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자면 어린 시절 내가 갖고 있었던 향수들은 대부분 아버지가 사다 주신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때는 향수가 비싼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향수들은 요즘 흔히 말하는 니치 퍼퓸처럼 고가의 제품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 당시에도 명품 향수나 니치 향수가 있었지만, 요즘처럼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았던 때가 아니었기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확실히 향수는 비싸다. 스몰 럭셔리 화장품들이 보통 10~20만 원 대에서 구매할 수 있는 편인 반면에 (물론 이번에 출시한 루이비통 화장품의 가격은 예외로 하기로 한다.) 많은 이들이 뿌리고 다니는 르라보 / 조 말론 / 딥티크의 향수는 기본적으로 30~40만 원 정도이고, 프래그런스 두 부아의 헤리티지는 100만 원을 훌쩍 넘긴다. 여기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모 브랜드 비스포크 향수는 억대에 이르기도 한다. 향수가 궁금해도 실제로 구매하려고 하면 망설이게 되는 이유이다.
형체도 없는 향기를 위해 큰 금액을 지불한다는 것은 향수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다소 사치스럽게 보일 수 있다. 향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들은 “왜 굳이 그렇게 비싼 것을 사지?”라고 쉽게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오랜 시간 동안 향수를 좋아해 왔고, 여전히 향수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가격에 대한 부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한다. 2030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평균 월급을 기준으로 생각해 본다면 30~40만 원은 4인 가족이 2주간 사용할 수 있는 식비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과도 같으니까.
원료, 제조 과정, 브랜딩 및 마케팅 비용까지 고려했을 때 향수가 비싸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해한다. 그렇기에 향수는 흔히들 사치품이라고 말한다.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필수품이 아닌,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과시적인 소비를 뽐내기 위한 사치품말이다. 이 말에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 하지만, 문득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요즘 같은 시대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할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네이버 웹툰인 [내 ID는 강남미인]에 못생긴 외모로 인해 티가 날 정도로 성형을 한 여자 주인공 미래가 있다. 미래는 성형하고 난 뒤에도 외모에 극도로 집착하고 살아왔었는데, 어느 날 어떤 행사에서 향수 매거진 편집장의 말을 다시 듣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향수의 아름다움이 진실된 이유는 향기란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향기는 눈을 가리고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보여지는 아름다움만을 원하는 세상에 진절머리가 난 사람들에게, 이 무형의 미가 위로가 되리라 믿는다.
-[내 ID는 강남미인] 14화 중-
이보다 향수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향기는 나를 드러내는 수많은 수단 중 하나지만, 향기는 보이지 않기에 오로지 경험해 봐야지 온전히 느낄 수 있다. 탑 노트, 미들 노트, 베이스 노트처럼 향수 자체에도 수많은 향들이 내포되어 있고 같은 향수를 뿌린다고 해도 각 사람의 체취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향이 되기도 한다. 보이지 않기에 직접 경험을 통해 비로소 내가 체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의 성격이나 감정과 매우 닮아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향수를 사치품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아쉽다. 현실적인 재정선을 넘어서 향수를 구매하는 것은 개인의 삶을 망가뜨리는 일이지만, 어느 정도 여유가 되는 선에서 구매한 향수는 그 사람의 인생을 좀 더 다채롭게 만드는 경험이 될 수 있다. ”향수는 사치품일까? “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이와 같이 하고 싶다.
사치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이지만, 향수는 보이지 않는 자기만족에 가깝다.
만약 단 하나의 향기가 삶의 결을 풍부하게 해 준다면, 그것은 사치가 아닌 ‘가치’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