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와 <캐롤> 속 그녀들의 사랑
***이 리뷰에는 <아가씨>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를 처음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올랐던 것은 <가장 따뜻한 색, 블루>였다. 여성간의 사랑을 그렸다는 점에서 두 영화의 공통분모가 많았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영화를 봤을 때 <가장 따뜻한 색, 블루>가 아닌 <캐롤>과 유사한 면이 많은 영화였다.
두 영화는 언뜻 보면 서로 가장 반대지점에 위치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캐롤>은 시종일관 아련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가진 영화였고, <아가씨>는 러닝타임 내내 스릴과 긴장을 놓칠 수 없는 박진감 넘치는 영화였다. 하지만 두 여성의 사랑을 생각했을 때, 그리고 두 여성이 기존의 사회를 벗어나 자신들만의 세계를 꾸리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캐롤>의 ‘테레즈’는 자신의 삶을 지나치게 억압당한 여자였다. 남자친구가 그저 하자는 대로 따르는 수동적인 소녀였고,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아가씨> 속 '숙희'는 어릴 적부터 도둑의 손에 자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는 돈이라고 생각하는 철이 없는 소녀였다. 하지만 두 소녀는 모두 자신과 완전히 다른 환경에 있는 여인을 만나게 되고, 그 여인을 통해 자신이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는 것이 두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캐롤>과 <아가씨>의 두 주인공 모두 소녀가 어떻게 ‘여인’이 되는지에 대한 성장영화라고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매개체가 되는 것은 바로 또 다른 ‘여인’이다. 두 영화 속에서 모두 여성들은 남성들이 세운 법칙 아래 놓여있다. <캐롤>에서 ‘테레즈’는 남성들이 세운 법칙과 세계에서 크게 벗어나려 하지 않은 인물이었고, ‘캐롤’ 역시 마찬가지로 남편과 이혼을 했지만 그에게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아가씨>의 ‘숙희’도 사기꾼 백작의 꼬임에 따라 아가씨의 하녀로 들어갔고, ‘히데코’는 이모부 ‘코우즈키’와 ‘사사키 부인’의 엄격한 통제 아래 자유를 얻지 못한 인물이었다. 특히 '코우즈키'는 상식을 벗어난 새디즘의 광기로 물든 남자로 '히데코'의 이모마저 자살로 몰아넣을 정도로 여성 위에서 폭력적으로 군림하는 인물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두 영화 모두 자유를 찾는 지점이 또 다른 남성에 의한 구원이 아닌, 같은 여성과 함께 달아남으로써 충족된다는 것이다. <캐롤>에서 ‘테레즈’는 자신이 사랑하는 ‘캐롤’과의 도피 여행을 떠났고, 결국에은 그녀와의 삶을 선택했으며 <아가씨>에서 ‘숙희’는 ‘히데코’를 억압된 세계에서 구출시켰다. ‘테레즈’의 남자친구가 사진 찍는 것을 노골적으로 싫어했기 때문에 ‘테레즈’가 자신의 꿈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것과 달리, ‘캐롤’은 ‘테레즈’의 사진 작업에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숙희’는 처음에는 ‘히데코’를 꼬여내기 위해 하녀로 들어갔지만, 그녀의 아이 같은 순수성과 아름다움에 매료되었고,(비록 그 순간은 '히데코'가 의도적으로 연기한 것이었지만) 그 집을 떠나기 전, ‘코우즈키’의 어둡고 음탕한 서재에서 그녀가 당했어야만 하는 고통에 분노하며 그 서재를 불태워 버렸다. 각 영화 속에서 서로 다른 대척점 끝에 서 있던 그녀들은 서로 다른 그녀들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그로 인해 그들의 삶 속에서 완전히 채워지지 못했던 불완전한 조각 하나를 찾게 되었다. 즉, 모든 이성을 마비시키는 감정적인 사랑을 통해 진짜 자기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두 영화속에서 사랑의 형태는 모두 '혁명'의 모습을 띄고 있기도 하다.
삶 속에서 경계를 넘는 다는 것. 그것은 몇 십년 동안 쌓아 올린 가치관 모두를 무너뜨린다는 측면에서 두렵고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경계를 넘은 사람들은 모두 알 수 있다. 그 경계를 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경계를 넘어가는 순간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나를 향해 펼쳐진다는 것. <캐롤>과 <아가씨>는 모두 그런 경계선을 훌쩍 넘으며 자신을 억압시키는 체제를 당당하게 전복시키는 하나의 '혁명'과도 같은 영화이다. 특히 <캐롤>보다 훨씬 더 과격한 면이 있는 <아가씨>에서는 두 여성의 완벽한 탈출과 남성들의 자멸에서 모종의 통쾌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두 영화가 여성 간의 사랑을 드러내는 방식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 사랑은 이성간의 사랑이 아니라는 점에서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세상의 시선에 억압되지 않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 떠나는 순간, 그녀들은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 마음을 끌었던 장면 : <아가씨>에서 내 마음에 가장 오랫동안 기억되었던 장면은 바로 '히데코'와 '숙희'가 탈출할 때, 담벼락을 '히데코'가 넘지 못하자 '숙희'가 여러 가방들을 겹쳐서 그녀가 올라갈 길을 만들어주는 장면이었다. 마치 <박쥐>에서 '태주'를 안고 뛰어내리던 '상현'의 모습이 겹쳐보이기도 했고, '히데코'를 아끼는 '숙희'의 마음이 한편으로는 너무 순수해 보이기도 했다. 탈출의 경로를 제공해주는 것은 비록 ‘남성’이었지만 ‘남성’의 직접적인 도움 없이 남자들이 쌓아올린 경계를 그녀들만의 힘으로 탈출했다는 점에서 뭉클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내게 있어서 가장 귀엽고도 애틋했던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