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기억 속의 향수, 안나수이

Sui Dreams Anna Sui

by 송희운


어린 시절부터 향수를 굉장히 좋아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향수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다. 아버지께서 직업 특성상 굉장히 자주 해외 출장 가시곤 했었는데, 출장을 다녀오신 뒤 양손에 한 아름 선물을 사 오실 때에는 그중에 꼭 향수가 포함되어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버지께서도 향수를 좋아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아버지는 각 나라의 다양한 종류의 향수를 사다 주셨다. 특히 면세점에는 면세점에서만 파는 미니어처 향수들이 있었는데, 각기 다른 조그만 향수들의 향을 맡아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살바도르 달리의 이름으로 된 향수 브랜드도 있었고 랑콤, 겐조, 안나수이, 디올, 장 폴 고티에 등등 등 이외에도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청포도 향이 나는 향수 (이 향수는 아무리 해도 바틀 모양만 기억나고 브랜드명과 이름은 단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등 정말 매일 써도 다 못쓸 정도의 다양한 향수 미니어처들과 향수들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향수를 자연스럽게 접했고, 엄청난 수집가 기질이 있었던 나는 커서도 자연스럽게 향수를 모으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해외에서 사다 주신 향수 외에도 어머니께서도 내가 20대 초반인 시절 가끔 향수를 사주시곤 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안나수이 향수들이었다. 안나수이의 수이 드림, 안나수이 오드 뜨왈렛. 안나 수이의 수이 드림은 어디서 사주셨는지도 기억나는데 광화문 교보문고의 향수 코너 같은 곳에서 사주셨던 것 같다. 지금 향수의 시세로 보면 그렇게 비싼 가격은 아니지만 그 당시에 향수는 꽤나 고가인 제품이었다. 이 안나수이 향수들은 출시된 지 20년도 더 된 향수 들인 만큼 요즘 트렌디한 향수들과는 거리가 있는 플로럴+파우더리 한 향기들의 조합으로 흔히들 말하는 ‘여성적’인 향에 가깝다. 현재 이 향수들은 국내에서는 단종된 듯하고 해외 구매 대행을 통해서만 구매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 : fragrantica.com


두 개의 안나수이 향수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향수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수이 드림이다. 이 향수를 떠올릴 때 내 머릿속에 가장 인상 깊게 남아있는 기억은 이 향수를 거실 티브이 장식장 한편에 놓은 채 두고두고 감상했던 기억이다. 성인이 된 지 얼마 안 된 때라 아직 나의 취향이라는 것이 확립되기도 전이었지만 어린 마음에도 이 향수 바틀과 수색이 너무 예뻐 보였던 기억이 난다. 뿌리는 것조차도 너무 아까워서 정말 어쩌다가 한 번씩 뿌리고, 오랜 시간 동안 향수병을 바라보기만 했던 그 시절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성인 여성에 대한 동경이 아니었을까 싶다. 20대 초쯤 아직 꾸미는 것에 미숙하고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을 때 이 향수를 보면서 ’ 나중에 크면 이렇게 하고 다녀야지, 나중에 크면 이렇게 꾸미고 다녀야지.‘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예쁜 핸드백 모양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나중에 성인이 되었을 때의 커리어우먼이 된 나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한다.


거의 20년 정도 시간이 흐른 뒤라 이 향수의 향이 정확하게 어떠했고, 그 향을 뿌렸을 때 내가 어떤 느낌을 느꼈는지는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 저 마음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만 할 뿐이다. 하지만 단 하나 정확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 시절 저 향수병을 놓은 장식장 앞에 누워서 턱을 괘고 그 향수병을 보면서 굉장히 흐뭇해했던 기억이다. 비록 난 지금 엄청난 커리어우먼도 아니고 이제는 그 수이 드림의 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취향이 되었지만, 그래도 내게 있어서 이 향수는 살면서 곱씹고 살아갈 수 있는 특별한 기억 중의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