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유일한 ‘무향’의 시기

by 송희운


향수에 대해 내내 예찬하는 글을 쓰면서 그렇게 향수를 좋아하는데도 한동안 향수를 뿌릴 수 없던 시기가 있었다. 바로 아기를 임신하고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이다. 향수 관련 내용을 검색하던 중 육아 카페에서 임신 기간 중 향수를 뿌리면 태어날 아기의 생식 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임신, 향수, 언제부터’라는 키워드만 검색해도 이와 관련된 글이 수두룩했고, 어떤 댓글에서는 담당 의사가 향수는 당분간 자제하라고 했다는 말도 적혀있었다. 이후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향수를 일절 뿌리지 않았다.



임신했을 때만 향수를 뿌릴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출산 이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특히 남자아이들에게 향수 냄새가 좋지 않다고 했던 글을 본터라 출산 이후에도 향수 뿌리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어쩌다가 약속이 생겨 나갈 때 가끔 손목에 한두 번만 뿌리는 것이 전부였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아기가 잠깐이라도 누워있을지 몰라 내가 자는 이불에 페브리즈 뿌리는 것마저 자중했고, 선물 받은 필로우 미스트도 화장대 한편에 방치해 둔 채 그 존재마저 잊어버리기도 했다.


향수의 각양각색 향기로운 향 대신 다른 향이 나를 뒤덮기 시작했다. 바로 아기와 관련된 냄새였다. 보통 아기 냄새하면 떠오르는 베이비 파우더와 같은 포근한 냄새가 아니라 아기 토 냄새, 침 냄새, 분유 냄새, 백일이 되기 전 손을 꽉 쥐고 있었던 아기 손바닥에서 나는 묘한 냄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 했던 육아의 현실 속에서 마주하게 된 향들은 상상도 못했던 것들이라 다소 낯설고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어쩌면 그 시기가 다 큰 성인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향이 느껴지지 않았던 시절인지도 모른다. 매일매일 인공적인 향에 둘러싸여 있다가 바디워시마저 무향 제품으로 바꾸며 향을 내 인생에서 잠시동안 지워버렸다.


나는 원래 후각이 예민한 편이다. 신체의 다른 기관은 둔한 편이지만, 유일하게 향과 냄새에만 민감했다. 신생아를 키우던 당시 거의 어떠한 향도 뿌리지 않고 살다 보니 향에 대한 감각이 좀 더 발달했다. 그 당시 내 몸에서 어떠한 냄새가 나는 것이 느껴졌는데 바로 아기 냄새이다. 출산 후 조리원을 나와 복직하기 전까지 하루 종일 대부분의 시간을 아기와 함께 있다 보니 아기 냄새가 내 체취처럼 배어 있었다. 역한 냄새가 아닌 말로는 쉽게 설명하기 힘든 아기 특유의 살냄새 같은 것이 향수의 화려한 향들 대신 나와 함께 있었다. 아기 냄새는 단순히 냄새가 아닌 나의 어떤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과도 같았다. 아기를 낳기 전까지는 인공적인 향으로 나의 다채로운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지만 출산 이후의 아기 냄새가 이제부터 나는 ‘엄마’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의미하는 것 같았다.


이후 회사에 복직하기 전까지 향수를 거의 뿌리지 않았다. 향으로 나 자신을 표현하고 내게 나는 향으로 스스로 만족해 왔던 사람이기에 향수를 뿌릴 수 없었던 그 시기가 조금은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아기 냄새가 내 인생 모든 것을 대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삶 어느 한 특별한 시기에만 날 수 있는 향이기에 삶의 다른 순간에서 다시 맡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주 잠깐 동안의 시기가 지나고 다시 내가 원하는 향수를 뿌릴 수 있는 인생의 궤도로 들어왔다. 여전히 내 아이와 같이 오래 있을 때는 향수 뿌리는 것을 자중하지만, 예전만큼 뿌리지 못한다고 해서 서글프진 않다. 이제 내 인생은 개인으로서의 나와 엄마로서의 내가 서로 교차하는 시기니까. 아기가 많이 자란 만큼 내게 더 이상 ‘아기 냄새’는 나지 않지만 언젠가는 그 냄새가 나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이미 조금은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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