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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희운 Jun 24. 2018

착한 판타지는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

착한 영화가 나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여중생A>

※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영화를 관람하고 작성하였습니다.

※ 이 리뷰는 영화 <여중생A>와 원작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며, 다분히 주관적인 의견으로 쓴 리뷰임을 밝힙니다.


내가 수많은 이들의 우려 속에서도 영화화된 <여중생A>를 보고 싶었던 딱 한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김환희 배우가 보여줄 '장미래'의 모습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록 웹툰 속에서 통통한 모습으로 묘사되는 장미래와 영화 속에서 보이는 마른 장미래의 모습 간에는 괴리가 있었지만, 2D로 묘사되었던 장미래의 여러 가지 표정들이 스크린 속에서 김환희 배우의 얼굴로 되살아 날 때 어떤 느낌이 들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흔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머릿속에서만 그려지던 장면이 실제로 내 눈 앞에서 펼쳐질 때의 쾌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게 존재했다.


나의 이런 기대대로 김환희 배우는 영화 속에서 완벽하게 장미래가 되었다. 특히 이러한 부분이 가장 돋보인 지점은 원작에는 없는 장면인 유학길에 오르는 재희를 미래가 배웅하고 난 뒤의 장면이다. 워낙 장미래 캐릭터 자체가 사람들 사이에서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이따금 김환희의 연기조차도 어색해지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재희를 떠나보낸 뒤 재희가 마지막으로 준 편지를 읽는 순간 김환희가 보여주는 모습은 장미래에 완전히 몰입해있으면서도 자신의 연기로 웹툰과는 또 다른 장미래를 만들어내는 순간이었다. 어린 시절에만 겪을 수 있는 잔인한 삶의 고통과 슬픔을 오롯이 담아낸 감정 표현은 스크린 속 울고 있는 미래에게 다가가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장미래가 되었다.


이 지점이 좋았던 또 다른 이유는 김환희의 뛰어난 연기 때문에도 있지만, 그녀의 연기로 인해 우리가 미래를 위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원작인 [여중생A]에서 가장 많이 봤던 "미래야 힘내"라는 댓글처럼, 우리는 비록 가상의 웹툰이지만 현실 어딘가에서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미래'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그녀가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랐다. 영화는 이 순간만큼은 웹툰과 같이 관객 모두가 한 마음으로 미래를 위로해주고 그녀가 잘되기를 빌어주게 만든다. 이 공은 모두 김환희 배우가 연기한 장미래의 덕일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여중생A>에서 내가 좋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이 김환희 배우밖에 없다. 영화를 보기 전 나를 포함, 주변인들이 걱정했던 모든 부분들은 영화 속에서 그대로 현실이 되어 나타났고, 입체적이고 각각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어 매력적이었던 캐릭터들과 수많은 곁가지로 풍성했던 이야기들은 단순히 일차원적으로 변해버렸다.


특히 영화는 판타지 부분에서 놀라울 정도로 안일한 모습을 보인다. 영화 속에서 스토리가 가장 절정에 달하는 장면은 미래가 선생님의 난을 들고 도망치는 장면이다. (선생님 캐릭터에 대해서도 할 말이 너무나 많지만 굳이 다루지는 않겠다.) 미래에게 향하던 비난의 화살이 이제는 백합에게로 방향을 틀고 그 뒤에 미래가 처음으로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인데, 미래가 선생님의 난을 들고 옥상 위까지 도망치다가 발을 헛디뎌 건물 아래로 떨어진다. 이때 놀랍게도 미래를 구해주는 것은 재희도, 다른 누구도 아닌 미래가 게임 '원더링 월드'에서 죽이지 않고 구해줬던 거인 캐릭터이다.


웹툰 [여중생A]에서 사람들에게 이름도 없이 A라고 불릴 뻔한 아이에게 미래라는 이름을 꼬박꼬박 불러주고 자기 자신을 알도록 도와주는 것은 비슷한 상처를 갖고 있었던 재희였다. 웹툰에서 이 대목이 중요한 이유는 각박하고 아직 힘든 것들이 많은 어두운 세상이지만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에게 치유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명확하고 간결한 메시지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러한 메시지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들을 판타지들이 대신 채운다. 미래가 게임 속에서 죽이지 않았던 캐릭터가 현실에서 나타나 그녀를 죽을 뻔한 위기에서 구해준다는 판타지. 모든 영화 속에서 이런 판타지들은 중요하다. 이는 캐릭터들이 갖고 있는 감정선을 더욱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도 하고, 단순히 대사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판타지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영화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여중생A>의 판타지는 어떠한가. 아무리 영화의 첫 시작부터 끝까지 아이들이 갖고 있는 잔혹함과 폭력성이라는 어두운 면들을 상업 영화에서 보여주는 나름의 미덕이 있다고 하더라도, 영화는 그 어두움을 제대로 직면하지 않고 판타지로 회피하게 만든다. 원작에서 '원더링 월드'를 자신만의 피난처로 삼았던 미래가 게임이 서비스를 종료하자 더 이상 안식을 얻을 곳이 없었던 것처럼 환상은 잠시 피난처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현실을 제대로 살아가게 만드는 '구원'은 될 수 없다. 착한 판타지는 누구나 꿈꾸고 누구나 그릴 수 있다. 누구나 '착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지독하고 잔인한 현실을 보여줬다면 착한 판타지라는 쉬운 해결책이 아닌, 그만큼 어두운 현실에 기반을 둔 판타지 혹은 그 판타지를 통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동기라도 그려졌어야 한다.  


미래가 오태양에게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대신 재희에게 이야기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로 착한 판타지이다. 미래가 재희를 오태양으로 설정하고 자신이 그동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말을 하는 순간 두 사람을 제외한 실제 세계는 멈춘다. 현실과 안전하게 분리된 환상은 실재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잠깐 동안만 이뤄질 수 있는 현실과 현실의 틈 사이에만 존재하는 말 그대로의 '환상'이다. 판타지를 통해서 현실을 향해 발을 내딛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뤄지지 못한 것들을 대리 만족하는 것으로만 끝나게 하는 마냥 착한 판타지. 이렇게 마냥 착한 판타지는 결국 어떤 인물도 제대로 구원해주지 못한다. 잠깐의 위안은 줄 수 있어도, 본질적인 변화는 일으키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웹툰 [여중생A]를 좋아했던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이 한번쯤을 겪었을 지도 모르는 폭력과 고통을 담담하게 그려내면서도 동정을 이끌어내지 않고 그 아픔의 치료 과정까지 묵묵히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매화 댓글에는 한때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르는 미래에게 힘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었고,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주고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어떠한가. 선형적으로 이어지는 영화의 구조적인 특성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를 짤 수밖에 없었다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좀 더 많은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이야기를 단순화시킨 것이 과연 최선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원작의 인기에 매료되어서 영화화 제작을 결심했다면, 포스터 속에 [여중생A]의 그림을 넣는 대신 원작이 어떤 면에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는지 좀 더 깊은 고민을 해봐야 하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만의 미래를 보여주었던 김환희의 연기가 더욱 아쉬워지는 부분이다.


+덧 1 : 이외에도 참을 수 없는 부분들이 정말 많았지만 그중에서 가장 거슬렸던 것은 재희 역을 맡은 김준면 배우의 지나치게 하얀 메이크업(...) 그리고 오태양 역을 맡은 유재상 배우의 어색한(...) 연기였다.


+ 덧 2 : 거슬린 것은 아니었지만 김준면 배우가 나올 때마다 옆에서 소리 없는 괴성(?)을 지르던 내 옆자리의 여고생이 나도 모르게 부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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