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lish Pear & Freesia Jo Malone London
향수는 이전부터 꾸준히 사랑받는 아이템이었지만, 본격적으로 향수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높아진 시기는 코로나 이후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메이크업 중에서도 립 메이크업의 존재감이 약해지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눈에 보이지 않는 향기인 ‘향수’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시각이 아닌 후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이 흐름 속에서 수많은 브랜드들이 향수 카테고리를 새롭게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 외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논픽션, 탬버린즈 외에도 알보우, 본투스탠드아웃 등 국내에서 만든 다양한 향수 브랜드들까지 등장하면서 향수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가격은 큰 장벽이었다. 니치 향수의 어마어마한 가격대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출시된 브랜드들조차 최소 10만 원대는 기본적으로 생각해야 구매할 수 있었다. 좋은 향을 구매하고 싶지만 가격대 때문에 구매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니즈를 타깃으로 한 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카피 향수이다.
카피 향수들은 ‘가성비’를 전면에 내세워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이러한 제품들은 각 니치 향수 브랜드들에서 베스트셀러들을 위주로 카피했다. 유명 제품들의 향을 카피한 향수뿐만 아니라 샴푸, 디퓨저 등 해당 향기를 토대로 하여 다른 여러 가지 제품들로 변주를 주어 자신들의 베스트셀러를 만들기도 하였다. 사실 카피 향수들은 제작자의 입장에서 이는 참으로 참으로 안전한 길이다. 향의 재현율이 높다면 어느 정도 보장된 판매량으로 실패할 위험이 적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흐름에 크게 감흥이 없었으나, 아주 오래전부터 한창 갖고 싶었던 향수가 있었기에 해당 카피 향수를 살까 고민한 적은 있었다. 이후 우연한 기회에 그 향수를 선물 받은 덕분에 카피 향수에 대한 생각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하지 못했던 향수를 선물 받은 적이 있었다. 단 한 번도 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던 향, 조 말론의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였다. 개인적으로 같은 브랜드의 우드 세이지 앤 씨솔트를 좋아하는지라 이 향수는 그저 는 봄에 뿌리기 좋은 발랄한 플로랄-프루티 계열의 향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선물이란 향을 골라준 사람의 마음까지 받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기에 다른 향으로 바꾸지 않고 그 향을 그대로 사용해 보기로 했다. 포장을 뜯어볼 때까지 크게 감흥이 없었다가 향수를 내 몸에 직접 뿌려 본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가 알고 있었던 그저 그런 감흥 없는 향이 아니라, 플로럴과 프루티 사이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우디가 자리 잡고 있었다. 궁금해져서 조 말론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니 베이스 노트에 패출리가 자리하고 있어 약간의 우디함이 느껴졌고, 특히 나에게는 그 우디함이 다른 향에 비해 훨씬 더 강하게 올라오는 듯했다. 그제야 왜 향수를 카피한 향수가 아닌 본품을 사야 하는지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전문 조향사의 손길로 제작된 향수의 향은 다른 카피 향수들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깊이’가 있었다. 내가 그전까지 조 말론의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의 향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은 수없이 많은 가품들의 잔상에 불과했다.
이후 카피 향수 혹은 그와 비슷한 종류들에 대해 모든 관심이 사라졌다. 카피 향수들은 겉표면에 있는 향을 비슷하게 재현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한 병의 향수가 갖고 있는 모든 향의 심도에는 절대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어떤 향을 정말로 갖고 싶다면, 그 향수를 만드는데 들어간 시간과 노력을 포함하는 값을 지불하도록 하자. 그것이 오리지널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