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유행하는 '아무튼' 시리즈를 내가 쓴다면 (쓰는 사람에 대한 동경)
[1] 프롤로그: 수상 소감
그저 한 편의 단편을 썼을 뿐이다.
늘 해오던 일이고
늘 해나갈 일이다.
(중략)
감사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쓰겠다.
할 수 있는 말도 하고 싶은 말도
나로선 그게 전부란 생각이다.
- 2010년 이상문학상 작품집, 박민규 작가의 수상 소감 중에서
[2] 아무튼, 글쓰기
연말이었다. 결제하시겠습니까.라는 물음 앞에서 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결제의 대가가 두려웠다. 카드 대금 152,100원은 일시불로 지불하면 그만이지만, 여섯 번 나누어 할부처럼 감당해야 할 창작의 고통이 벌써부터 무겁게 다가왔다. 그러다 때마침 ‘마감 임박’을 알리는 챗봇의 문자가 나를 재촉했을 때, 나는 알았다. 어차피 누를 거잖아. 누군가 속삭이는 기분이었고, 결국 결제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이다. 나는 믿는다. 마감을 앞둔 한 인간이 가진 절박함의 힘을. 사실은 마감을 넘긴 한 인간의 마지막 양심을. 아침이 밝기 전에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든 쓰겠지. 아무튼, 쓰겠지.
그래서 오늘의 주제는 ‘아무튼, 글쓰기’이다.
[3] 아무튼, 나다운
“선생님 같아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선생다움과 선생스러움이 나에게 베어 있는 모양이다. 두 달 전 이곳 마음씀에서도 같은 말을 들었다. 내 글에서 국어 교사의 면모가 보인다 하니 머쓱하고 부끄러운 기분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답다는 그 평이 썩 마음에 들어 좋았다.
나이를 먹으면 이상형이 변화하듯, 좋은 글에 대한 관점도 세월을 탄다. 언젠가는 바둑에서 말하는 신의 한 수처럼 만고에 회자되는 미문을 최고로 생각했다. 또 다른 시절에는 화려한 수사나 사려 깊은 통찰을 담은 문장을 동경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필자 다운 문장’이 나의 이상문이다.
화향백리 인향만리라는 말이 있다. 꽃의 향기는 백 리를 가고, 사람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는 뜻이다. 사람의 향기를 가장 오래, 멀리 전할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글이다. 글은 인간이 만든 것들 중 가장 사람을 닮은 향기를 낸다. 그래서 문향은 인향이라 할 만하다.
나의 글에서는 나의 향기가 났으면 한다. 나의 글을 읽은 후에는 나를 만난 듯한 기시감을 느꼈으면 한다.
[4] 아무튼이 아닌, 왜
쓰다 보면 문득 고독했다. 그 고독이란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문장을 적어주지는 않는다는 자명한 사실에서 비롯한 고독이었다. (중략) 그렇게 나는 글을 쓴다는 건 고독을 대면하는 일이라는 걸, 평생 글을 쓰겠다는 것은 평생 고독을 대면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축구장에 들어설 때만이 축구 선수라 할 수 있는 것처럼 고독할 때만이 작가의 일이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놀랍게도 나는 그 고독이 따뜻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2009년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연수 작가의 수상 소감 중에서
글을 쓰다 보면 여러 가지 고통과 마주한다. 나로선 한 문장도 나아갈 수 없을 때의 막막함과 무력감이 가장 힘들다. 하얀 설경 속에서 등정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산악 대원처럼, 망연한 여백 앞에서 어떤 말을 이어야 할지 몰라 막연해진다. 그때의 막연함이 김연수 작가가 말한 고독일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힘들다. 그리고 어렵다. 매번 사고의 설경 속에서 나는 조난당한다. 때로는 여정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하산하거나, 엉뚱한 봉우리에 올라 그나마의 완주에 안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어설픈 산행을 닮은 나의 글쓰기를 사랑한다. 설원을 내딛는 발자국이 길을 만드는 것처럼, 문자 하나 단어 하나를 모아 문장의 길을 내는 과정이 뜻깊고 보람된다.
글을 쓰면서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내면의 풍경을 맞닥뜨렸을 때, 나에게서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는 나를 닮은 문장을 써내렸을 때 더없이 큰 기쁨을 느낀다. 그럴 때의 글은 잠시나마 나의 분신이다. 또 다른 나다. 나는 글을 통해 많은 여러 모습의 나를 만나고 싶다.
[5] 에필로그: 아무튼, 노력
운동을 한다. 필력을 기르는 마음으로 덤벨을 들고, 스트레칭을 한다. 글쓰기와 무관한 주제 같지만 건강이 관건이라는 생각이다. 눈이 침침해서, 손목이 시큰해서, 어깨가 무거워서, 허리가 당겨서. 종종 펜을 내려놓고 키보드에서 손을 뗀다. 신체의 내구력이 다해서 글을 쓰지 못하게 될까 걱정스럽다. 그럴 때마다 체력이 곧 필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창작은 노동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닐 것이다.
그리고 공부를 한다. 글을 쓰다 보면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 글은 나의 분신이다. 결국, 나다. 좋은 인간, 향기 나는 인간이 되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그것이 공부의 이유다. 책을 읽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책은 좋은 공부지만 전부일 수는 없다. 나는 마음 내키는 만큼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열심히 일한다. 나로선 그게 최선의 공부다. 배우려는 자세로 열심히 부딪치다 보면, 부산물처럼 감정과 생각이 차곡차곡 쌓인다. 좋은 때를 만나면 지층처럼 쌓인 부산물 위에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듯 좋은 글이 돋아난다.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쓰고 보니, 열심히 사는 것이 열심히 쓰는 일인 듯싶다. 목표는 1쇄다. 그때까지 아무튼 열심히 산다.
* 화향백리 인향만리: ‘언어의 온도(이기주)’에서 발췌함
(2024.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