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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끝났지만 삶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상 속 몸을 숨긴 폭력에 대하여

by 송희운

※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영화를 관람하고 작성하였습니다.

※ 이 리뷰는 최대한 <아직 끝나지 않았다>의 결말을 배제하고 작성하였으나, 결말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는 생소한 제목의 영화. 다른 무엇보다도 내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당신을 좌석에 못 박아버릴 영화”라는 포스터 홍보 문구였다. ‘도대체 어떤 내용을 갖고 있길래 이토록 강렬한 문구를 쓸 수 있는 것 일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면서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켰다. 사실 영화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는 내용 자체가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영화 속 이야기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 모두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진행된다. 이야기가 파격적이지 않다고 해서 그 이야기가 평범하고 심심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언제든지 벌어질 수도, 우리가 살면서 마주할 수 있는 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야기는 감독이 선택한 연출을 통해서 제한적으로 관객들에게 전달되고 이는 곧 영화의 홍보 포스터 문구처럼 영화를 다 본 관객들이 그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영화는 양육권을 둘러싼 두 사람의 심리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관객들이 마주한 맨 처음 장면으로는 아무것도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이 심리 장면은 어떤 정확한 사실이나 내용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단순히 어떠한 느낌 혹은 인상을 주기 위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이 심리 장면을 보면서 이들 사이에 어떠한 일이 발생했다는 것만 알지 누구의 말이 옳은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어느 한 편을 정확하게 들 수도 없는 상황에서 관객들은 과연 두 사람의 아들인 줄리앙이 왜 그런 편지를 썼는지, 그리고 두 사람 중 어떤 사람의 말이 옳은지 짐작할 수조차 없이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하는지 망설이고 고민하게 된다. 이는 관객들이 누구를 향해 몰입할 것인지의 문제를 야기시키며, 관객들이 영화를 관람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된다.



영화는 관객들이 어떠한 태도를 갖고 영화를 볼 것인가에 대한 부분을 첫 시작에서부터 보여준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두 개의 창문이다. 관객들이 영화를 봤을 때 마주하는 창문은 어떠한 공간인지 예측할 수 없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내 그것이 판사의 사무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단순히 판사의 사무실 창문이라는 것을 알아도, 그 장면은 딱히 불필요한 것처럼 느낄지도 모른다. 이 장면이 직접적으로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이 두 개의 창문은 각각 어머니 미리암과 아버지 앙투안을 연상시킨다. 창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봤을 때, 그것은 단순히 녹음이 우거진 풍경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이 장면 뒤에 바로 심리 장면이 이어질 때, 창문은 의미를 달리한다. 각각의 창문은 서로 각각 다른 입장을 갖고 있는 미리암과 앙투안의 모습이다. 맨 처음 창문을 통해 바라본 바깥의 풍경은 각 창문을 통해 보아도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이지만, 심리 장면과 이 창문 장면이 연결될 때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같은 사실을 투영시키고 있지만 서로 다른 프레임을 통해 바깥을 보는 것처엄 둘의 입장은 결코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따라 서로 바라보는 곳이 달라지는 창문처럼 미리암과 앙투안은 서로 다른 인물들이자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마치 안경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초반에 보였던 창문처럼 미리암과 앙투안이 서로 다른 주장을 갖고 있어서 어떤 것이 정확한 진실인지 판단을 내릴 수 없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관객들이 창문을 향해 서서히 다가가면서 어떤 이의 주장이 진실인지를 명백히 보게 되는 것이다. 결국 멀리서 볼 때 흐릿하게 보여 어떤 것이 정확한 것인지 알 수 없던 풍경들이 이 영화를 통과해오면서 흐릿했던 진실들이 빛을 드러낸다.



영화 속에서 이러한 ‘진실’을 보여줄 때 무엇보다도 공들여 연출한 장면들이 있는데, 그것은 안전벨트 경고음과 아파트에서 보이는 빛과 어둠이다. 맨 처음 안전벨트 경고음이 들릴 때는 줄리앙이 법원의 판결대로 아버지 앙투안을 만나러 갈 때이다. 자신의 아버지와 마주하기 싫은 줄리앙은 아버지의 차에 타서 안전벨트조차 제대로 매지 않는다. 안전벨트 경고음이 울리자 앙투안은 다정하게 줄리앙에게 안전벨트를 매라고 이야기하고, 줄리앙은 아버지의 말에 따라 얌전히 안전벨트를 맨다. 그 이후에 등장하는 장면 속에서 안전벨트 경고음이 다시 등장할 때는 경고음이 향하는 대상이 달라진다. 일상 속에서 들을 수 있는 이러한 평범한 소리들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고, 어떤 식으로 활용되느냐에 따라 폭력을 드러내는 서스펜스로 활용된다.



특히 가족들이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 간 뒤 이를 보여주는 방식은 탁월하다. 어둠 속에서 어떤 빛이 잠깐 비추더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미리암과 다른 가족들이 내린다. 처음 이 장면은 단순히 ‘새로운 곳으로 이사했다’는 의미만 지니고 있지만 이후 이 장면이 다시 한번 반복될 때, 두 장면은 같은 공간, 같은 연출 속에서 인물만 다른 인물로 배치되는데 그 공간에 누가 서있고 누가 들어서냐에 따라서 평범한 공간이 순식간에 긴장감 넘치는 공포의 공간으로 변화한다. 영화가 계속해서 보여주는 것은 일상의 변주인데, 평범하고 안전한 것처럼 보이는 일상이 이렇게 다른 누군가로 인해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변모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폭력’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음습한 공간 속에서 자신의 몸을 숨기고 자신을 드러낼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초반 어떻게 판단을 내려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던 순간부터 충격적인 영화의 엔딩이 드러날 때까지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폭력의 급습은 어른의 시선이 아닌, 어린아이인 줄리앙의 시선으로 카메라를 통해 비치며, 이는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폭력'이라는 모순과 더욱 큰 불안감을 야기시킨다.



그렇기에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영화의 제목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영화를 보게 될 다른 분들을 위해 최대한 스포일러를 적지 않는 것이 맞다고 판단해 영화의 엔딩을 상세하게 다룰 수는 없지만,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 뒤, 누군가가 문밖으로 미리암의 집을 살펴보는 장면이 나온다. 누군가가 집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어떤 인물이 문을 닫아버리고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그렇지만 정말 그것이 끝일까? 영화는 끝이 났지만, 그들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폭력이 쓸고 지나간 자리는 외면적으로는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고쳐질지라도, 내면 속 상처는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일상에서 살아있는 폭력의 일면들은 그 무엇보다도 생생하다. 영화가 말하는 메시지는 이렇게 심플하지만 쉽게 뇌리에서 떠나보내지 못하게 만든다. “영화는 끝이 났지만, 우리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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