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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모독과 우화 그 어딘가에서

<마더!>라는 영화의 기괴함 혹은 강렬함

by 송희운

※ 본 리뷰에는 <마더!>에 대한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더!>를 보지 않으셨다면 꼭 <마더!>를 관람하고 리뷰를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최근 극장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마더!>가 개봉했다. <마더!>의 반응은 양극단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성경을 기만하는 신성모독 영화라는 점, 다른 하나는 남성우월주의로 이뤄진 인류의 역사를 여성의 시각에서 다시 쓴 명작이라는 점이다. 이외에도 여성을 억압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고 여전히 착취의 대상으로 본다는 점에서 페미니즘 진영 사이에서도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내게도 <마더!>는 엄청난 경험이었다. 그 전날 봤던 영화의 강렬함이 모두 날아가버릴 정도로 <마더!>는 좋고 싫음의 유무를 떠나서 하나의 강렬한 영화적 체험이었다. 이 영화적인 체험 이후, 영화에 대한 나름의 정리를 해보고자 한다. 개인의 아주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가 있기에 리뷰보다는 감상문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처음 영화는 겉보기에 평화로운 집안을 침략하는 이방인을 다룬 하나의 스릴러 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집안으로 낯선 손님이 찾아오고, 그 손님으로 인해 집의 평화가 깨지면서 본래 영화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인 '그녀’는 이 집안의 모든 것을 총괄하고 관리한다. 그녀가 사는 이 집안 곳곳에는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이러한 집에서 남자인 ‘그’는 오로지 시를 쓰는 것에만 집중한다. 집안을 돌보는 것은 오로지 그녀의 몫일 뿐이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마더’가 누구인가에 대한 해석이다. 어떤 이는 ‘마더’가 바로 대자연을 상징하는 것이라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남성주의 시각에서 억압당해온 여성을 대변하는 이라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마더’는 대자연에 가깝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녀가 눈을 감고 집을 느낄 때 심장이 보이는 것은 바로 지구의 핵과도 같다. 그녀는 집으로 동일시되는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며 남편인 그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돌보고 그를 위해 헌신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때 그들의 집에 불청객이 들이닥친다. 나이 든 남자와 나이 든 여자. 이들은 계속해서 그녀의 신경을 건드리며, 그녀를 불안감에 빠지게 한다. 이들은 성경 속 아담과 하와를 상징한다. 한때 신의 사랑을 받았지만 뱀의 유혹에 빠져버린 하와로 인해 선악과를 먹고 신의 명령을 어긴 것처럼, 그들은 이들의 집을 마음껏 사용하며 그와 그녀의 신혼을 방해한다. 그녀의 불안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의 집을 마음대로 점거하는 이들. 이들의 무례함은 아들의 등장으로 더욱 심화된다.



유산으로 인해 서로 싸우는 두 아들. 결국 첫째는 자신의 동생을 죽이고 만다. 이 두 아들은 바로 성경 속 카인과 아벨이다. 성경 속 카인은 신이 자신의 제사는 받지 않고, 아벨의 제사만 받은 것에 질투해 아벨을 돌로 쳐 죽이고 만다. 이는 성경 속에서 최초로 기록된 ‘살인’이었다. 이러한 피의 울부짖음은 신의 귀에 들렸고, 결국 카인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채 세상에 홀로 남겨지게 된다. <마더!> 속 이 두 아들의 이야기도 거의 성경과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여기서 눈에 띄는 점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형이 동생을 죽이는 순간 사용하는 문고리와 다른 하나는 홀로 남겨진 그녀 앞에 나타나는 형의 모습이다. 첫 번째 문고리는 ‘그’의 방문에서 떨어져 나온 문고리이다. ‘그녀’는 그 문고리를 잠시 다른 장소에 놓아두었지만, 마치 카인이 아벨을 죽일 때 땅 위의 돌을 이용해 죽인 것처럼, 형은 그것을 살인의 도구로 이용했다. 두 번째,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 속에서 홀로 두려움에 떨던 그녀가 형과 마주한 순간 형은 그녀에게 이런 식의 대사를 던진다. “너도 날 이해하게 될 거야” 신의 저주를 받고 그 세계에서 쫓겨나는 카인. 카인으로 대변되는 형이 그녀에게 던지는 대사는 신을 부정하는 이가 던지는 저주인 동시에 언젠가 ‘그’가 그녀를 배신할 것이라고 암시하는 것과 같다. (‘그’는 배신과 사랑 미묘한 경계 속에 놓여있지만)



수많은 역경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 동생의 죽음 이후 ‘그’의 집에는 동생의 장례식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온다. 장례식장에 찾아온 사람들은 무례하기 짝이 없고 집안 곳곳을 들쑤시고 다니며 부수기에 바쁘다. 아직 다 완전히 갖춰지지 못한 집안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결국 그녀가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싱크대를 부시고 만다. 싱크대가 부서지면서 물이 넘치기 시작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장면은 성서 속 대홍수를 빗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서 속에서는 점점 오만해지는 인간들을 심판하기 위해 신이 대홍수를 일으킨 것이었다. <마더!>에서는 이것이 신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닌, 인간들의 무차별적 인행 위에 의해 벌어진 우연한 ‘사건’이고, 결국 이로 인해 그녀의 분노가 극에 달해 집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내쫓는 결과를 낳는다. 이 장면을 생각해본다면 신이 인간들에게 벌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닌, 우연히 촉발된 행위로 인해 자연의 붕괴가 일어나고 이로 인해 사고가 벌어지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 내내 그러 왔던 것처럼 ‘신’은 여기서도 방관자가 된다.



<마더!>에서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오는 것은 그가 자신의 시를 완성했을 때이다. 이미 성서를 차용했다는 점에서 이 시는 성경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시가 완성된 뒤 사람들은 이 시를 경배하고 찬양하기 위해 몰려든다. 이 지점에서 집안은 하나의 거대한 무대가 된다. 계속해서 그녀를 쫓아다니며 불안정하고 신경질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던 화면은 이제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집안을 하나의 거대한 무대처럼 보여준다. 갑자기 몰려드는 사람들 속에서 ‘그녀’는 집을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하고 기하급수적으로 사람들이 늘어난 집은 하나의 거대한 ‘우주’가 된다. 이 우주 속에서 인간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나누고 서로를 죽이고 탐하고, 벌하며 (여기서 잠깐 동안 묘사되는 홀로코스트, 이라크 침공 등) 이 ‘우주’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그러한 혼돈의 와중에 그녀의 아들이 태어난다.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아들을 빼앗기는 순간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을 직감한 ‘그녀’는 ‘그’로부터, 사람들로부터 아들을 지키고자 한다. 한 순간 그녀는 잠깐 잠이 들고, 그녀가 깨어난 이후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신성한 의식’으로 그녀의 아들을 갈가리 찢어 삼키고 만다. 그녀의 아들 탄생 이후 영화는 더욱더 폭주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집안의 도구를 이용해 사람들을 차별적으로 죽이고, 그녀의 분노 가극에 달한 순간 그녀는 스스로 두려워하던 지하의 공간으로 내려가 모든 세계를 파괴시킨다. 그 세계 속에서 살아남는 것은 오로지 ‘그’뿐이며, ‘그’는 ‘그녀’의 심장을 이용해 다시 한번 그 세계를 창조해낸다. 재창조된 세계 속에서 우리가 영화 속에서 맨 처음 마주했던 첫 번째 그녀, 우리가 함께 이야기를 따라갔던 두 번째 그녀와는 또 다른 얼굴을 가진 세 번째 그녀가 똑같은 상황 속에서 ‘그’를 부르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마더!>에서 '그'는 계속 반복해서 세계를 재생산해낸다. 영화는 불길에 휩싸인 한 여자의 얼굴로부터 시작한다. 첫 화면을 보고 이것이 반복되는 이야기의 일부임을 관객들은 직감할 수 있지만, 그 반복되는 이야기의 무게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는 직감하지 못한다. <마더!>는 사실 성서 속 수많은 인용문들을 차용했지만,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애초부터 비교가 될 수 없기에, 이 영화는 신성모독이 될 수 없다. 성서 속 신의 모습과 <마더!> 속 신으로 대변되는 ‘그’의 모습은 같을 수 없다. 되풀이되는 폭력과 약탈의 역사 속에서 오만한 인간들의 행위는 똑같지만, 신의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특히 이 영화 속 신이 세계를 반복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복되는 ‘우주’는 여러 신화 속에서 차용되었던 모티브이다. 성경에서는 이런 반복되는 ‘우주’가 존재할 수 없다. 과거, 현재, 미래는 모두 분리되어 있으며 요한계시록을 제외한 성경의 시점은 모두 ‘과거형’이다. <마더!> 속에서 신으로 대변되는 '그'는 왜 세계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과 대자연 사이에 조화를 찾기 위해서이다. 그렇지만 그는 언제나 ‘인간’들의 편이 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대자연과 인간들의 균형은 깨질 수밖에 없었다. 신과 대자연 간의 관계 속에서도 이 영화가 성경과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는 점이 드러난다. 성서 속에서 대자연은 신이 창조한 것이다. 모든 세계를 창조한 뒤 마지막으로 자신과 닮은 형상으로 인류 최초의 인간 아담을 만들었을 때, 신은 아담에게 에덴동산에서 먹고 마시는 에덴동산을 동시에 지키게 하였다. 즉, 성서 속에서 인간과 대자연은 지배당하거나 종속되는 관계가 아닌, 서로 화합하며 살아가는 동등한 관계였던 것이다. <마더!> 속 인간과 ‘그녀’는 완전히 대립하는 존재이다. ‘그녀’는 오로지 자신들의 세계 속에서 그와 그녀만이 존재하기를 원한다. 이 우주 속으로 들어오는 다른 인간들은 그와 그녀의 삶을 훼방하는 침입자일 뿐이다. 이처럼 서로 비슷한 이야기 전개를 갖고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다른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성서’와 <마더!>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고, <마더!>는 성서 속 이야기를 예술가의 뇌를 통해 새롭게 만들어낸 재창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마더!>가 성서 속 수많은 모티브들을 차용했다는 점이 논란을 일으키는 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더!>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 수많은 사람들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메시지가 ‘폭력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은 영화의 첫 시점부터 영화의 엔딩까지 줄곧 대자연으로 대변되는 ‘희생자’의 입장만 따라가게 된다. 대부분의 영화들이 어떤 사건을 보여줄 때, 가해자의 입장이 아닌 희생자의 입장을 보여주겠지만, 이 영화만큼 희생자의 면모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희생자의 위치에 대한 강렬한 체험을 하게 되며, 희생자의 입장을 통해서 가해자가 가하는 ‘폭력’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지옥 밑바닥을 보는 것 같은 고통으로 함께 체감하게 된다. ‘희생자의 고통은 겪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말을 이 영화는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고통받는 대상이 ‘여성’이라는 점을 주목할만하다. 여성을 계속해서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점은 또다시 여성을 희생시키는 영화라고 보일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하나,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이를 통해 여성이 인류의 역사 속에서 당해왔던 고통을 극단적으로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그’는 계속해서 집안일에 하나도 손대지 않고 모든 집수리를 ‘그녀’가 홀로 진행하게 하는데, 이는 인류의 역사 초반부터 지금까지 가정을 평안하기 위해 집안에서도 끊임없는 노동을 해야만 했던 여성의 모습과도 같다. 또한 영화 속에서 ‘그’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제대로 된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는 점, 단 한 번도 그녀의 이야기를 제대로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다는 점 등 등 등 그 외에도 영화 속에서 수없이 묘사되는 ‘그’와 ‘그녀’의 종속적인 관계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희생자’로서의 여성의 위치를 드러낸다. 수많은 인간들이 몰려든 뒤 집안 곳곳에서 역사의 여러 장면들이 재현될 때 감옥 안에 갇힌 여성의 모습, 초현실적인 공간 속에서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끌려다니는 ‘그녀’의 모습 등 여성에 대한 폭력과 억압의 역사는 광기 속에서도 반복되어 나타난다. 특히 이런 지점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은 아들을 잃은 뒤 그녀가 분노에 휩싸여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을 때, ‘그녀’를 대하는 군중들의 태도이다. ‘그녀’가 깨진 유리 조각으로 사람들 찔러 죽이자 성난 군중들이 모두 달려들어 ‘그녀’를 마구 폭행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모습은 카메라에 적나라하게 비치며, 관객들은 그 모습을 외면할 수 없이 똑바로 마주 봐야만 한다. ‘그’가 달려온 뒤에야 사람들은 폭행을 가하는 것을 멈추는데, 군중들은 ‘그녀’의 아들을 희생시켰다는 사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가 자신들을 공격했다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춘다. 여성의 분노는 그만큼 사회에 용인될 수 없는 것으로 묘사되고,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조차 압도적인 힘을 가진 남성의 힘에 의해 제제된다는 점에서 현실의 밑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마더!>는 희생자가 받아온 폭력의 역사에 대한 가장 광기 어린 묘사이다. 이 모든 것들을 <마더!>는 아주 거칠고 모래가 자글거리는 것처럼 불친절하게 표현해낸다. <악마의 씨>로부터 시작한 영화는 성서의 수많은 모티브들을 차용해 인류의 폭력적인 역사를 기괴하게 담아냈다. 누군가에게는 괴작, 누군가에게는 명작이 될 수도 있는 극단적인 작품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좋게 봤건, 나쁘게 봤든 간에 이 영화는 모든 사람들에게 잊힐 수 없는 강렬한 경험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여담 1 : <노아> 때도 그렇고, <마더!>도 그렇고 계속 성경에서 모티브를 얻어 영화를 만드는 것을 보면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에게 성경은 끊임없는 영감을 불어넣는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여담 2 : 제목이 거의 비슷한 봉준호 감독의 <마더>와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마더!>는 모두 평화롭고 안정된 이미지를 가진 '어머니'란 단어를 가장 광기 어린것으로 재창조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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