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접할 수 없는 불균질한 마녀들의 세계

<서스페리아>(2018) 단평

by 송희운


※ 이 리뷰에는 <서스페리아>의 결말에 대한 내용 및 주관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서스페리아> 리메이크작을 보았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포스터 카피가 말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공포영화가 아니다'라는 생각이었다. 장르적으로 봤을 때는 공포 영화의 범주에 포함되지만, 공포 영화라기보다는 오컬트적인 요소들을 가미하여 ‘마녀’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드라마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원작을 연출한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은 자신의 작품 속에서 '마녀'들을 오랜 시간 동안 다뤄왔는데, 그의 영화 속에서 마녀들은 어떤 주체적인 대상이라기보다는 누군가를 두렵게 하는 공포의 대상에 가깝다. 하지만 <서스페리아>는 다르다. <서스페리아>의 서사 속에서는 공포에 질린 이도 여성이고, 공포에 질리게 하는 이도 모두 여성이다. 딱 한 명의 남성이 서사 속에서 주요 인물로 등장하지만, 그 남성을 연기한 인물이 틸다 스윈튼이라는 점은 이 영화가 전적으로 ‘마녀’들을 위한 이야기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영화는 꽤나 긴 러닝 타임 동안 사회적인 분위기와 무용단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들을 서로 얽혀놓아 여러 층위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았지만, 이 영화가 '마녀'들을 위한 영화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개인적으로는 하이라이트 장면에서야 비로소 영화가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수지는 계속해서 마녀의 새로운 육체를 위한 그릇이자 희생자로서 위치한다. 더불어 이 무용단에서 조금이라도 불길한 징조를 느낀 이들은 비밀을 세상 밖으로 이야기하지 못한 채 공포스러운 미지의 공간으로 끌려가야만 하는 희생자로서의 여성이었다. 그렇지만 영화의 하이라이트에 이르러서 수지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영화는 희생자로만 놓여있던 '수지'의 위치를 전복시켜 버린다. 수많은 이들을 희생시키며 자신의 목숨을 영위해왔던 마녀 마르코스와 달리, 그 마녀의 근원으로서 강력한 힘을 가진 진짜 마녀는 신체는 죽었지만 영혼은 죽지 못한 희생자들을 구원하고 우연히 끔찍한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한 남성에게는 자비를 베푼다.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공포스럽고 악한 존재가 아닌, 강력한 힘으로 자신의 적을 숙청하고 약한 자들에게는 관용을 베푸는 '마녀'. 이 영화는 단순히 여성을 악하거나 희생당하거나 둘 중 하나인 이분법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그 당시 혹은 과거의 역사 속에서 무수히 존재했던 ‘마녀’라는 존재가 과연 무엇이었는가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수잔이 요제프 박사에게 하는 대사인 “너는 아무 잘못이 없으니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내가 모든 것을 잊게 해 주마”가 그 당시 시대를 관통하는 동시에 이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대사 일지도 모른다. 내게 있어서 <서스페리아>는 원작에서처럼 완전히 세계와 단절된 공간이 아닌, 세계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음침한 공간 속에서 그동안 마녀로 불렸던 여성의 존재를 재정의하는 영화로서 강렬하게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