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우아한 광기와 욕망이여!

<새비지 그레이스> 단평

by 송희운

※ <새비지 그레이스>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film.org.pl_savage-grace.jpg


2008년 Pifan(그 당시의 호칭)에서 봤던 잊을 수 없는 영화 <새비지 그레이스>. 줄리안 무어의 소름 끼치는 연기력뿐만 아니라 톰 칼린 감독의 아름다우면서 서늘한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실제로 일어났던 '베이클랜드 사건'를 바탕으로 상류사회의 어두운 욕망을 다루는 영화는 다른 영화들과는 다르게 우아한 방식으로 폭력과 욕망을 풀어낸다. 초반 영화는 갈등에 휩싸인 부부의 생활을 불안정한 카메라 워킹으로 보여준다. 후반부로 들어설수록 이 불안정한 카메라 워킹은 점점 안정된 방식으로 보이는데, 영화가 보여주는 방식과 대조적으로 영화의 내용은 파멸을 향해 달려간다.


남편의 외도로 상처를 받았지만, 이 상처보다 자신의 사교 생활에 흠집이 날 것을 더 두려워하는 바바라. 우아한 삶에 대한 그녀의 집착은 불안한 가정환경에서 제대로 성장할 수 없었던 아들에게로 향한다. 남편의 역할을 해주지 못한 브룩스를 대신해 아들을 정신적인 남편으로 삼은 바바라. 아들을 향한 그녀의 불안정한 욕망은 결국 자신의 아들과 끔찍한 관계를 맺도록 만든다. 이 근친상간의 관계 속에서 아들은 자기 자신을 잃어가고, 결국 자신의 엄마를 칼로 찔러 죽이고 만다.


영화 속에서 아들과 엄마의 근친상간 장면은 딱 한번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사교계의 우아한 여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아들과 관계를 맺는 장면은 선정적으로 연출되지 않았지만, 이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스크린 속에서 이 장면이 등장하는 순간에는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의 썩어 문드러져가는 내면과는 다르게 아무런 감정도 없이 이뤄지는 기계적인 관계, 표정 사이의 간극은 더욱 끔찍하고 처절하게 다가온다. 이렇게 망가진 이들의 삶은 다시 회복될 기회도 잃은 채 끝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추락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바바라를 연기하는 줄리안 무어의 연기는 정말 대단했다. 내면이 나약한 여자의 모습은 이미 <매그놀리아>를 통해 본 적이 있었지만, 그 내면 속에서 우아함을 겸비한 광기 어린 모습은 순식간에 스크린을 압도해버린다. 특히 공항에서 자신의 남편과 애인이 공항을 떠나려고 할 때 그들 앞에서 자신의 명성에 흠집이 난 것에 대해 화를 내며 남편에게 고귀하고 지적인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장면은 단 1초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소름 끼치도록 완벽한 '바바라'의 모습이었다.


사실 그때 바바라는 겉으로는 화를 내면서 속으로는 울고 있지 않았을까. 그다음 장면에서 택시 기사와 여관에서 잠을 잔 뒤 등장한 깨진 유리병은 무참하게 부서져 버린 그녀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