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라는 이름의 '여성'에 대하여

<화녀> 단평

by 송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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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감독의 영화는 지금 봐도 파격적일 정도로 강렬한 여성상들을 그려낸다. 영화가 만들어졌던 당시 사람들에게 드리워졌던 '근대화'라는 가면은 김기영 감독의 작품에서 하나도 남김없이 까발려진다. 김기영 감독의 대표적인 작품인 <하녀>뿐만 아니라 <화녀>, <화녀 82> 등 대부분의 작품 속에서 여성들을 통해 욕망에 충실한 인간들의 모습을 낱낱이 재현하다. 이들 작품 속에서 여성들은 사람들의 어떤 편견으로 탄생한 악녀라기보다는 하나의 동물에 가깝다. 그들은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며 어떤 사회적 규범이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스크린 속을 활보하고 기존에 정립되어 있는 모든 체제들을 무너뜨리는 존재들이다.


<화녀>의 스토리는 <하녀>와 거의 비슷하지만 세련되고 다듬어진 느낌의 <하녀>와 달리 더 거칠고 에로티시즘이 강하며 충격적인 묘사가 즐비하다. (영화가 제작된 지 48년 정도 지났어도 시신을 닭 모이로 갈아서 처리한다고 말하는 장면은 지금 봐도 충격적이다.) 흑백영화로 제작되었던 <하녀>와 달리 <화녀>에는 원색이 도입되면서 집안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붉은 색감으로 근대화 속에서 가려져 있던 인간들의 욕망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색감이 갖는 분위기는 김기영 감독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기운이자, 영화를 더욱 생동적으로 이끌어내는 힘이다.


감독의 영화에서 언제나 그러하듯 모든 상황 속에서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력한 남성과 욕망에 충실한 여성의 모습은 이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비관습적인 묘사이고 현재 한국 영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김기영 감독 만의 인장과도 같다. 강렬한 원색으로 가득 차 욕망으로 들끓고 있던 집안과는 달리 마지막 엔딩에서 보이는 회색 도시의 풍경은 포스트모던 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해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을 억누르려는 기제처럼 보인다. <하녀>가 재평가되었던 것처럼 이의 연장선상에서 재평가받아야 할 걸작. 필름으로 상영된다면 꼭 달려가서 다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