음을 기억하라고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은 영화 밖 현실의 진리이지만, 영화는 등장인물들에게도 이를 끊임없이 기억하게 한다.
이 죽음은 삶과도 연결된다. 영화 중반쯤 좀비무리들 중에서 유난히 배가 나와있는 한 여자 좀비가 보인다. 그 이후 폐허가 된 기차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 것을 들은 스파이크의 엄마 아일라는 기차 안으로 들어가고 스파이크와 길에서 만난 군인 에리크도 그를 따라 들어간다. 거기서 아일라는 좀비가 출산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그에게 손을 내민다. 처음에 좀비는 위협을 가하지만, 고통에 못 이겨 아일라의 손을 잡고 얼마간 있다가 아기를 출산한다. 아일라는 그 아기를 받아 들고 에리크가 그 아기를 죽여야 한다고 실랑이하는 사이 기력을 회복한 좀비가 아일라를 공격하려 하자 에리크가 놀라 총으로 좀비를 쏘아 죽인다. 죽음만이 가득한 세계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좀비 영화에서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이 그려진 적은 있지만, <새벽의 저주>에서 태어난 아기는 좀비였고 이 아기 좀비는 '처리'되었다. <28년 후>에서 등장한 아기는 좀비가 아닌 사람이며, 죽음만이 가득한 세계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은 죽음과 삶이 반복되어 순환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특히 이 아기가 스파이크 어머니의 이름인 '아일라'를 물려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며, 좀비 영화에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길을 추구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들게 한다.
영화가 추구하는 바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 수 있고 인지할 수 있으나, 사실 이러한 것들이 영화 속에서 매끄럽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 초반 스파이크가 아버지와 함께 본토로 나아갈 때 연출된 컷 편집과 확성기를 통해 들리는 소리는 완전히 미지의 영역이 되어버린 영국 본토로 나아가는 것에 대한 공포심을 탁월하게 보여주었다. 영국으로 흘러 들어오게 된 군인들이 좀비들에게 쫓기다가 어두운 터널 속에서 삼손을 만나 목이 뽑히는 장면은 공포 영화 특유의 소름 끼치는 연출이 잘 살아있다. 이렇듯 영화는 초반부터 중반까지 공포 영화물로 충실하게 이야기를 전개시키다가 스파이크가 켈슨을 만난 뒤 영화가 진짜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드러날 때는 완전히 다른 영화인 것처럼 전개가 너무 갑작스럽게 변한다. 이는 좀비 영화에서 잘 찾아볼 수 없었던 '주제 의식'에 대한 이질감도 있지만, 초기부터 쌓아왔던 영화적 연출 및 분위기가 어떠한 빌드업도 없이 갑자기 전환되는 것에 대한 이질감과도 가까울 것이다.
이렇듯 아쉬움이 없는 영화는 아니나 3부작으로 구성된 이 영화의 다음 편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영화의 엔딩 때문이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켈슨이 있던 곳을 떠난 스파이크는 아기를 자신이 살던 섬에 맡기고 길을 떠난다. 홀로 있던 스파이크는 좀비 떼 무리를 만나 싸우던 중 위기에 처한다. 그때 어떤 남자가 나타나 위기에 처한 스파이크를 구해준다. 이 남자는 바로 영화 초반 인트로에 나왔던 지미로 영화 내내 지미의 이름이 단서처럼 등장했었다. 집에서 성당으로 도망쳤다가 신부인 자신의 아버지에게 십자가를 받았던 어린 지미는 아버지에게 받았던 십자가를 역십자가로 목에 걸고 컬트의 리더가 되어 있었다. 어린아이에서 소년으로 성장해 가는 스파이크와 좀비 사태에서 살아남았지만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지미가 과연 다음 영화에서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지, 그다음 영화에서는 어떤 다른 주제 의식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