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향, 다르게 드러나는 얼굴

메종쥬 슈퍼퓌지옹

by 송희운


향수를 살 때 나는 보통 바로 구매하지 않는 편이다. 향수가 워낙 고가이다 보니 마음에 드는 향을 만나면 시향지를 챙겨두거나, 그 향을 마음속에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생일 선물로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 나에게 시향 하자마자 구매를 결심하게 만든 향이 있다. 바로 메종쥬의 슈퍼퓌지옹이다.


출처 : 메종쥬 홈페이지


프랑스 브랜드인 메종쥬는 국내에서 널리 알려진 브랜드는 아니다. 바이레도나 르라보, 프레데릭 말, 킬리안 같은 니치 브랜드들, 혹은 샤넬과 디올, 에르메스처럼 인지도가 높은 명품 브랜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브랜드이다. 나 역시 이 브랜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었다.


어느 날 약속이 있어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갔다가 시간이 남아 지하 1층 향수 매장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한 매장을 발견했고, 나도 모르게 그 매장에서 시향을 시작했다. 직원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몇 가지 향을 맡아보던 중, 한 향수 앞에서 멈춰 섰다. 매장을 구경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살 생각이 없었는데, 그 향을 맡는 순간 나도 모르게 ‘이건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향이 바로 슈퍼퓌지옹이었다.



슈퍼퓌지옹의 향 구성은 임모르텔, 슈가드 아몬드, 라벤더, 화이트 머스크로 구성되어 있다. 향 구성 중에서 임모르텔은 국내에서는 익숙하지 않은데, 록시땅의 이모르뗄 라인에서 볼 수 있듯이 프랑스에서는 유명한 원료인 듯하다. 착향 했을 때 내게 가장 와닿았던 향은 슈가드 아몬드이다. 고소한 아몬드 위에 설탕을 뿌린 듯한 달콤함 위로, 임모르텔의 스파이시하면서도 달큰한 꽃향이 느껴진다. 여기에 라벤더가 올라오면서 한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향으로 완성된다. 동물적인 느낌의 화이트 머스크로 마무리되며 은은하게 남는다. 머스크 계열의 향수로 분류되지만 일반적인 화이트 머스크와는 결이 다르다.



슈퍼퓌지옹은 메종쥬 향수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편에 속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향수 중에서는 가장 궤를 달리하는 향이다. 메종쥬 향수 라인들 자체가 탑, 미들, 베이스 노트에 딱히 구분을 두지 않고 있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향이 확연하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향들이 복합적으로 올라온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 자기 자신에게 두드러지는 향이 다른데, 나에게는 주로 슈가드 아몬드와 라벤더의 조합이 가장 강하게 올라온다. 향 자체에서는 깔끔하고 도시적인 무드의 일하는 여성의 느낌이 나면서도 내게는 라벤더의 향 때문인지 묘하게 중성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플로럴의 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이 향수는 한편으로는 모험이기도 했는데, 이 향수를 매장에서 뿌릴 때 처음 느낀 그 향의 기억과 그 순간의 감각이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결제해버리고 말았다.


지금 이 향을 맡아도 처음 그때 그 순간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한 사람이 여러 일면을 갖고 있는 것처럼, 이 하나의 향수도 수많은 얼굴을 갖고 있다. 그 다양한 얼굴들은 나의 또 다른 일면을 꺼내며, 이 향수를 매번 새롭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