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모든 '경계'를 가로지르다.

뮤지컬 [미드나잇] 속 사라진 ‘경계’에 대하여

by 송희운

※ 이 리뷰에는 뮤지컬 [미드나잇]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금 낯선 이름의 뮤지컬 [미드나잇]. 일반적인 뮤지컬의 형식이 익숙한 관객들이라면 이 뮤지컬을 보는 순간 놀랄 것이다. 연주자와 연기자가 혼용되어 있고, 무대 위에 또 하나의 ‘무대’가 존재하며 연기자는 객석에서부터 극의 시작을 연다. 이렇듯 독특한 뮤지컬의 형식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바로 뚜렷한 '경계'가 없다는 점이다.



기존의 연극, 뮤지컬에서 중요한 것은 객석과 무대의 분리, 배우들과 연주하는 이들의 분리이다. [미드나잇]에서는 그러한 경계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이러한 모호한 경계의 중심에는 바로 ‘비지터’가 있다. ‘비지터’는 뮤지컬의 첫 등장에서부터 무대가 아닌 객석에서 등장하며 뮤지컬 속 모든 경계들을 무너뜨릴 것을 예고한다.



사실 배우들에게 있어서 자신이 연기하는 무대는 가장 안전한 장소이다. 배우가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처럼 어떤 것도 그 무대를 침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드나잇]에서는 이러한 '규칙'들이 사라진다. 극의 내용처럼 언제든 NKVD가 개인의 삶을 침범하고 들어와 그들의 삶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것처럼, 맨과 우먼에게 집으로 대변되는 '무대'는 자신들을 지켜줄 수 없는 불안정한 공간이다. 이러한 불안정한 공간은 권력의 공포에 굴복한 사람들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이들의 영역을 끊임없이 침범해야만 했던 시절을 암시한다.



살아있는 자인 맨과 우먼의 불안정한 공간을 침범하는 것은 바로 죽은 자들이다. 플레이어들은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종종 무대 위로 소환되어 자신들이 ‘살아있었던’ 시절을 연기한다. 망령과도 같은 플레이어들은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들지만, 살아있는 자인 맨과 우먼은 절대 경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플레이어들이 이들의 ‘집’ 주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이들은 살아있는 자들의 기억을 통해 무대 위로 올라가지만 완전히 무대 밖으로는 떠나지 못한다. 망령으로 일컬어지는 플레이어들은 맨과 우먼 속에 아직 온전히 녹아들지 못한 죄책감처럼 무대 한편에서 이들의 모든 행동을 지켜본다.



비지터는 플레이어, 맨과 우먼 사이에서 자유롭게 활보하는 인물들이다. 그는 엄밀히 말하면,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 경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며, 죽은 자도 아니기에 무대 밖에 붙들려 있지 않는다. 비지터의 모든 행위는 위선 속에 숨어있는 인간들의 악을 꺼내어 심판한다는 점에서 ‘절대자’와도 같은 면모를 지니나, 그들의 악을 드러내기 위해서 신랄하고 잔혹한 방법을 쓴다는 점에서 ‘악마’의 모습에 더욱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그가 무대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처럼 비지터는 선과 악, 산 자와 죽은 자, 도덕과 타락 등 서로 대구를 이루는 모든 단어들의 중심에 위치한다.



[미드나잇]은 구분이 무의미한 ‘결계’를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위선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짓밟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우리라면 그 시절, 체제에 대항해서 싸웠을지, 아니면 맨 & 우먼처럼 다른 누군가의 목숨을 담보로 살아남았을지. 엔딩에 이르렀을 때 뮤지컬을 보는 우리의 뒷목이 서늘한 이유도 ‘나라고 과연 맨 & 우먼과 달랐을까?하는 질문에 이르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선과 악 어느 하나 명확하게 구분 짓기 어려운 인간이라는 존재를 독특한 형식을 통해 드러내 보이는 것이 바로 이 뮤지컬 [미드나잇]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