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진 않지만, 힐링푸드는 찾고 싶어.

나만의 힐링푸드에 대한 이야기

by 박정호

[1] 프롤로그 - 새우깡


글쓰기를 좋아해서 취미 모임을 신청했다. 한 달 용돈의 1/4을 조금 넘게, 적다면 적지만 많다면 많은 돈을 썼다.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하는데,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과 정말 글을 쓰는 일은 쥐며느리와 며느리의 차이와 같다는 어느 책의 통렬한 지적을 읽고 우발적으로 한 일이었다. 쥐며느리가 되고 싶은 며느리의 심정으로 결단을 내렸다. 어쨌든 닥치면 쓸 수 있을거라는 낙관적 기대도 한 몫 했다. 사려 깊지 않은 섣부른 선택이 여느 때처럼 나를 궁지로 몰아 세운다. ‘힐링푸드’란 주제가 한없이 어렵게 느껴진다. 담배를 태울 용기는 없으니 이런 순간엔 새우깡이라도 한 봉지 뜯어 책상 앞에 앉아야 한다. 직장에서 끝내지 못한 잔업을 집에서 마무리 할 때 어김없이 헛헛함을 달래 준 과자가 아니었던가. 어라? 어라가 아닌 유레카!


새우깡.. 새우깡이요!! 어쩌면 새우깡이 나의 힐링푸드인지도 모르겠구나.



[2] 힐링푸드요?


새우깡이 힐링푸드가 될 수 있을까?


우선은 힐링에 대해 알아야겠다. Chat GPT에 물어보니 “힐링은 몸과 마음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안정감을 가져다 주는 과정이나 경험을 나타냅니다.”라고 알려 준다. 새우깡은 현명하신 Chat GPT가 알려준 조건을 훌륭하게 충족시킨다. 이만하면 새우깡을 힐링푸드라 불러도 괜찮을 것 같다. 건강을 조금 해치긴 하겠지만, 적당히 먹으면 위험한 수준은 아닐 테니까. 좀 소박하고 보잘 것 없긴 해도 나의 힐링푸드는 새우깡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여기서 끝? 이렇게 맺음하기엔 염치없고 시시해서 이야기를 놓을 수 없다. 수학 주관식 답안을 타당한 풀이 없이 ‘1’이라 추측하고 어설프게 맞춘 기분이랄까. 그런 단답형 말고, 타당한 풀이 과정을 보태야겠다.



[3] 힐링의 추억


근래의 힐링푸드는 새우깡이지만, 새우깡이 늘 유일한 힐링푸드는 아니었다. 돌이켜보니 나의 힐링푸드도 나름의 변천사를 겪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명음반에도 타이틀 곡이란 게 있듯이 내 힐링푸드 리스트에도 타이틀 푸드라 할 만한 게 두 개 쯤 있다. 1번 트랙, 2번 트랙 들어 보시라.


군대에 있을 때는 코카콜라가 나의 힐링푸드였다. 의미 없이 연병장과 훈련장을 돌아야 했던 날, 상관과 선임에게 모멸스런 말을 듣고 삼켜야 했던 날, 전역까지는 너무 까마득한 시간이 남아서 가슴이 답답했던 날에는 코카콜라를 사 먹었다. 콜라 특유의 따끔 청량한 목넘김이 가슴 속의 답답함을 시원하게 해갈해 주는 기분이었다. 콜라 역시 건강을 해친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 하나를 제외한다면 콜라야말로 자본주의가 낳은 ‘완전 식품’임을 부정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콜라는 오감으로 소비자의 기호를 만족시키는구나. 빨갛고 늘씬한 캔의 맵시는 시각을, 냉장고에서 꺼냈을 때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차가운 한기는 촉각을, 뚜껑을 열 때 탄산이 빠져나가는 시원한 소리는 청각을, 탄산과 섞여 나는 묘한 단 내는 후각을, 그리고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상쾌한 목넘김은 미각을 한껏 만족시킨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게다가 당시로서는 1,000원도 하지 않는 싼 가격과 민간 생활을 환기시키는 갬성(?)적 만족의 엄청난 교환비도 콜라의 매력이었다. 그 매력이 나로 하여금 ‘비 오는 날에는 가리봉동에 가야한다’는 양귀자 씨의 소설 제목처럼 우울한 날 콜라를 찾게 했었나 보다.


그런데 이상했다. 사회에서 먹는 콜라는 그만한 매력이 없었다. 완전 식품인 줄만 알았던 콜라는 그저 평범한 기호 식품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전역한 후 수험생이 되었을 때, 나는 콜라 대신 캔커피를 자주 찾는 인간이 되었다. 처음에는 카페인의 힘을 빌려 졸음을 쫓아 보겠다는 애처로운 노력으로 커피를 시작했는데, 언젠가부터 커피 향이나 커피를 손에 쥔 운치가 더 좋아서 매일 마셨다. 내가 주로 먹는 커피는 자판기에서 파는 500원 짜리 레스비였다. 카페 문화가 미처 우리 동네까지 보급되지 않은 시절에 캔커피는 믹스 커피보다 한 차원 품격 있는 고급 음료였다. 나는 믹스 커피로는 구현할 수 없는 깊은 향과 맛을 즐겼고, 독서실의 군상을 관찰하며 군상 속에서 떠오르는 상념도 함께 음미했다. 건물 옥상 낡은 벤치에 앉아 500원 짜리 캔커피를 아껴 먹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큰 위안이었다. 공부에서 벗어나 기호 식품을 섭취하는 그 시간이 유일한 사치이자 호사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호사스러움이 걱정스러워 하루에 커피를 딱 한 캔만 마셨다. 때는 아직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이었는데, 그 독서실의 수험생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마냥 저만치 떨어져 옥상 일탈을 즐겼다. 어떤 이는 담배를 태웠고 어떤 이는 잡담을 나눴다. 어떤 이들은 그 속에서 연애 감정을 싹틔워 알콩달콩 놀았다. 다른 수험생을 보는 일은 늘상 같은 일상이었지만 흥미로웠다. 수험서를 내려놓고 부질없이 시간을 허송하는 취미가 없었더라면 나는 수험 생활을 끝까지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시험에 합격한 후로는 그만큼 즐거운 ‘티타임’을 가져 본 일이 없다.



[4] 원효대사 해골물


채원, 혹시 채원이도 힐링푸드 있어?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쇼핑하는 아내에게 내가 물었다. 아내의 대답은 왕만두였다. 아내는 나의 콜라 예찬처럼 만두를 예찬했다. 잘 빚어진 만두가 찜기를 나올 때의 설렘, 만두피를 걷어낼 때 고물고물 삐져나오는 고기 속과 그 속에 밴 육즙의 향, 열기를 불어가며 만두를 입에 넣었을 때의 고소한 식감을 이야기하며 당장 만두를 베어 문 것처럼 행복한 표정이었다. 푸드 칼럼니스트 된 마냥 진지하던 아내는 뜬금없는 내 물음의 까닭을 물었다.


이번주부터 글 쓴다고 했잖아. 거기 첫 번째 주제가 힐링푸드야. 그런데, 좀 잘 안 되네.


아내는 글이 잘 쓰이지 않아 걱정이라는 내 푸념을 듣고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며 나를 다독였다. 우리 모임의 취지를 알지 못하는 아내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인용하며 제목처럼 글을 써 보라했다. 아내도 언젠가는 떡볶이를 좋아했었는데, 떡볶이가 주는 식품으로서의 완성도나 미각적 쾌감보다는 그 음식을 먹으면 혀 끝부터 가장 행복했던 학창시절이 떠올라 좋다는 첨언을 덧붙이면서. 그리고 내 힐링푸드의 내력이나 그 음식들을 통해 얻는 즐거움을 생각해 보라 했다. 그날 밤 아내와 나는 이야기 꾸러미로 한참 동안 상상 만찬을 즐겼다.


누군가 어떤 음악을 좋아한다고 했을 땐, 선율이나 가사의 아름다움이 그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음악에 얽힌 추억과 그 추억을 환기하는 순간이 좋아서 그렇다는 대답이 많지 않을까. 나도 그렇다. 나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을 좋아한다. 그 노래를 흥얼거리면 전역하던 해의 설렘과 기대가 다시금 되살아난다. 힐링푸드나 최애 음식에도 비슷한 원리가 작용한다. 어떤 음식이 누군가를 ‘힐링’ 할 수 있다면 그 음식의 영양학적, 미각적 충만함으로만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에 얽힌 사연과 역사, 추억과 경험, 인식적 만족감이 마음의 힐링을 가능케 하는 요소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5] 힐링을 꿈꾸며


역설적이게도 힐링을 찾는 시간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인간은 결핍이나 좌절 속에서 희망과 힐링을 갈구한다. 사랑을 잃었을 때, 사람을 잃었을 때, 자존을 잃었을 때, 더 이상 어떤 기대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심각한 상실 속에서 때로는 죽음이 오히려 삶보다 나을 거라는 위험한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란 책 제목은 우리가 무엇으로 이러한 상실을 극복하면 좋을지를 상기시킨다. 그것은 바로 소소한 행복이다. 소소한 행복에서 비롯한 기대와 만족은 우리를 그런 절망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또 절망을 견뎌 이겨내게 한다.


“하루에 5분, 5분만 숨통 트여도 살 만하잖아. 편의점에 갔을 때, 내가 문 열어주면 ‘고맙습니다…’하는 학생 때문에 7초 설레고, 아침에 눈 떴다가 ‘아, 오늘 토요일이지…’ 10초 설레고… 그렇게 하루 5분만 채워요. 그게, 내가 죽지 않고 사는 법.”


「나의 해방일지」란 드라마 속 대사를 잠깐 인용했다. 발화의 청자는 알콜중독으로 망가져가는 호스트바 마담, 화자는 술을 끊으라는 다그침 대신 위와 같은 말로 그를 달래 주었다.


범부를 일으키는 건 거룩한 명예나 찬란한 성취가 아니라 소소하지만 가볍지 않은 일상 속 행복이다. 군대 생활과 수험 생활을 견디게 한 것은 하루 5분 설렘을 가능하게 한 콜라와 커피, 두 힐링푸드였다. 오늘 나는 간식 서랍을 가득 채운 새우깡을 보며 7초 설렌다. 새우깡을 먹으며, 육아에서 벗어난 유부남의 일탈을 떠올리며 10초 설렌다. 그 잠깐의 일탈과 호사에 기대 죽지 않고 살아간다.


주말에는 아이가 잠든 시각에 아내와 함께 왕만두, 과자 파티를 열어야겠다.

(2023.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