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에베 아이레 수틸레사
작년, 오랜만에 면접을 보러 가는 날이었다. 원래 면접 자리에서는 향수를 거의 뿌리지 않는 편이지만, 그날은 왠지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로에베 아이레 수틸레사를 뿌리고 집을 나섰다. 오랜만의 면접에 잔뜩 긴장된 상태로 도착해 대기하고 있는데, 인사팀 담당자분이 오시더니 이것저것 안내를 해 주셨다. 그때 안내를 모두 마치고 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다.
향이 너무 좋네요.
그 말을 듣고 굉장히 쑥스러웠지만 기분이 정말 좋아졌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다. 면접의 결과는 아쉽게도 불합격이었지만, 그 일화는 내게 유난히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 향수는 내가 직접 구매한 향수가 아니다. 향수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고가의 선물을 해야 할 때면 그 사람에게 어울릴 것 같은 향수를 골라 선물하곤 했는데, 그런 나에게 오히려 향수를 선물해 준 지인이 있었다. 로에베 아이레 수틸레사는 그전부터 워낙 유명해서 잘 알고 있던 향수였다. 맑고 깨끗하면서도 청초한 이미지를 대표하는 향수로, 로에베 향수라면 이 아이레 수틸레사가 떠오를 정도로 로에베 향수 라인의 대표적인 제품이다.
하지만 이 향수는 내가 크게 관심을 갖고 있던 향수는 아니었다. 배, 만다린, 목련, 은방울꽃 등 프루티 하면서도 플로럴 한 향들의 조합은 다소 뻔하게 느껴졌고, 무엇보다도 이 향수가 풍기는 이미지가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향수를 준 지인은 나에게 이 향수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내가 또다시 나만의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스로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이미지가 타인에게는 전혀 다르게 형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자, 이 향수는 이전과는 다른 향으로 느껴졌다.
로에베 아이레 수틸레사는 전체적으로 맑고 청초하면서도 깨끗한 느낌의 향이다. 배와 만다린, 커런트처럼 달콤한 과일의 향기는 달콤함에만 머무르지 않고 은방울꽃, 목련, 자스민과 만나 우아함으로 이어진다. 이 향수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야리야리하고 여성스러운 여성의 모습인데, 나는 이런 이미지가 나와는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잘못된 고정관념이었다. 타인이 바라본 나의 이미지가 또 다른 타인에게 긍정적인 인상으로 전해졌다는 점에서, 이 향수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우아함의 한 면을 일깨워 준 향수이기도 하다.
첫인상에서 느껴지는 배와 만다린, 커런트의 조합은 청사과를 떠올리게 한다. 자연스럽게 DKNY 비 딜리셔스나 루에브르 리베르떼가 연상되지만, 아이레 수틸레사는 그 둘과는 결이 다르다. DKNY 비 딜리셔스가 오이 향이 약간 더해진 발랄한 느낌이라면, 루에브르 리베르떼는 청사과로 시작해 자스민과 은방울꽃, 일랑일랑으로 이어지며 성숙한 인상으로 연결된다. 루에브르의 리베르떼와 로에베 아이세 수틸레사, 두 향수와 미들 노트의 구성이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아이레 수틸레사는 자스민보다는 목련과 은방울꽃의 플로럴이 더욱 두드러진다. 마무리가 다소 묵직하고 웜한 리베르떼에 비해, 아이레 수틸레사는 훨씬 깨끗하고 투명하게 마무리된다. 내가 우디 베이스를 가진 향수를 착향 했을 때 우디 향이 비교적 강하게 드러나는 편인데도 아이레 수틸레사의 우디는 존재감을 과하게 드러내기보다는 우아하고 고요한 느낌으로 남는다.
이렇게 향수는 나를,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나에게 데려다준다.
그래서 향수는 나에게 언제나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