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 애니메이션 <호퍼스>
※ 이 리뷰는 <호퍼스>의 스포일러와 엔딩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픽사의 30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인 <호퍼스>가 개봉하였다. 최근 픽사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이 다소 줄어 보러 갈지 말지 고민했지만, 예상보다 트위터에서 반응이 좋아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극장으로 향했다. 극장 시간대를 겨우 맞춰 관람한 영화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영화는 어린 시절부터 학교의 동물들을 탈출시켜주려 했던 메이블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학교의 동물들을 탈출시켜 학교에서 문제 학생으로 낙인 받았던 메이블은 엄마가 출근할 때마다 할머니 댁에 맡겨진다. 할머니 댁의 평화로운 자연으로부터 많은 위안을 받은 메이블은 할머니와 함께 살며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곳에 혼자 남겨진다. 한편 비버턴의 시장인 제리는 비버턴의 고속도로 건설 완공을 위해 애쓰지만, 할머니 집 뒤에 있는 호수를 지키는 메이블로 인해 사사건건 방해를 받는다. 할머니와의 추억을 위해 비버를 한 마리 데리고 오려고 하던 메이블은 어떤 비버 한 마리가 납치되는 것을 발견하고 차 뒤를 쫓는다. 그곳에서 메이블은 납치된 비버가 살아있는 비버가 아닌 로봇이고 그 비버를 통해 자연으로 가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비버로 자신의 의식을 옮겨 자연의 세계로 들어간다.
<호퍼스>의 이야기 기본 구조는 이미 공개된 것처럼 <아바타>와 유사하다. 다른 매개체를 통하여 원본이 존재하는 세계로 들어가고, 원본의 세계에 동화된다는 이야기 골격과 거의 똑같다. (이는 영화 속 대사에서도 스스로 드러나고 있다.) 다만 장르가 애니메이션이다 보니 <호퍼스>는 훨씬 더 긍정적이고 선한 이야기로 가려고 노력한다. 이 노력이 억지스럽거나 과장스럽지 않다. 주인공 메이블은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19살로 자신이 바라는 목적만을 위해 달려가는 미성숙한 인물이다. 그는 할머니의 댐이 파괴되지 않기 위해 타인의 재산을 빼앗고, 그것을 이용해 동물들의 세계로 들어가 동물들을 자신의 뜻대로 조정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메이블은 제리가 설치해 둔 동물 전용 스피커를 제거하는 데 성공하며 동물들의 신뢰를 얻지만 동물들이 함께 안건을 나누는 의회에서 그들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기 위해 부추기다가 결국 제리를 죽이자는 의견까지 만들어 버리고 그 의견을 무마시키려는 과정에서 곤충 여왕을 죽여 버린다.
여기까지 봤을 때, 메이블의 행동은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맞는 말이지만 그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은 참으로 과격하고 독단적인 행동들이다.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한 메이블을 성장시키기 위한 캐릭터로 포유류의 왕 조지가 등장한다. 그는 모든 것들의 선함을 믿는 캐릭터로, 자신들의 터전을 파괴하려는 제리마저 포용하려 한다. 조지는 메이블이 의회에서 대형 사고를 쳐서 다른 모든 종족들에게 공격당하게 되는 상황에 처했을 때도 그에게 잠깐 실망하기는 했지만, 메이블이 속마음을 내비치자 다시 기운을 차리고 그를 도우려고 하는 캐릭터이다. 이러한 모습은 모든 것을 품어주는 대자연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듯하다. 할머니가 메이블에게 이야기했던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괜찮아진다.”라고 한 말을 행동으로 드러내는 인물이다.
사실 인간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던 메이블의 모습을 보며 이 영화의 엔딩이 <아바타>처럼 메이블이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닌, 동물로서의 삶을 택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이야기 내에서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메이블이 호핑한 몸체가 자연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기계의 몸이라는 점이다. 메이블은 자연의 편에서 인간을 적대시하던 존재였지만 오히려 자연과 인간 모두를 위험에 빠뜨렸고, 그러한 메이블을 품어준 것은 동물들 즉, 자연이었다. 이 자연이 인간을 품어준다는 메시지는 후반부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폭주하는 곤충 왕을 저지하다가 발생한 화재로 인해 숲이 타들어가고 그 숲이 도시를 덮치려고 하자 포유류들은 힘을 모아 연못의 물로 불을 끄려 하고, 이내 다른 모든 종들도 그들을 돕는다. 결국 자연은 자신들의 터전을 파괴하려고 했던 인간들을 품어주는 행동을 한 것이고, 이는 포유류의 왕 조지가 메이블을 품어준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자연의 포용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지우는 것은 아니다. 포용의 메시지와 달리 동물과 인간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둘을 극단적으로 나누기 위함은 아니다. 오히려 동물과 인간이 소통 가능하다는 것은 인간의 소망 혹은 환상이라는 것을 명백히 드러내며, 궁극적으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잠깐이나마 소통했던 조지와 메이블은 도시가 위험에 처한 순간 같은 언어는 아니지만 서로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이는 동물과 인간이 서로 같은 언어로 100% 완전한 소통까지는 어렵더라도, 마음을 나누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마지막 엔딩에서 조지와 메이블은 메이블이 할머니와 앉아있던 그 바위에 앉아있다. 조지의 눈은 소통이 가능했던 만화적인 눈이 아니라 의중을 알 수 없는 동물의 검은 눈으로 변했지만, 그들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온전해진다. 비록 조지가 핸드폰으로 치는 메시지의 의미를 모두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지가 치는 비버 이모티콘과 하트 이모티콘은 조지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호퍼스>에서 또 한 가지 의미심장한 것은 메이블을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이다. 메이블은 영화 속에서 분명한 실수를 저질렀다. 결국 메이블로 인해 모든 것이 좋게 해결된 것처럼 보이나, 그가 영화 속에서 저지른 실수들은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메이블의 미성숙한 행동을 어른들은 용인해 준다. 샘 교수와 심지어 영화 속에서 절대 악처럼 보였던 제리 시장까지. 샘 교수는 메이블이 가져간 호퍼스를 되찾아오려고 하면서도 동시에 너무 오랫동안 호핑해있던 메이블을 걱정하며 구하기 위해 애쓴다. 마지막 엔딩에서는 무사히 학교를 졸업한 메이블에게 자신의 조수 자리를 제안하기도 한다. 처음에 이 영화의 빌런으로만 비쳤던 제리 시장도 영화 후반부 메이블의 조력자가 되고, 동물들과 메이블의 도움으로 도시가 무사히 살아남자 비버들이 살던 곳에 남아 있던 쓰레기를 모두 치우고 메이블과 대화로 풀어보자고 말한다. 미성숙한 메이블은 비록 실수를 저질렀지만, 메이블의 실수는 메이블의 노력과 메이블 주변을 둘러싼 이들에 의해 해결되었고 이들은 메이블의 실수를 감싸주고, 받아주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 속에서 미성숙한 청소년을 감싸주는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어쩌면 <호퍼스> 전체의 이야기는 메이블이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되는 성장기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호퍼스>는 개인적으로 픽사 애니메이션의 최고 작품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월 E>와 <라따뚜이>는 아직 뛰어넘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퍼스>는 상당히 흥미롭고 독특한 영화이다. 마냥 어린이들만을 위한 영화라고 하기에는 영화가 다소 과격한 지점도 있고, 호러 영화적인 연출 지점들도 있지만 영화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상당히 훌륭하고 감동적이다. 자연과 인간 간의 관계, 미성숙한 청소년과 어른 간의 관계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할 지점이 많고, 이는 단순히 어린이들에게만 적용되기보다는 오히려 어른들이 더욱 많은 질문을 갖고 집으로 돌아갈 영화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호퍼스>는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역시 픽사답다는 긍정적인 평을 충분히 받을 만한 영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