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단평
흔히 '멜로'라 일컬어지는 장르는 서로 다른 위치에 놓인 남녀가 우연히 만나 서로의 교집합을 발견하며 사랑에 빠지고 서로의 차이점을 찾고 위기에 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은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데 <만추>는 오히려 인물들과 관객들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둔다. 멜로 영화의 공식처럼 여겨지는 음악으로 감정과 정서를 채우려고 하는 시도는 <만추>에서 모두 배제된다.
멜로 영화의 두 축을 담당하는 애나와 훈은 서로 다른 성향을 갖고 있다. 자신의 남편을 죽인 날 자신의 내면을 깨끗이 비워버린 애나와 다르게 훈은 무언가 꽉 차 있는 캐릭터이다. 영화 첫 시작, 증거를 없애버리기 위해 책을 찢어 자신의 입안으로 밀어넣는 애나의 캐릭터가 비어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과 달리 훈 캐릭터 내면에 무엇이 채워져 있는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훈에게 가득 차 있는 것이 언제 어디서 누군가 자신을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이 순간부터 두 남녀는 서로 마음을 열게 된다. 영화는 공허와 충만, 상이한 성질을 갖고 있는 두 캐릭터를 설정했지만 두 캐릭터의 성질을 서로 다른 시점에 보여주면서 이를 극을 심화시키는 활용한다.
모든 것이 건조한 결로 가득한 이 영화에서 이질감이 느껴지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은 범퍼카 환상 장면이다. 서로 엇갈릴 수 밖에 없는 두 남녀의 운명과 달리 범퍼카 환상 장면은 멜로가 아닌 로맨스처럼 아기자기하게 연출되었다. 이 장면은 마치 영화 속에서 온전히 녹아들지 못하고 마치 그 부분만 다른 영화인 것처럼 튀는 것 같이 느껴지는데, 오히려 이런 이질적인 느낌으로 인해 영화의 결말과 상충되어 이어질 수 없는 두 남녀에 대한 안타까운 감정을 더욱 깊어지게 만든다.
애나를 연기한 탕웨이는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핵심이다. 오프닝 장면에서 조용히 종이를 씹어먹는 장면은 연기하는 그 순간, 눈동자 만으로 캐릭터가 가진 공허함을 탁월하게 드러내며, 이 영화의 모든 순간이 그녀를 통해 완성될 것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