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2010)속에 드러나는 생명의 무게와 인간성의 가치에 대하여
** 이 리뷰에는 다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나의 인생이 얼마 되지는 않지만, 짧지 않은 나의 영화 인생 속에서 최고의 영화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마더>를 손에 꼽을 것이다. 졸업 시에 논문 주제로 쓸 정도로 <마더>를 너무 너무 좋아했고, 그렇기에 한 열 번도 더 넘게 볼만큼 <마더>는 내 인생의 클래식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마더>만큼이나 내 인생의 클래식 반열에 오른 작품이 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기기를 통해 영화를 봤지만, 영화를 다 본 후에는 내가 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못했나 하는 안타까움에 땅을 칠 정도로 후회했던 그 영화. 그 영화는 바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고백>이었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때부터 눈여겨봐왔던 감독이었는데, 사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로 손에 꼽기는 하지만 내 인생의 클래식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고백>을 본 순간 내 삶의 가장 강렬한 영화적 체험으로 남게되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비극을 총천연색 물감으로 가득 채워낸 캔버스라면 <고백>은 최대한 비워낼 만한 것은 모두 비운 하얀 도화지 위에 무심하게 흩뿌린 핏자국 같은 느낌이었다. 모든 것을 느리고 천천히 그리고 압도적인 비주얼로 보여주는 <고백>의 영상미만큼이나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였던 ‘주제’였다.
영화가 끊임없이 놓치지 않고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바로 ‘命’, 즉 ‘생명’이라는 단어이다. 영화 속에서 가장 어리고 순진무구한 한 아이의 생명은 너무나도 쉽게 사라져버리지만, 죄를 지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어린시절 학교 도덕 시간에 배웠던 “모든 이들의 삶은 평등하고 소중하다”는가치는 이 영화에서는 너무나 쉽고 가볍게 무너져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수많은 사람들은 엄청난 혼란 속에 빠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사회 속에서 살아 본 이라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모든 이들의 생명은 평등하지 않다. 학교에서는 그것이 진리라고 가르치고 그게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진리가 맞지만, 사회에 나가서 마주하는 진실은 우리가 배우는 진리라는 것들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사회에 나간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나’의 생명은 무겁지만, ‘너’의 생명은 무겁지 않다”는 궤변에 가득하지만 그것이 당연하게 통용되는 잔인한 세계이다. <고백>에서는 이런 ‘생명’의 무게가 인간의 가치와 결부된다.
그런 의미에서 초반 시퀀스는 무시무시하다. 단조로우면서 격양되지 않은 톤으로 아이들에게 방학 때 주의사항에 대해서 알리던 교사 유코는 점점 무시무시한 ‘고백’을 털어놓는다. 불안하고 불온한 청춘들은 자신들만의 세계에 취해있다가 유코의 고백이 점점 더 자극적이 되어가자 그때서야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담담하게 자신의 딸이 죽었으며, 이 학급 내에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이 있다고 털어놓는 유코. 범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 학급의 아이라면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만들어 놓고 그녀는 교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떠난다. 영화 속에서 ‘악의’와 ‘악인’은 종이 한장 차이로 아주 미묘한 형태를 띠고 있다. 그리고 ‘살의’까지도. 슈야는 영화의 처음부터 ‘악의’를 가진 ‘악인’이었지만, 나오키는 ‘슈야’의 악의에 자신도 모르게 전염된 '악인'이었다. 그리고 유코는 자신의 딸을 죽인 두 범인에게 악의를 품었고, 그것이 그녀를 ‘악인’으로 몰아갔다. 그녀는 철저하게 학급을 조종하였고, 두 ‘악인’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사실 처음에는 영화의 강렬함 때문에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살펴볼수록 그리고 이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영화의 강렬함 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 둘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마스터클래스에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이 했던 말 하나가 나를 사로잡았다. 한 관객이 <고백>이 다루고 있는 인간의 추악함에 이야기를 했을 때,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딱히 이 영화를 인간의 추악함에 대해 다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 영화 속 캐릭터들의 모습들이 인간의 일면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백>은 ‘이 시대의 섬뜩한 지옥도’가 아닌 ‘지옥으로 내몰린 악인들이 그려낸 지옥도’라는 평이 더욱 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인간이 태초부터 선하다고 믿는가, 아니면 악하다고 믿는가. ‘나’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갖고 있지만, 인간은 처음부터 여러 면을 갖고 있는 복합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즉, 선하다던가 악하다던가는 애초부터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인간에게는 무엇이든지, 어떤 것이든지 될 수 있는 씨앗들이 내면 속에 심어져 있고, 어떤 환경과 어떤 상황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것이 발현되느냐 발현되지 않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고백>은 바로 그러한 연장선상에 놓인 영화이다.
유코의 악의가 무서웠던것은 단순히 두 살인범을 궁지에 몰아넣은 것만이 아니라, 학급 전체 아이들에게까지 ‘악의’를 전염시켰다는 점이다. 애초에 교실에는 계급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 계급은 폭력의 사용을 정당화 시켰다. 첫 번째 시퀀스에서 반에서 몰래 빠져나간 아이들이 한 명을 일방적을 괴롭히는 장면, 밤마다 죽고 싶다는 문자를 보냈다던 여학생에게 유코가 사과하는 장면들이 이를 대변한다. 유코가 범인들에게 자신의 ‘악의’를 드러낸 순간, 아이들의 폭력은 더욱 가학적이고 잔혹한 양상을 띄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의 ‘폭력’이 그들 사이에서 너무나도 쉽게 용인되었던 이유는 바로 자기 자신들은 범죄자들을 처벌하고 있다는 정당성과 합당함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학급에서는 누군가 벌점 제도를 만들어서 꿋꿋이 등교하던 슈야를 처벌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했고, 거기에 동참하지 않는 이를 배신자로 치부했다. 단 한번도 슈야에게 벌점을 주지 않았던 미즈키는 금새 배신자로 낙인 찍혔고, 배신자는 당연히 범죄자와 동등한 처벌을 받아야만 했다. 아이들이 그들을 처벌하는데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불쌍한 ‘유코’ 선생님을 위해서 자신들은 정의를 행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악의는 순진하고 아름다운 청춘의 이름으로 포장된 채 학교를 나오지 않은 나오키까지 덮친다. 학교에 나오지 않은 나오키에게 힘내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자던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은 순순히 따랐지만, 유코의 악의가 만들어낸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이들은 그 메시지에 ‘살의’까지 담아서 보낸다. 너무나도 순진무구한 얼굴로.
영화 속에서 ‘악의’는 마치 전염병처럼 퍼져나간다. 슈야에게 악의를 받고 악한 행동을 저지른 나오키는 그 악의를 스스로에게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에게 전달했고, 슈야의 악의는 유코에게 전달되었다가 다시 슈야에게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슈야의 악의는 어디서부터 오는가? 그것은 아마도 본인이 사랑해마지 않았던 어머니로부터 받았을 것이다. 슈야 때문에 발목 잡혀 더 이상 성공 가도를 달리지못한 채 자신의 삶을 망쳤다고 생각했던 어머니로부터 말이다. 어머니가 슈야를 떠날 때 슈야가 들었던 ‘팍’하고 터지던 소리는 슈야의 소중한 것이 사라진 대신 악의가 자라나는소리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렇듯 <고백> 속에서 ‘악의’는 끊임없이 전염되고 대물림되며 ‘악인’을 만들 대상을 찾아헤맨다. 그것이 의도되었던 의도되지 않았던 간에.
유코는 HIV 바이러스에 걸린 자신 남편의 피를 통해 그들에게 ‘악의’를 집어넣었다. 그러면서 역설적으로 유코는 이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에대해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악의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그것은 그녀가 그들에게 남겨준 숙제이자 동시에 그들에게 남겨준 시한부 인생이기도 했다. 나오키는 슈야보다 우월해지기 위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죄책감과 악의로 삼켜져 버렸고, 슈야는 다른 이들보다 위대해지기 위해 그것을 통해 자신의 어머니에게 인정받기 위해 두 명의 죽음 그리고 대량학살을 등가교환하고자 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생명의 무게는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너무 무거웠거나 눈치채지못할 정도로 너무나 가벼웠다. 그 생명의 무게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깨닫지 못했던 슈야는 자신의 모든 것이라 믿었던 어머니의 존재를 잃어버린 뒤에서야(유코와 마찬가지로 동등한 생명의 무게를 잃고 난 뒤에서야)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생명이란 무엇일까, 인간이란 무엇일까.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끊임없이 생각나는 질문이지만 막상 이 영화를 보면 답을 쉽게 내릴 수 없다. 유코라는 캐릭터에게 감정을 이입하기는 쉽겠지만 그녀의 악의에 쉽게 동조할 수는 없을 것이고 슈야라는 캐릭터의사정을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그의 행동은 용서받을 수 없는 것들이다.생명이라는 가치는 결국 영화 속에서 죽음을 통해 증명될 수 밖에 없다. 영화 속 캐릭터들은 모든 것을 잃고 난 뒤에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지옥으로 내몰린 악인들은 엄청난 지옥도를 그리고나서야 생명의 무게,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느끼는 역설을 만들어 내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그것이 진정한 갱생의 시작이거나 혹은 또 다른 악의를 만들어내는 것 두 가지 갈림길을 남겨놓은 채.
맨 처음 악인에게도 사정이 있다고 이야기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영화속 모든 이들의 행동은 정당화되거나 옹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인간의 추악함이라는 말 대신 인간이 악인이 되는 데에는 누구나 각자의 이유가 있으며, ‘악의’가 존재하는 한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고 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뻔하디 뻔한 진리를 역설을 통해 증명해내는 것. 그것이 내가 <고백>을 클래식이라 부른 이유가 될 것이다.
※ 마음을 끌었던 장면 1 : 가끔 영화를 보다 보면 영화의 흐름과 다른 종류의 감정들이 튀어나오는 순간들이 있다. (마치 <킬빌 2>의 마지막 엔딩에서 브라이드가 터뜨렸던 웃음처럼). <고백> 속에서는 유코가 미즈키를 만난 뒤 홀로 걸어가다가 바닥에 주저 앉아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이다. 실컷 울고 난뒤 “바보같아”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어쩌면 이 감정이 그녀의 차가운 분노와 함께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감정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 마음을 끌었던 장면 2 : 이전에 다른 매체로 영화를 봤을 때 마지막 엔딩의 대사는 “자, 이제 갱생의 시작이야” 였는데 이번 부천에서는 ‘지금부터 갱생의 첫걸음이야” 이런 식으로 바뀐 것 같다. 워낙 영화의 엔딩 대사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지라, (그리고 엔딩의 대사 때문에 다시 영화를 보고 싶었던 지라) 내가 처음 접했던 “자, 이제 갱생의 시작이야” 이 대사가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