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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과거는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의 현재다.

<아이 캔 스피크> 속에서 자신의 말로 이야기하는 '나옥분'에 대하여

by 송희운

※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관람하고 작성되었습니다.

※ 본 리뷰에는 <아이 캔 스피크>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말’이 많은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가 매일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말들은 가족과의 인사에서부터 시작해, 직장 동료들과의 대화, 그리고 편의점에서 물건을 살 때 등등등. 이렇게 단순하게 일상 속에서 흘러가는 말들이 아닌, 내가 나로서‘말’을 한 순간은 언제였을까. 사실 내가 온전히 나 자신으로서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무게를 지닌다. 나의 의견을 오롯이 내보이는 게 결코 긍정적인 결과만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고, 내가 말을 한 것들에 대해서 특히 그 말에 엄청난 진실이 담겨있을 때 말을 한 이후 불어올 후폭풍을 책임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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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다른 어떤 누구보다도 말의 무게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아이 캔 스피크>의 나옥분이다. 그녀는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수면 속에 깊게 가라앉아 있던 진실을 꺼내기 위해 '말'을 꺼낸다. 이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인 이야기이지만, 나옥분의 이야기는 좀 더 특별하다. 그것은 그녀가 그동안 한국 대중영화 속에서 항상 이야기의 테두리나 조연을 소외되었던 할머니이기 때문이다. 한국 대중 영화 속에서 언제나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어갔던 젊은 남성이나 중년 남성이 아닌, 여성 그것도 나이 든 할머니가 자신의 ‘말’을 위해 앞으로 나서는 순간 <아이 캔 스피크>는 다른 무엇보다도 특별한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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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캔 스피크>의 스토리는 참으로 단순하다.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공무원에게서 영어를 배우려는 한 할머니. 그녀가 영어를 배우려는 이유가 오래전 헤어져서 미국으로 입양된 자신의 남동생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인 줄 알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사실 그녀는 미국 하원 의회 공개 청문회에서 위안부였던 자신의 이야기를 주장하기 위해 영어를 배웠다는 것. <아이 캔 스피크>가 지향하는 바는 휴먼 코미디이지만 나옥분에게 숨겨져 있던 비밀이 드러나면서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이 된다. 우리가 그동안 만나왔던 위안부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그녀들의 고통을 재현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녀들이 당했던 일에 분노를 표출하면서 그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 이야기들 속에서는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 그것은 고통의 시간을 보낸 뒤, 우리와 같은 현재를 살고 있는 할머니들의 '지금' 이야기이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우리도 모르게 위안부 할머니들과 우리들의 삶을 구분하고는 했다. 영화를 보며 분노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에 우리는 안전한 우리의 집으로 돌아간다. 이따금 영화의 장면이 생각날 수는 있지만, 우리의 삶은 여전히 그들과는 다른 범주의 영역이다. 할머니들의 역사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지옥 같은 현재를 우리는 오래된 과거의 일이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할머니들의 고통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할머니들의 비극의 깊이와 고통의 무게가 얼마나 될지 감히 예측조차 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렇기에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분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지금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할머니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할머니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러한 측면에서 <아이 캔 스피크>는 다른 어떤 위안부 영화보다 강력하게 '위안부' 소재를 환기시킨다. 그녀들의 삶은 우리와 같은 동시대이며, 그들의 과거는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의 현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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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캔 스피크>는 소재뿐만 아니라, 여배우를 대한 태도에서도 모범적인 답안을 제시한다. 사실 ‘여배우’란 단어 자체도 쓰지 않는 것이 좋지만, 그동안 남배우들과 차별을 받아야만 했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이 글에서만큼은 계속 써보고자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말하기 위해 청문회에 나선 ‘나옥분’ 역을 나문희 배우님이 맡았다는 것은 참으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나문희 배우는 그동안 대중문화 속에서 말 그대로 억척스러운 할머니를 대변해온 인물이 아닌가. 자식들을 뒷바라지하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 강해져야만 했던 할머니 캐릭터. 나문희 배우님을 떠올리게 했던 대표적인 캐릭터는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얘 민용아!!!”하고 아들을 부르는 나문희 여사였다. (물론 <수상한 그녀>에서도 나문희 배우가 주연이기는 하지만 키를 잡고 있는 것은 거의 심은경이었다) 사실 <아이 캔 스피크>에서도 나옥분을 묘사할 때 약간의 관습적인 장면들이 존재한다. 세상에서 홀로 살아남기 위해, 외로워지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민원을 제기하고 자기 자신의 존재를 알려왔던 나옥분 캐릭터. 그렇기에 그녀는 더욱더 억척스럽고 더욱더 까다로운 사람이 되었다. <아이 캔 스피크>에서도 다른 매체들에서처럼 억척스럽고 고집 센 할머니 그대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민재와 영재에게 밥을 차려주는 장면,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 등 등 등 중간중간 몇몇 장면들에서 나문희 배우는 자연스럽게 정극 감정을 끌어온다. 특히 청문회에서 증언할 때의 모습은 그동안 왜 그녀를 ‘할머니’ 역으로만 소비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폭을 크게 끌어올린다. 위안부로 등록이 되지 않은 급조한 증인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겁에 질렸을 때도 ‘나옥분’은 “예스, 아이 캔 스피크”라고 자신의 말로 이야기한다. 증언대 앞에 선 그녀는 또다시 겁에 질려 머리가 하얗게 되어서 민재의 도움을 받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약간 쉬고 갈라진 듯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깊게 관객들의 마음 속에 울려 퍼진다.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고, 자신의 삶이 얼마나 처절했는지를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 아닌, 당당하고 또렷하게 일본이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그들이 왜 사과를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짚어주는 나옥분. 이때만큼은 그동안 억척스러운 할머니의 삶을 연기했던 나문희 배우가 아닌, 영화 속에서 다른 이들에게 이해받지 못한 외로움을 민원으로 풀었던 이상한 할머니가 아닌,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한 사람 ‘나옥분’이 되어 자신의 말을 전달한다.


movie_image (13).jpg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영화 포스터


이 영화를 보면서 문득 생각났던 것은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다큐멘터리이다. 위안부였던 송신도 할머니는 원래 사람을 믿지 않았던 사람이었지만,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다큐멘터리 속 현실은 재판에서 졌지만, 송신도 할머니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재판에 졌지만 내 마음은 지지 않아” 현실에 억눌리지 않고 꿋꿋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할머니의 모습은 그전까지 ‘위안부’를 단순히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 생각했던 내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자신의 고향에 다시 돌아가더라도 죽기 전까지 잘 살아가겠다고 말하는 할머니. 지금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할머니란 캐릭터를 더 이상 희화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위안부 할머니를 동정의 대상으로만 삼지 않고 하나의 인간으로서 따스하게 감싸 안아 주는 것. 그것이 지금 바로 우리 세대에 필요한 영화적 태도이다. (<아이 캔 스피크>를 보신 분이라면 이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를 꼭 보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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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많은 좋은 점들이 있지만, <아이 캔 스피크>는 종종 세련되지 못한 틈새들을 보인다.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이나, 극적인 순간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묘사 등. 그중에서도 제일 안타까운(?) 장면은 청문회 직전 위기에 처한 옥분을 도와주기 위해서 민재가 구청에 뛰어들어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이다. 아무리 감정선을 끌어올리고 관객들을 더욱 몰입하게 위해 이런 묘사들을 집어넣었다고는 해도, 몇몇 올드한 감성으로 채워진 연출들은 오히려 영화의 몰입을 방해한다. 또한 후반부에서 옥분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면서 영화 초반 중요한 갈등처럼 보였던 시장 상인들과 시장을 매각하려는 인물들간의 갈등은 갑자기 힘을 잃고 영화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며, 시장 상인들에게 해를 끼쳤던 인물은 영화 막판에는 갑자기 웃음을 주는 캐릭터로 변모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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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큰 틀에서 봤을 때, 이런 영화의 단점들을 아주 소소한 것에 불과하다. 이런 단점들을 덮어버릴 만큼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사람을 대하는 진정성 있는 태도와 인간을 감싸안는 따스함이다. 여성이 폭행당하고 여성이 단순히 ‘도구’로서 유린당하던 수많은 한국 대중 영화들의 홍수 속에서 이 영화는 여성 캐릭터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구청의 직원들보다 훨씬 더 입체적으로 그려지는 시장의 여성 상인들처럼) 그리고 나이 든 여성을 어떤 태도로 다뤄야 할지, 그리고 위안부를 대중 영화 스토리 속에서 어떻게 녹여내야 할지 아주 제대로 된 모범 답안을 제시한다. 사실 그 답은 매우 간단하다. ‘여성도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것’ 수많은 한국 대중 영화들이 잊었던 것을 <아이 캔 스피크>는 아주 우직하고 시원한 돌직구로 보여준다. “나이가 많던 적건, 여자들에게도 입이 있고, 여자들도 자신들의 말을 할 수 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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