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미국을 바라보는 냉철한 시선, <몬태나>
※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영화를 관람하고 작성하였습니다.
※ 이 리뷰에는 <몬태나>의 스포일러 및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서부극은 내게 익숙하거나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다. 서부극은 영화과를 다니던 시절 꼭 알아야 하는 영화 역사의 일부분이긴 했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나와는 먼 거리감이 느껴지기만 하는 낯선 장르에 불과했다. 문득 서부극이라는 장르를 다시 꺼내 든 이유는 바로 얼마 전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관람한 <몬태나> 때문이다. 사실 <몬태나>는 포스터에서 풍기는 분위기만 보더라도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단숨에 설명이 될 정도로 영화의 장르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렇기에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다른 영화에 비해 높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났을 때 최근 들어서 극장에서 본 영화 중 가장 강렬하고 격렬한 감정의 변화를 느꼈을 정도로 <몬태나>는 상상 이상으로 ‘좋은’ 영화였다. 이 말은 물론 영화가 가진 표면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뿐만이 아니더라도 더불어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의미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배경들까지 <몬태나>가 지금 이 시대에 당도했다는 것만으로 놀라운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한 영화였다.
<몬태나>는 첫 시작부터 상당히 강렬하다. 영화는 극을 주로 이끌어가는 주인공, 조셉 대위가 아닌 조연인 로잘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맨 처음 시작하는 오프닝은 평화로운 한 집의 모습이 보이고 그들의 평범한 일상이 잠깐 묘사되다가 어디선가 인디언이 갑자기 나타나서 그들을 공격하면서 무참하게 학살해버리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 오프닝은 상당히 단면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전형적인 서부극의 클리셰인 동시에 이 영화가 추구하는 바와는 완전히 다른 노선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인디언의 참혹한 공격 속에서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이 셋 모두를 잃고 홀로 살아남는 여자. 이 장면이 나온 뒤, 영화 속에서 다시 인디언이 등장했을 때 이 여성이 인디언을 향해 어떤 감정을 가질지는 어렵지 않게 생각해낼 수 있다.(그녀가 자신의 가족을 죽인 인디언들의 시체에 끊임없이 총을 발사하는 장면으로도 충분히 드러난다.) 하지만 이 장면은 결코 단면적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오히려 전형적인 서부극의 클리셰들을 오프닝에 내세움으로써 얼마나 이 영화가 서부극 속에서 숨겨져 있는 미국의 건국 신화를 철저하게 부수는지를 반어법적으로 드러낸다.
영화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묘사되는 것은 인물들의 감정선이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들은 바로 영화가 땅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영화 속에서 땅과 연관된 감정 표현은 총 두 번 정도 등장하는데, 하나는 조셉이 평생토록 저주해왔던 옐로우 호크를 고향으로 데려다 주라는 명령을 받은 뒤 그가 보인 행동이고 다른 하나는 로잘리가 자신의 가족들의 시신을 직접 땅에 묻으려고 하는 장면이다. 첫 번째 장면은 조셉이 군인으로서 절대 불복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옐로우 호크에게 수많은 자신의 동료들이 희생당했음에도 그 명령을 반드시 이행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의 내면 속에서 해소되지 못하고 남아있던 옐로우 호크를 향한 응축된 감정이 폭발하여 터지고 만다. 그때 조셉은 수많은 전쟁 속에서 자신을 살아남게 해 준 총을 땅에 묻으며 오열한다. 이는 직접 자신의 손으로 묻어줘야만 했던 전우들에 대한 뼈저리게 아픈 고통이 시각화되는 장면이다. 로잘리의 장면도 이와 유사하다. 인디언의 습격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로잘리는 조셉 일행을 만나 겨우 구출된다.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지 못한 채 심적으로 방황하던 그녀는 체력을 어느 정도 회복한 뒤, 자신의 가족들을 묻으려는 군인들을 향해 자기가 스스로 그들을 묻어주겠노라고 말한다. 그녀는 삽이 아닌 맨손으로 되는대로 땅을 파기 시작하지만 이내 곧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미친 듯이 땅을 파헤치다 쓰러지고, 슬픔에 잠긴 그녀 대신 군인들이 가족들의 시신을 묻어준다. 이 두 장면에서 '땅'은 두 인물의 고통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하여 드러나게 해주는 하나의 중요한 배경이 된다.
영화는 이 두 장면을 통해서 인디언들에게 피해를 입은 미국인들의 모습을 묵묵히 보여주면서도 결국 이들이 이러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는 미국인들로부터 초래되었다는 것을 잊지 않고 말한다. 영화 속에서 돌고 도는 비극이 모두 인과율에 놓인 것처럼 처음 미국으로 넘어온 영국인들이 인디언들의 땅을 먼저 침략하고, 인디언들은 자신들의 땅을 지키기 위해 이들과 싸움을 벌이고 그 싸움 속에서는 결국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어느 누구 하나 무한의 굴레 속에서 먼저 나서서 이 싸움을 끝내지 않는 이상 마치 뫼비우스의 띄처럼 영원히 계속될 수밖에 없는 현상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물들의 감정 표현이 ‘땅’으로 표현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땅은 이들이 살아가는 거대한 공간적 배경이 되는 동시에 인간 속에 깃들어 있는 영혼을 드러낸다. 영화 속에서 모든 이들이 죽은 뒤 땅에 묻히는 장면처럼 이들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백인, 인디언을 모두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흙으로 되돌아간다. 죽는 순간에는 모든 이념이나 입장을 떠나 공평하게 같은 땅으로 되돌아가는 평등한 인간임을 의미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광활하게 표현되는 넓은 대지는 자신의 위에서 일어나는 비극들은 묵묵히 받아들인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세계는 그저 자신의 위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을 받아들일 뿐이다.
이 영화가 주로 인간의 본질에 집중한다는 측면에서 <몬태나>라는 제목보다는 원제(Hostiles)가 더욱 적합하고 직관적일 것이다. 서로 앙금을 지닐 수밖에 없는 세 명의 사람들. 이들이 어떻게 화합을 이뤄내는가가 영화의 주된 스토리이다. 영화에서 이 화합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절대 화해할 수 없는 인물들이 화합을 이뤄내기 때문이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역설인데 과거 수많은 서부극 영화 속에서 백인=영웅, 인디언=악당과 같이 전형적인 도식화를 이뤄왔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백인과 인디언 그리고 흑인까지 같은 연장선상 속에서 모두 하나의 인간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했던 바와 같이 땅=인간의 영혼을 의미하는 것처럼 이러한 장면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은 조셉이 옐로우 호크의 숨이 거의 꺼져가는 순간 그를 향해 하는 대사에서이다. “나의 일부는 당신과 함께 죽소” 영화 속에서 내내 보이던 땅의 의미는 사실 인디언들이 이야기하는 사상에 부합한다. 그들이 땅 한 줌 한 줌에 영혼이 서려있다고 믿었고, 모든 사물과 생명 속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영혼의 의미는 시적이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가치와 일맥상통한다. 모든 인간이 죽음으로서 같은 땅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그렇기에 그 땅에 인간의 영혼이 서려있는 것처럼 결국 모든 인간은 어떠한 것으로도 우위를 나눌 수 없이 동등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서부극에서 흔히 보이던 이분화된 백인과 인디언의 굴레는 서부극을 통해 철저히 부서지고 깨진다. 이는 미국이 지난 시간 동안 이뤄왔던 서부극에 대한 환상을 깨부수는 동시에 서부극을 통해 확립해왔던 미국이란 나라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원제인 ‘Hostiles’이 적대적인 것을 뜻하는 것처럼 영화의 첫 시작, 영화를 주로 이끌어가는 인물들은 서로를 향해 적대적인 감정을 품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인디언에게 자신의 친구를 잃고 그 복수심으로 인디언들을 토벌해온 남자, 인디언에게 자신의 가족들을 무참하게 학살당한 여자, 그리고 백인들로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땅을 빼앗기고 자신의 고향에서조차 살 수 없게 된 남자까지. 이들에게는 서로 악감정과 적의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는 현재 미국 사회의 축소판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정말 언어 그대로 인디언뿐만 아니라, 세계 수많은 나라의 이민족 그리고 심지어 백인들 사이에서 중산층과 블루칼라 계층까지 미국 사회는 자신의 계층을 제외한 다른 계층을 향해 서로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비단 이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지금 미국을 있게 한 백인 우월주의의 신화가 서부극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어왔지만 이러한 방법을 더 이상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미 미국이란 나라 자체가 다양한 민족들이 섞인 지 오래되어 백인 우월주의가 많이 희석되었기도 하고, 침략으로 이뤄진 서부극의 세계가 모든 것이 빠른 속도의 정보와 0과 1의 이진법으로 이뤄진 온라인 세계에서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오래되고 낡은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부극의 신화가 산산이 부서지는 시점에서 시작된 영화는 단순히 현 상황을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앞으로 미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제시해준다. 즉, 이 화합할 수 없었던 세 사람이 서로를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고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보편적인 가치라는 것을 드러낸다. 흥미로운 지점은 오히려 영화 속에서 주요 갈등을 만들어내는 인물들이 대부분 백인이라는 점이다. 인디언들을 죽이는 살인마가 된 찰스 대위, 인디언들의 땅이 아닌 자신들의 땅이라 주장하면서 조셉 대위 일행을 협박하는 백인들까지 초반 로잘리의 가족을 학살한 인디언들을 제외하면 가장 극심한 갈등을 유발하는 인물들은 모두 백인이었다. 특히 엔딩 직전에는 조셉 대위까지 자신들을 공격한 백인들을 모두 죽임으로써 그의 영혼조차 피로 물들어 버린다. 이 장면의 아이러니함은 결국 이 땅(영혼)을 피로 물들이는 것은 인디언들이 아니 백인들이라는 점을 아주 명확하게 보여주며, 백인들의 사회가 병폐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신화 부수기는 겉보기에는 문제제기만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여기에 희망은 있다고 말한다. 이는 영화의 엔딩에서 아주 잠깐이나마 등장하는데, 모든 인디언들이 죽고 난 뒤, 유일하게 살아남은 어린 인디언과 가족을 잃은 로잘리가 함께 기차를 타고 떠나려 하고 조셉 대위가 이들을 배웅한다. 로잘리는 함께 가자고 제대로 말도 꺼내지 못하고 그저 묵묵히 기차에 오르고, 조셉 대위는 이들은 말없이 배웅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화면이 천천히 슬로우로 보이면서 기차가 떠나는 것을 바라보던 조셉 대위가 다시 되돌아와서 기차의 마지막 칸에 올라타는 모습으로 끝이 난다. 영화 내내 보이지 않던 희망은 아주 이렇게 잠시나마 비친다. 백인 여성과 인디언 아이, 그리고 백인 남성. 백인들의 중심 사회 속에서 완전히 다른 가족 구성이 된 이들은 과장해서 이야기한다면 미국이 지금 새롭게 나아가고 있는 가족상이기도 하다. 그것은 서로 다른 인종으로 이뤄지는 것뿐만이 아니라 인간 영혼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아주 작은 희망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의 귀중한 가치이다. 이러한 보편적인 가치는 아주 흔해서 우리에게 사실 잘 와 닿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 결국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 해당하는 것이며, 거짓된 미국의 환상을 부수고 온전히 '인간'다운 미국을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것은 <몬태나> 이 영화가 가진 강력한 메시지이며, 이 영화가 가진 강렬한 힘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