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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희운 May 16. 2019

한국 대중영화가 나아가야 할 길

<걸캅스>가 한국 대중 영화 속에서 갖는 의미


<걸캅스>는 완벽한 대중영화의 틀을 가진 영화이다. 그렇지만 여성들에게 이 영화는 대중영화보다는 하나의 지표와도 같다. SNS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 영화 보기를 독려하고 있으며, 시리즈로 기획된 영화인만큼 어서 빨리 손익분기점을 돌파해서 다른 시리즈를 극장에서 보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단순히 오락 차원에서 영화를 관람한다기보다는 어떤 하나의 '운동'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중영화라는 단어 자체는 사실 애매한 지점들이 많으나(모든 영화들은 기본적으로 극장에서 개봉하여 돈을 버는 것을 최종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일단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대중영화’의 정의란 ‘일반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많은 이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봤을 때, <걸캅스>는 수많은 대중들을 타깃으로 한 대기업의 영화이면서 동시에 많은 여성 관객들이 즐겁게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흥미로운 지점들이 존재한다.



<걸캅스>는 한국 영화 속에서 그동안 흔히 봐왔던 형사 버디물이다. 이전의 형사 버디물과 다른 지점은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이다. 단순히 ‘여성’이 주인공이었다면 <걸캅스>는 많은 관객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걸캅스>는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만큼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위치시키지 않고, 여성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여성이 사회 속에서 겪는 부당한 일들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이다. 가령 자신의 친구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음에 스스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피해자의 친구에 대해 미영이 “여자들이 잘못한 게 없는데 스스로를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게 화가 난다”라고 말하는 장면이라든지, 디지털 성범죄 중 하나인 '몰카'에 대해서 장미가 찰진 욕을 쓰면서 그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분명히 말하는 장면이라든지. 이러한 내용들이 영화가 아닌 SNS상에 올라왔을 때는 그 사람이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닌 이상 그저 한 사람의 의견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대화와 이 주제를 대하는 태도들이 수많은 이들이 보는 대중영화에 등장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개인의 의견이 아닌 한 사회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다수의 의견이 된다. 대기업이 투자하고 제작한 영화에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는 배우들의 입을 통해 이러한 말이 나오는 순간 그것은 사회 속에서 발화되는 수많은 의견 중 하나이자 사실이 된다. 이러한 ‘말’들이 <걸캅스>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아마 많은 여성들은 그동안 한국 영화를 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부수적인 장치로서 성적 대상화된 여성이 아닌, 말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인간으로서의 여성을 많은 이들을 타깃으로 하는 영화에서 발견했다는 기쁨이다.



<걸캅스>를 수많은 한국 여성들이 좋아하고, 자신의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영혼 보내기’를 동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것은 한국영화를 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공감’이라 생각한다. 남성이 주인공인 대부분의 한국 영화들은 분명 재미나 완성도 면에서는 <걸캅스>보다 훨씬 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영화들이 많았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극한직업>이라든지, 본격적인 천만 관객의 시대를 열었던 <왕의 남자>라든지. 하지만, 이런 영화들을 보면서 많은 여성들이 공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영화라는 매체가 모든 관객들로부터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공감보다는 자신의 여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혹은 단순히 영화를 보고 싶기 때문에 영화관을 가는 이유가 대부분이다. 과거와 달리 시대는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자신들의 이야기가 스크린에 걸리기 원하는 여성 관객들의 니즈가 생기기 시작했고, <걸캅스>는 사회 안팎으로 적절한 시기에 때맞춰 개봉했다. 개인적으로는 <청년경찰>, <극한직업>을 보면서 훨씬 더 많이 웃었고, 작품성 측면에서는 <범죄와의 전쟁> 등을 보며 감탄했다. <걸캅스>는 재미있고 시원한 영화라기보다는 나도 모르게 울컥하게 되는 영화였다. 여자이기 때문에 직장에서 남자 상사한테 나긋나긋하게 굴어야 하고, 뭐라도 이야기할라치면 왜 이렇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냐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부조리함을 공식적으로 공감받았고, 여성들의 범죄에 대해 그것은 작은 일이라고 말하는 세상에게 잘못되었다고 말하며 잘못된 문제를 여성들이 힘을 합쳐 해결하는 것. 그것은 한 번도 여성인 '나'의 이야기를 한국 영화 속에서 만나보지 못했다가 드디어 한국 대중 영화 속에서 ‘나’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는 감동이었다.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러 가고는 하지만 영화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복잡한 매체이다. 세상에 나오는 모든 작품들이 그러하듯, 한 작품이 나오면 어쩔 수 없이 그 시대를 반영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이 나오게 된 시대적인 배경을 가장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는 매체가 바로 영화이다. 지금 이 시기에 <걸캅스>가 나오고 관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것. 이것이 한국 대중영화가 앞으로 어떠한 길을 가야 할지 <걸캅스>가 나름대로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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