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앰 히스 레저> 속 히스 레저라는 한 사람에 대해
※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관람하고 작성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일생을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도 모든 이들이 다 알고 있던 유명인의 삶을 본다는 것은...? 여기 말 그대로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한 유명인이 있다. 다른 어떤 이들도 넘볼 수 없는 광기와 신의 경지에 올랐었던 한 사람. 그의 이름을 히스 레저이다.
아직도 ‘히스 레저’ 하면 떠오르는 것은 거짓말 같은 그의 죽음이다.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졌던 2008년 그것은 내가 대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다. 30살도 채 되지 않은, 배우로서 창창한 앞길이 펼쳐져 있던 그에게 닥친 죽음이라니. 비록 그를 사적으로 알던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은 너무나도 슬프게 다가왔다. 그것은 아주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그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살 수 없고, 영원히 28살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잔인한 사실로부터 느낀 '슬픔'이었다.
애틋한 의미를 갖고 있는 그의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의 삶을 다룬 <아이 엠 히스 레저>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그의 삶을 이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가 그가 찍었던 셀프 카메라 덕분이라는 생각이었다. 마치 이런 순간이 올 것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는 나레이션으로 채울 수 없는 삶의 작은 빈 여백마다 자신의 셀프 카메라를 어김없이 들여넣었고, 그 셀프 카메라는 마치 그가 지금이라도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생생함을 부여했다.
이 영화를 보고 문득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라는 시집의 제목이 떠올랐다. 어떤 내용이 이 영화와 닮아있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우리가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느낌이 저 제목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이 세상을 떠난 지 9년이 지났다. 1년만 더 지나면 10년이 될 것이고 사람들은 “시간이 벌써 그렇게 흘렀나”하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히스 레저 같은 사람이 또 올 수 있을까. 데뷔작에서부터 <기사 윌리엄>, <몬스터 볼>, <브로크백 마운틴>, <아임 낫 데어> 그리고 가장 광적인 연기를 펼친 <다크 나이트> 그의 유작이 되어버린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까지. 과연 그를 대체할 인물이 누가 있을까. 우리는 그가 남긴 이 수많은 작품을 보면서 이 영화들을 볼 때 마다 그의 이름을 곱씹어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이 세상을 떠난 그를 원망하고 또 원망할 것이다. 왜 그렇게 세상을 빨리 떠났는지. 그렇게 살다가 또 그의 이름을 잊어버릴 것이고, 언젠가 그의 이름을 또 다시 기억해낼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우리는 히스 레저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람이 살아있건 혹은 세상을 떠났건 간에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 모든 삶을 직접 살아온 그 자신 뿐일 테니까. 한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한 예술가 속에 살아 숨쉬고 있었던 열정과 광기, 고독, 사랑 등 그가 품고 있었던 터질 것 같은 여러 감정들을 잠시나마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배우로서 그의 이름을 부르기전에,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관객과 배우 위치밖에서 만날 수 없었던 그의 인간적인 모습들을 아주 평범한 일상이나 그가 살면서 느꼈을 수많은 고민과 고통과 다양한 감정들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것은 이렇게 세상을 빨리 떠날 줄 알았던 것처럼 수많은 셀프 테이프를 남기고 간 그의 영상들을 재구성해낸 제작진이 이야기하고 싶은 의도였을 지도 모른다.
영화는 그렇기에 너무 유명한 이의 죽음을 다루면서도 그 죽음을 비극적으로 혹은 자극적으로 전시하지 않는다. 그의 셀프 테이프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잘 정리하여 관객들에게 최선을 다해 그의 '말'을 대신 전달한다. 사실 사람들이 히스 레저에 대해 제일 관심을 갖는 것 중 하나는 그의 전 부인 미셸 윌리엄스와의 이혼과 그의 죽음일 것이다. 그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면 이 사건들을 전면에 내세워서 보여주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좀 더 많은 이들이 한순간 즐길 수 있는 '관심'을 위해서. 하지만 이 영화는 이러한 요소들을 피하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부드럽게 넘어간다. 자극적인 사건들을 늘어놓고 전시하는 대신, 영화가 선택한 방식은 당시 그 상황에 처했을 히스 레저의 아픔을 보여주면서 감싸 안는 것이다. 그의 절친한 친구들이 그의 심정에 대해 대신 이야기해주지만, 그 아픔을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보여주며 전시하지 않는다. 영화는 시종일관 그의 삶의 행적과 궤도를 따라가면서도 억지로 관객들에게 감정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삶을 엿본다는 느낌이 아닌, 공평하게 같은 위치에서 듣고 있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영화는 마치 히스 레저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우리 곁에 내려와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차근차근 이야기해주고 모든 이야기를 마친 뒤 마지막으로 제 갈길을 떠나는 것 처럼 느껴진다.
카메라를 들고 빙글빙글 돌면서 렌즈를 똑바로 응시하던 히스 레저가 갑자기 화면에서 사라져버리는 엔딩 장면을 보고 나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느끼고 만다. 그가 우리 곁에 더 이상 있을 수 없음을. 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 히스 레저는 처음 태어나는 순간부터 스타였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히스 레저'가 되기 위해서, 진정한 예술가와 연기자가 되기 위해서 완벽하게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해서 그는 스스로를 수없이 부쉈고, 다시 창조해냈다. 우리가 생각했을 때, 그는 대중들에게 스스로를 내보임으로써 ‘히스 레저’라는 스타의 이름을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는 우리에게 다가오기 전에 온전한 자기 자신이었고, 우리가 굳이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도, 결점은 있을지언정 완벽한 인간이었다.
나는 완전한 오늘을 살아요.
과거도 미래도 아닌
그의 말처럼 매 순간 자신의 삶에 충실했던 히스 레저. 자신의 모든 생명을 다 바쳐서 연기했기에 그는 그렇게 빨리 간 것일까. 정말 문자 그대로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그의 인생을 만나고 싶다면, 죽음과 슬픔까지 넘어서 한 사람의 인생을 절실하게 느끼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시길. 삶과 죽음, 그 경계 속에서 우리는 찬란하게 빛나는 한 영혼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