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의 계곡> 단평
※ <엘라의 계곡>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엘라의 계곡>은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실종된 자신의 아들을 추적해나가는 과정을 꽤 절제된 방식으로 재현하고 있다. 이러한 절제된 방식을 통해서 <엘라의 계곡>은 아버지가 알지 못했던, 아니 정확히 이야기한다면 알 수 없었던 아들의 끔찍한 모습을 드러낸다. 아버지,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 성실하고 순한 아이였던 아들은 누군가의 개인화된 화면 속에서 불에 타 죽은 시체 위에 스티커를 붙이고 잡혀온 포로의 상처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며 잔인하게 웃고 있는 악마의 모습이었다.
영화 속 아버지-아들의 관계는 과거-현재의 미국을 대변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아버지의 기억 속 아들의 모습과 아들의 진짜 모습 간의 괴리가 발생하기 시작할 때, 아버지는 아들의 진실을 완강히 부정한다. 클럽 주인이 아들이 스트립 댄서에게 욕을 했다고 이야기했을 때 아버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는 아들에 대해 묻더니 지금은 아니라고 하는 거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으로 대변되는 '아버지'의 미국, 그리고 이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망가지고 서로를 공격하게 된 젊은 세대인 '아들'의 미국은 이제 자신들이 무찔러야 할 '적'(애초부터 적이 존재했었는지조차 의문이지만)이 없어지자 서로를 공격하고 파괴하기 시작한다. 바로 이러한 미국의 현주소를 상징하는 것이 토막 나서 불태워지고 들짐승에게 뜯어 먹힌 '아들'인 것이다.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기 전 비로소 살아있는 실체로서 아들을 마주한다. 아들은 상부의 명령 때문에 아무런 죄도 없는 한 아이를 치어 죽였다. 아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죄책감이 남아있지만,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죄책감을 지웠고 결국에는 감정이 없는 괴물이 되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보낸 소포 속 성조기는 낡고 더럽혀져 있고, 찢어진 부분도 있다. 이것을 그대로 들어 올리며 아들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토해내는 아버지의 얼굴은 분명 10년 전 미국의 일그러진 얼굴일 것이다.
영화와 오프닝에서 뒤집어져있던 성조기를 바르게 고치는 아버지의 모습과 영화 엔딩에서 바르게 된 성조를 뒤집어 매다는 아버지의 모습은 서로 대구를 이루며 결국 미국이란 나라의 신화는 붕괴된 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1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이란 나라는 여전히 살아남았지만, 이들의 내면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파괴성이 언제 다시 악마의 얼굴로 드러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