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ulous Tom Ford
향수를 좋아한 시간에 비해 니치, 명품 향수를 본격적으로 들이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가장 인상 깊은 니치·명품 향수 브랜드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톰 포드를 말할 것이다. 톰 포드는 대담함, 과감함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이다. 톰 포드를 대표하는 프라이빗 블렌드 라인들은 다른 명품 향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시도를 한 향수들이 많기에 혹자들은 톰 포드의 향수들이 명품 향수와 니치 향수 사이에 걸쳐 있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톰 포드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패뷸러스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패뷸러스 향수를 통해 톰 포드를 알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 향수의 공식적인 명칭은 FUCKING FABULOUS이지만, 국내에서는 앞의 단어를 붉은색으로 마킹하고 패뷸러스라는 명칭으로만 출시하였다. 본연의 이름도 좋아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이 붉은색으로 마킹된 버전이 색다른 느낌을 주는지라 국내 출시된 버전이 더 마음에 든다.
패뷸러스를 처음 알게 된 순간은 희미하지만, 향 자체는 너무나 강렬해 이름을 떠올리면 단번에 느낌이 떠오른다. 패뷸러스는 아몬드 비터, 통카빈, 레더, 세이지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요 향조는 아로마틱이다. 패뷸러스를 구성하는 향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향은 레더이다. 어떻게 가죽의 향을 향수에 넣을 생각을 했을까? 노트를 확인하고 레더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꽤 충격을 받았다. 이 향수를 뿌렸을 때 내게 가장 크게 올라오는 향은 세이지+라벤더 향이다. 아로마틱 향조를 크게 선호하는 편이 아닌데도 세이지와 라벤더, 그리고 레더가 어우러졌을 때, 이전에 맡아본 어떤 향수보다도 독특하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한번 맡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향이다 보니 패뷸러스는 아주 오래전부터 나의 위시리스트 상단에 있었다. 그럼에도 쉽게 구매를 하지 못했는데 첫 번째 이유는 워낙 고가이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이 향수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 때문이었다. 패뷸러스를 검색했을 때 가장 눈에 많이 띄는 단어들은 ‘2030 남성 향수 추천’이다. 대부분의 블로그 혹은 리뷰에서는 이 향을 남성이 뿌리면 좋을 것 같은 향으로 소개하고 있고, 이러한 글 속에서 패뷸러스의 이미지는 ‘검은색 정장을 갖춰 입고 머리는 포마드 스타일을 한 댄디한 남성’으로 묘사된다. 세련되면서도 도시적인 남성이 뿌리는 향이라는 이미지가 나 자신도 모르게 뇌리에 박혀버려 ‘과연 내가 이 향수를 구매해도 될까?’하고 망설여졌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던 패뷸러스 향과 다시 한번 비교해 보려고 백화점에서 시향 했을 때, 처음에 단순히 무겁게만 느껴졌던 이 향이 여름에 뿌려도 괜찮을 만큼 상쾌하게 다가왔다. 그때 내가 이 향수를 뿌렸을 때 매장에서 시향 해주시던 직원분의 말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이 향수가 여름에도 쓰기 좋은지에 대한 나의 질문에 대해 이런 답을 주셨다. ”니치 향수는 계절에 상관없이 본인이 뿌리고 싶을 때 뿌리는 거에요.“ 그때 내 안에서 뭔가 부서지는 것에 느껴졌다. 그것은 바로 고정관념이었다. 많은 이들이 말하는 이 향수에 대한 이미지가 결국 내 안에서 정형화된 틀이 되어 있었다. 나는 ‘여성이 남성 향수를 써도 될까?’라는 고정관념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맡았던 패뷸러스의 향은 내 기억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향이 매력적이었기에 최종적으로 이 향수를 선택했다. 정형화된 이미지에 사로 잡히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통해 또 다른 내 자신을 알게 되는 것. 내게 있어 톰 포드 패뷸러스는 ‘나’라는 존재의 영역을 확장해 준 향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