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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희운 May 24. 2019

‘우리’의 슬픔은 틀리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로 쓰인 진짜 역사, <김군>

※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영화를 관람하고 작성하였습니다.

※ 이 리뷰는 <김군>의 엔딩에 대한 내용 및 주관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극장에서 개봉했던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와 같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뤘던 영화들은 상업 영화라는 틀 안에서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스토리텔링으로 진행되어 왔었다. <김군>은 형식이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다른 상업 영화들과 형식 자체에서 차이점을 가지지만, 우리가 가장 간과했던 ‘현실’의 손을 잡고 우리 앞으로 끌고 와 우리의 심장을 철렁 이게 한다. 그것은 우리가 직접 들을 수 없었던 피해자들의 목소리였다.



영화는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를 갖고 와서 그들이 얼마나 아파했고,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감정에만 호소하지 않는다. 영화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북한군이 벌인 일이라 주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 그들이 북한에서 내려온 특수군 ‘광수’라고 지칭했던 광주 시민들을 찾아가면서 ‘제1광수’라고 지칭되었던 인물의 행적을 조금씩 추적해나간다. ‘제1광수’를 찾아가는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다. 민주주의, 이런 정치적 이념을 떠나서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공격당하는 것을 보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 군에 맞서 싸웠던 일반 시민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트라우마를 안고 산다. 우리에게 그저 역사책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건에 불과했던 일들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이다. ‘그 일’이 있은 이후 어떤 이는 고문을 당해 자신의 기억 일부를 잊어버렸으며, 어떤 이는 물고문에 대한 공포로 아직도 미용실에서 스스로 머리를 감아야만 한다. 어떤 이들을 다른 이 대신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아직도 그들의 무덤을 찾아가 보지도 못했다.



이 수많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실제로 듣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그것은 어떠한 조작이나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의 진실과 우리가 표면적으로만 접해왔던 광주의 그 당시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진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미 알려져 있던 진실과 현실을 우리는 애써 보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광주 시민군이자 무수히 많은 광수로 지목되었던 한 분의 인터뷰는 그야말로 우리가 그동안 광주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섬뜩함 그 자체였다. ‘제1광수’가 북한군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갈 때 뵈었던 분 중 한 분은 감독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인터뷰하고 자면 잠을 자지 못한다. 5.18 주동자들을 북한군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나, 그들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아픔과 상처를 들추는 사람들이나 무엇이 다른가?” 정확한 말은 기억할 수 없었지만, 우리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정의라고 주장하며 울부짖었던 것들 속에서 단 한 번이라도 피해자들을 생각한 적이 있었는지, 어쩌면 우리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부끄러워서 스크린을 쳐다볼 수 없었다.



우리는 영화 속에서 끝끝내 살아있는 ‘제1광수’를 만날 수 없었다.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고, 오로지 김군이라고 불렸던 그는 이미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수많은 희생자들의 가슴 아픈 토로를 통해 찾게 된 김군의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은 상상 이상으로 잔혹하여 나도 모르게 시선을 돌려버리고 싶었다. 아직도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악의적인 조롱은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더라도, 왜곡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피해자들의 진심처럼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감정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그 당시 겪었던 것들이 모두 진실인 것처럼 그들이 지금까지도 느끼고 있는 모든 아픔들은 잘못된 것이 아니며, 이 영화를 보면서 공감하고 느낀 우리의 슬픔도 모두 틀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 나아가야만 한다. 사실을 왜곡하는 이들에게 이 감정을 알아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광주 시민들이 느꼈고,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이 감정을 우리 다음 세대에게까지 온전히 전수하기 위함이다. 감정을 느끼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감정도 모르고 수치도 모르는 이들이 부끄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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