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지 않아도 괜찮아

뜨겁지 못한 삶에 대한 자기 위로

by 박정호

[1] 프롤로그: 나희덕, 「땅끝」


산 너머 고운 노을 보려고

그네를 힘차게 차고 올라 발을 굴렀지

노을은 끝내 어둠에게 잡아먹혔지

나를 태우고 날아가던 그넷줄이

오랫동안 삐걱삐걱 떨고 있었어


어릴 때 나비를 쫓듯

아름다움에 취해 땅끝을 찾아갔지

그건 아마도 끝이 아니었을지 몰라

그러나 살면서 몇 번은 땅끝에 서게도 되지

파도가 끊임없이 땅을 먹어 들어오는 막바지에서

이렇게 뒷걸음질 치면서 말야


살기 위해서는 이제

뒷걸음질만이 허락된 것이라고

파도가 아가리를 쳐들고 달려드는 곳

찾아 나선 것도 아니었지만

끝내 발을 디디며 서 있는 땅의 끝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것이

땅끝은 늘 젖어 있다는 것이

그걸 보려고

또 몇 번은 여기에 있으리라는 것이



[2] 땅끝과 해 끝


땅끝을 처음 찾은 것은 2016년 여름이었다. 생애 처음 계획한 출사 여행이었고 일몰을 찍겠다는 일념만으로 해남까지 달려갔다. 젊어서 부릴 수 있는 호기였을까. 끼니도 거르고 셔터를 눌러 댔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보니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캄캄한 바다에선 소금 내 가시지 않은 미적지근한 해풍이 연신 불어왔다. 발길도 물길도 끊긴 생경한 어둠 속에서 우리는 망연히 보이지 않는 수평선을 응시한 채 생각에 잠겼다.


풍경보다도 좋았던 그날의 대화는 잊을 수 없다. 서른 가까이 살아온 생애에 대한 이런저런 반성을 담은 대화였다. 뜬금없는 줄 알았던 그날의 대화는 땅끝이어서 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딘가든 ‘끝’이라는 건 반성하게 하고 성찰하게 하기 마련이니까.


연말이라는 시간도 그런 점에서 땅끝과 닮았다. 성탄 무렵의 12월이면 어김없이 한 해를 되짚어 보게 된다. 땅끝에 서서 생애를 반추했던 어느 저녁처럼, 해 끝에 선 나는 올해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행복했는지, 잘 살았는지를 물어본다. 새해 다짐만큼이나 반복적으로 묻고 묻는 질문이지만 매년 선뜻 ‘그래’라는 대답은 망설여진다.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내다본 1400만 가지의 미래 가운데 지금이 최선이었냐고 물어본다면 ‘그래’보다는 ‘글쎄’라는 기분이 든다.


마음씀* 네 번째 글쓰기 주제를 받아 든 마음도 그랬다. 치열과 처절이라니, 그것도 내 삶 속에서. 어감처럼 뜨거운 주제를 손에 꼭 쥐고, 지나온 강물을 들여다보듯 한 생애를 되짚어 본다. 그 어느 때 나는 한 번이라도 뜨겁고 찬란해 본 일이 있었던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그래보다는 글쎄에 가까운 기분이지만, 글 닿는 자리에는 어떤 해답이 구해질 것 같아서 자판을 두드려 본다.



[3] 우승콜


네 번의 녹아웃 패배, 네 번의 탈락이 있었지만, 이 순간을 위해 다시 일어났습니다.

마지막 우승으로부터 7년, 첫 우승으로부터 10년이 지나 SKT의 유산이 다시 불타오릅니다.

T1이 여러분의 2023년 세계 챔피언입니다!

- 2023년 리그오브레전드 월즈 결승, 영어 중계진의 우승콜*


마음씀의 주제를 받고 가장 먼저 생각난 장면이었다.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이었던 그들의 우승 서사는 치열했다고도 처절했다고도 할 수 있었다. 2년짜리 서사에는 다섯 번의 준우승이, 10년짜리 서사에는 309번의 패배가 포함된다. 그리고 그 끝은 찬란했다. 결승전이 끝난 지 한 달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의 우승이 회자된다. 페이커가 숙적을 밀어 넘겼던 결정적 순간은 롤이라는 게임이 끝날 때까지, 어쩌면 이스포츠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기억될 장면일지도 모른다. 그보다 뜨겁고, 그보다 찬란하며, 그보다 고고한 순간이 또 얼마나 있을까.


나는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치열함이자 처절함이었다.



[5] 치열하지 않아도 괜찮아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는 말이 있다. 정말 그렇다. 누구도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는 절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한쪽 면만을 허락하는 달의 공전처럼, 인스타그램 속 인간은 꿋꿋이 밝고 희망차며 또 화려한 모습만을 보여 준다. 때문에 피드 속 세상은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피드들을 보면 외롭고, 부럽고, 부끄러워지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치열과 처절에 대한 글이 어렵고 내키지 않았던 까닭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험에 치열이나 처절이란 수식을 붙이면, 인스타그램 피드처럼 내 삶에서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열심히 살았고 아픈 적도 많았지만 나를 극한까지 몰아붙이거나 넘어진 일은 없었으므로, 나로선 치열과 처절을 경험했다고 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치열하거나 처절해 본 일이 없다고 해서 나의 삶을 부정하는 태도는 갖지 않는다. 내가 선 자리가 가장 높고 위태로운 절벽이 아니라 해서, 혹은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꽃길이 아니라 해서 그 가치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 내 삶의 의미를 찾고 가치를 높이기 위해 내딛던 걸음과 다다른 자리들은 하나같이 아름답고 가치로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번쯤은 나만의 젖은 땅끝에 서 보았기 때문이다.



[6] 10년 전 땅끝, 10년 전 일기(2013년 가을)


“지난 10월 한국시리즈가 끝날 즈음에, 경기에서 진 선수들의 기분이 시험에서 떨어진 수험생의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때문에 작년에는 기쁨에 겨워하는 삼성 선수들보다, 안쓰러운 모습의 두산 선수들에게 더 많이 마음이 쓰인 것 같다. 마치 내가 낙방할 것을 알았던 건지.


그렇지만 새 봄에는 새 시즌이 개막되는 것처럼, 나의 인생도 지난겨울이 폐막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새 시즌을 준비하는 야구 선수의 마음처럼 이번 겨울은 열심히 보낼 거라는 다짐을 한다. 시험을 비켜선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 2013년 가을, 네 번째 임용 시험에서 떨어지고 쓴 일기에서



[7] 10년 후 땅끝, 미니씀

“10년 뒤의 나는 여전히 뜨거웠으면 좋겠다. 하고 싶다는 욕망과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내려놓지 않으려 노력하겠다.”

“10년 뒤의 나도 글을 쓰고 있었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책도 한 권쯤 냈으면 좋겠다.”

- 2023년 겨울, 마음씀에서


이상하게도 살아오면서 지금이 가장 뜨겁다. 치열까지는 아닌데 예열 정도는 다다른 기분이다. 진심으로 하고 싶은 목표 어쩌면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기 때문일까. 과시용 치열이 아니라, 뜻하는 바 있어서 뜨거워질 수 있다면 정말로 행복할 것 같다. 마흔이 되기 전에는 책을 한 권 내고 싶고 기꺼이 뜨거워지고 싶다.



# 에필로그: 처절


언젠가 삶 끝에 서게 될 날도 올 것이다. 운이 좋게도 아직까지는 처절에 가까운 바닥은 없었지만, 삶 끝에 닿기 전까지 한 번쯤 혹은 몇 번쯤 그런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만치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망가지지 않는 인간이 되고 싶다.


왕도는 없다. 그때까지 내가 좀 더 단단한 인간이 되는 수밖에.

나는 일상을 살고, 책을 읽고, 글을 씀으로써 단단해진다. 나로서는 그런 일들이 혹독한 시련에 대비하여 방파재를 쌓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리하여 삶 끝에서는 부끄럽거나 쓸쓸하지 않았으면 한다.

(2023.12.27.)


* 이 글을 읽고 나누는 글쓰기 모임 이름입니다.

* 우승콜 원문: Four times T1 has lost in the Bo5, four times they’ve been knocked out, and four times they have got back of this moment. It was seven years last and a decade since their first. The SKT legacy has been reignited. T1 will be your 2023 world champions. (https://www.youtube.com/watch?v=tQBfV9iJal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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