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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인간성을 바라보는 깊은 응시

폭력의 일상화를 막기 위한 시선, <강철비>

by 송희운

※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관람하고 작성되었습니다.

※ 본 리뷰에는 <강철비>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 남북관계는 그 어떤 때보다 급속하게 냉각되고 있다. 뉴스에서는 끊임없이 북한 핵에 관한 위험성을 알리는 듯한 뉘앙스를 지닌 소식들이 나오고, 남북관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단순히 지나가는 에피소드처럼 생각했던 사람들은 이제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인 공포감을 느끼게 되었다. 바로 이 시점에서 <강철비>라는 영화가 도착했다. 전쟁을 코앞에 두고, 전쟁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긴박감 넘치게 담아낸 이 영화가 우리 앞으로 도착한 시점을 참으로 미묘하다. <강철비>는 현실의 무게감이 남다른 ‘남과 북’의 관계를 다룸으로서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강철비>는 남북관계를 다룬 영화 중에서 손에 꼽을만할 정도로 진보적이라 할 수 있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결국 ‘남과 북은 하나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아주 보수적인 메시지이지만 영화가 남과 북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방식에 있어서는 상당히 진보적이다. 어느 누구도 절대적인 선이나 절대적인 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남과 북 각각에게는 다른 입장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강철비>는 남과 북의 다름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폭력과 인간성을 담아내면서 그것을 캐릭터나 여러 장면들을 통해 최대한 설득력 있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어느 정도 그 목표를 완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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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바로 첫 사건이 벌어지는 장면이다. 지령받은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엄철우가 개성공단으로 찾아가서 암살 임무를 수행하려고 하는 순간 폭탄이 날아와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이 장면은 영화상 가장 공들인 것처럼 보일 정도로 세심한 묘사가 이뤄진다. 미사일이 날아가서 터지는 순간 거기서 장군을 향해 환호하던 수많은 소녀들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쓰러진다. 한차례 미사일이 지나간 후, 미사일이 한번 더 발사되는데 부상당한 몸을 겨우 일으켜 도망가려고 했던 소녀들마저 죽음을 맞이한다. 이 이미지는 하나의 단순한 사건이 아닌 압축된 폭력에 대한 묘사이다. 맥없이 쓰러지는 사람들의 모습은 언제나 윗선들의 치열한 권력 투쟁 속에서 언제나 억압당하고 희생당했던 민간인들에 대한 상징처럼 보인다. 특히 이 장면에서는 폭력을 끈질기게 응시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지 못하게 만든다. 한 차례 미사일이 날아든 뒤 아수라장으로 변한 현장을 카메라는 높은 시점에서 응시한다. 어떻게 이 현장이 만들어졌느냐 만큼이나 카메라는 폭력의 현장 속에서 비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주목한다. 미사일이 지나간 뒤, 쓰러진 사람들의 모습을 비추는 카메라는 전시하기 위한 이미지가 아닌, 생생한 폭력의 현장을 어떠한 제제도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무자비한 폭력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무엇이 남는가? 그것은 무고하게 생명을 빼앗긴 사람들뿐이다. 폭력을 응시하면서 그것에 대한 부당함을 보여주는 카메라. 그것이 <강철비>가 지속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폭력에 대한 응시이다. 이 폭력에 대한 응시는 <강철비>가 드러내고 싶어 했던 인간성과도 연결된다. 직설적으로 말하는 인간성은 아니지만, 폭력이 지나간 뒤 남는 흔적들을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면서 그 반대 지점을 떠올리게 하는 것. 그러면서 동시에 작은 순간들을 남겨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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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비>가 폭력에 대한 묘사만큼이나 주목하는 것은 인간적인 관계 즉, 인간성이다. 엄철우와 곽철우의 이름이 같은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읽을 수 있는 지점이다. 특히 이런 부분들이 눈에 띄는 부분들은 엄철우와 곽철우가 함께 있는 순간들이다. <강철비>와 비슷해 보이는 <의형제>에서도 남과 북 이념을 떠나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는데 주목하는데, 이러한 영화는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두 사람이 어떻게 하나로 화합할 수 있는지 그 과정을 상세히 다룬다. 그러한 과정들 속에서는 ‘유머’가 빠질 수 없는데, 관객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득하기 위해서이다. <강철비>에서도 그런 장치들은 존재한다. 자신의 딸이 GD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엄철우가 곽철우에게 물어보는 장면이나, 유명한 국숫집에서 안 먹겠다고 하던 엄철우가 잔치국수를 몇 그릇 이상 비울 때 관객들은 그들의 행동을 보고 웃으면서 이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인간미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안심한다. <강철비>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하게 웃음으로만 소비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두 사람의 관계를 묵묵히 응시하는 것으로 발전한다. 그러 한대표적인 장면이 두 사람이 수갑을 푸르고 나란히 앉아 밥을 먹는 장면이다. 엄철우가 몇 그릇의 국수를 먹고 난 뒤 카메라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비춘다. 카메라가 두 사람을 향해 가까이 다가갈 때, 카메라가 비추는 것은 서로 다른 옷과 서로 다른 생김새와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아닌, 겉으로 봐서는 별다른 차이점을 찾을 수 없는 넓은 등이다. 잠깐 동안의 정적 속에서 사람들은 다른 어떤 것보다 많은 것을 느낀다. 다른 어떤 수 많은 수사나 대사를 곁들이지 않아도 이 장면 하나만으로 두 사람이 서로 다르면서 동시에 같은 존재라는 것이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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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비>는 휴머니즘에 대해 계속 언급하면서도 휴머니즘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지향하는 영화는 아니다. 이따금씩 엄철우와 곽철우 관계 속에서 그런 모습을 살짝 비추는 듯하다가도 이내 곧바로 선로를 틀어 원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끊임없이 질주하는 열차처럼 힘 있게 나아간다. 그렇기에 영화가 가끔씩 내비치는 휴머니즘이 오히려 설득력을 얻는다. 대통령을 경호하기 위해 군 병원에서 병력이 빠져나간 뒤, 북한 병력들이 위원장을 암살하기 위해 찾아오는 장면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최명록과 엄철우가 마지막으로 대치한 장면에서 최명록은 결국 특수부대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이때 엄철우는 끝까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려 하다가 죽은 최명록을 향해 다가가 옷을 덮어준다. 사실 이런 류의 영화 속에서 ‘적’이라 규정된 인물의 마지막을 챙겨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엄철우가 최명록에게 옷을 덮어준 것도 어떻게 보면 큰 의미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단지 자신과 같은 곳에 속했던 사람을 향한 나름의 배려였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씬이 무엇보다도 큰 의미로 다가왔던 것은 짧은 순간 속에서도 놓치지 않은 그 섬세함이었다. 나와 목숨을 걸고 싸웠던 상대를 향해 바치는 경의. 그 경의는 감독이 기본적으로 인물들을 어떤 식으로 대하고,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짧은 샷을 통해 스쳐 지나가지만 확실하게 자신의 메시지를 던지며 수많은 영화들과 차별되는 지점들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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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인간성, 서로 대조되는 듯한 두 가지 요소들을 적절하게 배합하여 보여주는 <강철비>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단점은‘조국통일’에 대한 메시지를 너무 우직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아직도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한반도는 전 세계가 주목하고 전 세계가 두려워하는 곳 중 하나이다. 강한 힘을 막기 위해 강한 힘으로 대응할 것이냐, 아니면 계속해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할 것이냐. 그 어떤 것도 정답은 없다. 결국 해결책은 ‘통일’이라고 볼 수 있는데, 문제를 통일에 대한 방법이다. 한 민족이라는 것은 더 이상 통일의 정당성이 될 수 없다. 무차별적으로 되풀이되는 폭력과 억압을 벗어나 평등하고 숭고한 존재인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즉,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폭력은 멈춰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쉽게 감화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인가? 엄철우가 인간의 숭고함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이념에 젖어있던것일까? <강철비>는 많은 이야기를 한 번에 담아내기 위해서 나름의 세세한 시간을 들였고, 강하고 힘 있는 묘사를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위원장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엄철우가 남한에서 일련의 일을 겪은 뒤, 자신이 몸담고 있던 조직을 떠나 수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거는 장면이 얼마나 설득력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확실히 대답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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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철비>는 최근 들어서 만났던 남북 간의 관계를 다룬 영화 중에서 가장 세련된 면모를 보인다. 시대착오적으로 선과 악으로 남북을 규정하는 것이 아닌, 실제로 벌어지고 있을 법한 폭력의 현실성으로 그 속에서 억압당한 인간성을 끄집어 보여주는 것. 그리고 그 휴머니즘을 주장하기 위해 과하지 않게, 적절한 선에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강철비>는 이후 등장할 모든 남북 간의 관계를 다루는 영화들이 따라야 할 모범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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