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로이트> 속의 현실, 과거인가 현재 진행형인가
※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영화를 관람하고 작성하였습니다.
※ 이 리뷰는 최대한 <디트로이트>의 결말을 배제하고 작성하였으나, 결말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지난 4월 필라델피아 스타벅스의 한 매장에서 음료를 주문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있던 흑인 남성 두 명을 직원들이 신고하여 경찰에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이를 촬영한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순식간에 스타벅스는 인종차별 논란의 중심에 섰고, 이에 스타벅스 회장은 미국 8,000여 개 직영 매장 문을 닫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반인종차별 교육을 실시했다. 이렇듯 미국 내에서 인종차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강력한 문제이다. 아무리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적이 있다 해도, 미국 사회 내에서 인종차별 문제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인종차별의 역사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내려왔지만, 이러한 인종차별이 더욱더 심하게 두드러졌던 사건이 있다. 그 사건은 1967년 7월 미국의 대도시 디트로이트에서 벌어졌던 폭동으로 바로 영화 <디트로이트>의 배경이 되는 사건이다.
<디트로이트>는 사실 영화 자체가 다루고 있는 소재만큼이나 묵직한 영화이다. 영화는 초반부터 디트로이트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상세히 묘사한다. 이 폭동이 벌어지기 전까지 어떠한 사건들이 벌어지는지, 사람들이 그곳에서 어떠한 일들을 겪는지. 영화의 주요 사건이 시작되는 지점은 영화가 시작한 뒤, 꽤 시간이 흐른 뒤 등장하는데 영화는 이 사건을 정확하게 보여주기 위해 사전의 배경들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특히 애니메이션으로 디트로이트의 상황을 보여주는 오프닝 이후 등장하는 술집에서의 일들은 그 당시 흑인들이 느낄 수밖에 없었던 불안함과 분노의 시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기할만하다. 보여주기 식 수사를 위해 술집을 급습하지만, 술집의 뒷문이 잠겨 있어서 경찰들은 어쩔 수 없이 흑인들을 앞문으로 데리고 나오고 단순히 파티를 벌이는 것임에도 이를 무자비하게 잡아가는 경찰들의 모습을 보면서 흑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기 시작한다. 수많은 인원들을 경찰서에 데리고 가기 위해 수송차가 계속해서 충원될 때,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흑인들의 분노가 더욱 커져가고 이러한 긴장과 불안감을 카메라는 끊임없이 포착한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디트로이트> 전체를 지배하는데, 이는 정말로 어떠한 일이 벌어졌을 때 더욱더 집요하게 현장을 파헤치면서 말 그대로 숨 막히는 느낌을 선사한다. 이를 통해서 어떻게 디트로이트라는 대도시가 흑인들의 지옥이 되었는지, 흑인들의 분노가 어떻게 폭발하기 작하는지에 대해 하나하나 점층적으로 층위를 쌓아나간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간 순서대로 전개되지만, 마치 다큐멘터리와도 같은 현장감 묘사로 인해 영화 속에서 정확하게 어떤 사건이 벌어질지 감을 잡을 수 없고, 명확하게 사건의 해결을 보여주는 것인 아니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끔찍한 현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느끼는 답답한 지점들은 바로 자신들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 때문일 것이다. 무엇을 하든 흑인들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그 시절, 백인 경찰관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프레임으로 그들을 자신의 시선 속에 가두어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알제 모텔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공간이다. 디트로이트라는 도시 자체가 이미 다른 도시들과 달리 폭동으로 인해 마치 전쟁이 일어난 듯한 공간처럼 비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영화의 핵심 공간이 되는 알제 모텔은 미국 민주주의의 시대와 완전히 단절된 제3의 세계와도 같다. 디트로이트 중에서도 알제 모텔은 어린 흑인 소년이 친 장난으로 인해 수많은 경찰들과 군인들이 경계해야 하는 공간으로 변했고, 백인들이 안심하고 자신들의 프레임을 씌울 수 있는 공간으로 지정되었다. 즉, 공간 자체의 프레임과 인물들의 프레임이 동시에 발생하게 된 가장 끔찍한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백인우월주의 혹은 그릇된 정의로 인해 가장 끔찍한 행동을 자행하는 인물은 ‘필립’이다. 영화는 초반부터 이 인물이 어떠한 인물인지를 사건으로 보여준다. 흑인 소년이 음식을 훔치다가 우연히 경찰과 마주친 뒤 도망치기 시작하자 멜빈을 그의 뒤를 쫓으며 도망치는 그의 등을 향해 총을 쏜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흑인이 자신보다 아래에 있으며, 자신이 가진 권력을 통해 그들이 어떤 잘못을 했던 응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전형적인 백인 우월주의자의 모습이다. 이러한 그릇된 그의 신념은 흑인=인간이라는 공식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만들고, 알제 모텔에서의 끔찍한 인권유린을 벌이게 되는 근간을 만들어낸다. 필립 역을 맡은 배우 윌 폴터가 “필립 크라우스는 특정 인물을 묘사한 게 아니라 당시 목격자의 진술을 기반으로 사건에 연루된 경찰관들의 행동을 모두 반영한 인물”이라고 설명한 것처럼 단순히 한 인물의 모습이 아니라 그 당시 미국인들이 흑인들에 대해 어떤 사고방식과 행동을 갖고 있었는지 전적으로 드러내며, 단순한 캐릭터에서 그치지 않고 그 시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알제 모텔에서 흑인에 대한 프레임은 여성에 대한 프레임으로도 확장된다. 알제 모텔에서 총성이 벌어진 뒤, 영화는 한 흑인 군인과 여성 두 명이 같이 있다가 체포되는 것을 보여준다. 흑인과 여성이 함께 있을 때, 흑인들을 대하던 이들의 잔혹한 행위는 여성으로까지 확대된다. 영화는 이 여성들이 왜 흑인과 함께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이 여성들이 매춘을 하는 창녀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흑인 남성과 같은 방에 있었다고 믿게 된다. 백인 경찰들이 자행하는 행동과 그들이 말하는 언어들을 통해서 우리도 모르게 그 생각과 편견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사실 편견과 그릇된 그 신념 자체는 무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이 비이성, 광기와 결합했을 때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폭력으로 발현되는 순간 공포스러운 것이 되는 것이다. 정확한 사건의 내용조차 모른 채 뒤돌아 서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 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자신의 목숨까지 위협받아야 했던 흑인들의 모습은 이 편견과 그릇된 신념이 실제로 발현되었을 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관객들 눈 앞에 생생히 재연시킨다. 특히, 이러한 불쾌한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것은 바로 카메라이다. 알제 모텔뿐만 아니라 영화는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시종일관 모든 등장인물들의 옆을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핸드헬드로 보이는 화면은 마치 다큐멘터리와도 같은 현장감을 증폭시키는 동시에 관객들이 자신이 안전한 영화관에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공포를 체험하고 있는 흑인들과 함께 디트로이트의 알제 모텔에 있다고 믿게 만든다. 그렇기에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불안감, 공포, 초조함, 수치심 등 모든 감정들은 화면을 통해 걸러지지 않고,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핸드헬드로 시종일관 인물들의 숨소리마저 포착하는 영화는 관객들을 객석이 아닌 그 시절 디트로이트로 끌어당겨 그 옆으로 앉힌다. 그것이 이 영화가 가진 강력한 힘이다.
영화는 알제 모텔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벌어진 재판 과정들 다른 인물들의 모습들도 보여준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 백인들에게 우호적으로 행동했던 ‘멜빈’은 최대한 백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며 흑인들을 도와주고자 했지만 결국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알제 모텔 사건의 용의자가 되는 것이었고, 공포의 현장 속에서 끔찍한 공포를 외면하고 겨우 살아남은 드라마틱스의 리드 보컬 래리는 결국 자신의 그룹으로 평생 되돌아가지 못했다. 피해자는 평생 피해자로 남았고, 심지어 가해자가 아닌 이조차 피해자가 되었지만 그 속에서 가해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죗값을 제대로 받지도 않고 여유롭게 살아남았다.
1960년대 미국의 서늘한 풍경은 과연 얼마나 변화했을까? 이러한 것들이 정말 변화했다면 우리는 앞서 이야기했던 스타벅스의 인종차별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전히 미국 내에서는 편견과 그릇된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 아직은 이러한 것들이 비이성과 광기와 결합하지 않았을 뿐이다. <디트로이트>의 끔찍한 현실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며,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직전 잠깐 비치는 천장을 바라보는 래리의 얼굴 표정은 이들의 고통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