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투병일지

병과 아픔에 대한 기억

by 박정호

Side A. 특별한 봄


2017년은 봄은 특별했다.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살다 보면 여러 종류의 봄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해의 봄은 정말이지 특별하다고 할 만했다. 시작부터 비범했던 그 봄에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탄핵됐다. 겨우내 수십수백 번, 수백수천만의 시민들이 모여 국정농단을 규탄했다. 직무정지부터 탄핵 선고로 이어지는 법적 절차는 신속했고, 선고문을 읽어내리던 헌재소장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서울의 봄처럼 들뜬 시민들은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며 한껏 고무됐다. 나도 그랬다. 그해 봄, 나는 더 나은 세상을 기대하는 한 명의 시민이었고, 더 나은 수업을 꿈꾸며 대학원 공부를 시작한 한 사람의 교사였다. 기대로 부푼 봄은 더없이 순탄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얼굴 반쪽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제까지 움직이던 얼굴 반쪽이 한 순간에 굳어졌다. 심하게 얻어맞은 격투기 선수처럼 오른쪽 얼굴 전체가 내려앉았다. 눈이 감기지 않았고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나 양치를 할 때는 벌어진 입 사이로 음식과 양칫물이 흘렀다. 나는 본디 무신경해서 그것이 병인줄도 몰랐고, 불행의 정체를 몰라 불행하지 않은 사람처럼 병을 알지 못해 아픈 줄도 모르고 돌아다녔다. 병원에 갔을 때 한의사는 ‘구안와사’, 양의사는 ‘벨 마비’라며 나의 병을 명명했다. 그리고 다음 날, 병가를 냈다.


인사를 마치고 돌아서던 내게, “박 선생, 이것만 하고 가.”라며 부탁하던 부장 선생의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전학급 학생의 성적이 한 번에 출력되도록 엑셀 매크로 함수를 걸어 달라는 것이 그의 부탁이었다. 굳이, 왜, 그때 그런 부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왜 그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는지, 반나절 걸려 함수를 완성하고서도 죄송하다며 교무실을 나서야 했던 까닭은 무엇인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악의 없이 보일 수 있는 매정함의 끝은 어디까지인지, 내가 기대한 인간다움은 상식으로 불릴 수 없는 것인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의 이유는 무엇인지 그 어느 것 하나도 알 수 없었다.


집에 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을 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울음이 잦아들 때쯤 나는 방문 밖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기척을 감지할 수 있었다. 말없이 울음소리를 듣고 있던 이는 아마도 엄마였다. 몸이 아픈 일로 한 번, 마음이 아픈 일로 한 번 그렇게 엄마에게 불효했다. 엄마를 통해,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지만 자식보다 약한 부모도 없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엄마는 동네 아주머니, 할머니들에게 묻고 물어 용하다는 병원과 한의원을 찾아냈다. 한 달 동안 엄마와 나는 치료에 전념했다.


병원에 갔을 때, 뚜렷한 원인이 없는 병이어서 대증요법으로 증상을 달래는 것이 곧 치료라고 의사는 설명했다. 대개는 낫지만 후유증이 크게 남을 수도 있고, 영영 한쪽 얼굴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말을 부연했다. 그 명확한 의학 소견이 단단한 선고문처럼 야속하고 서러웠다. 한의사는 좀 더 부드러웠다. 그의 소견은 확신과 기대 중간 어디쯤이었다. 나는 양약과 한약을 번갈아 쓰며 병을 다스려 보기로 했다.


치료의 과정은 지난했다. 뚜렷한 원인이 없다는 말은 모든 습관이 원인이라는 말이기도 했다. 출근을 하지 않아 늘어난 시간에 반비례하여 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들었다. 의사는 조금이라도 해로울 법한 모든 행동을 금지했다. 친절한 한의사는 매일같이 장침을 얼굴에 꽃아 주었다. 약침을 꽂고 약방의 냄새를 맡고 있으면 몸의 병이 낫는 만큼 마음의 병은 깊어가는 기분이었다. 탕약 속에서 달여지는 한 포기의 약초처럼 약침과 부항 같은 일련의 치료를 견디는 일이 나의 일상이었다. 치료를 받으며 누워 있으면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어떤 날에는 내가 다크나이트의 검사 하비 덴트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얼굴의 절반을 잃은 나 역시 일그러진 표정만큼 마음이 망가져 있었으므로, 나도 그와 같이 괴물이 된 것은 아닐까 하고 염려했다. 사춘기스러운 유치함이었지만 그 비유가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나는 영화 속 검사만큼은 망가지지 않았다.



Side B. 감사한 봄


키보드에 올려둔 손을 잠시 내려놓는다. 실로 기나긴 봄이었지만, 또 덧없이 짧았던 봄이라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 보면 삶의 모든 세월 역시 기나긴 듯 덧없이 짧은 봄처럼 지나고 마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서른여섯의 나는 6년 전의 서른을 떠올리며 일기를 쓰고 있다. 그때의 눈물과 서러움에 대하여, 미움에 대하여, 회의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여전히 대답할 수 없는 물음 투성이지만, 세상에는 대답이나 납득을 허락하지 않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이제 안다.


창에 비친 얼굴을 보며 미세하게 남아 있는 상흔을 더듬어 본다. 알리지 않으면 알 리 없는 입꼬리의 내려앉음에 쓸쓸해지지만, 왼편으로만 쓸쓸하지 않은 표정을 보며 다시금 안도한다. 그것은 “이제 조금씩은 움직여져요.”라고 대답할 때의 감정과 비슷한 질감이었다. 대증요법이 효험을 발휘했거나 혹은 시간이 가서 저절로 좋아졌거나. 아무튼 회복이란 것이 시작됐다. 때마침 봄꽃이 무더기로 피어났고, 여러 번 휘감은 솜사탕처럼 벚나무가 보기 좋게 부풀어가는 계절이었다. 전에 없이 아름다운 봄이었다.


약침을 꽂은 채 더는 한쪽 얼굴이 타버린 검사의 이야기는 떠올리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대신 온전히 얼굴이 나을 무렵의 모습과, 무렵에 할 만한 버킷리스트를 떠올려 봤던 것 같다. 그래봤자 탄산음료 먹기, 밀가루 음식 먹기, 마스크 벗고 다니기 따위의 소박한 일들 뿐이었는데, 떠올림 만으로 행복해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인간은 욕심이 소박할수록 행복해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얼마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고생 많았다는 선생님들의 위로와 보고 싶었다는 아이들의 인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밖에는 여전한 풍경이었다. 잠시 멈칫하다가 또 다른 함수를 부탁하는 부장 선생의 동료 의식도 여전했지만, 나는 더 이상 그런 말들로부터 상처받지 않은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회복이라기보다 이른바 성장이었다.


특별하고도 아름다웠던 그 봄에 대해선 아직도 할 이야기가 많다. 어쩌면 서른 넘어서의 모든 이야기는 그 봄에서 비롯된 후일담이다.


다시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아내와 아이의 잠자리를 확인해 본다. 여기까지 이어진 후일담의 서사가 만족스럽다. 버킷리스트의 목록들도 마음먹으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깨끗하게 낫기 전에는 절대 오지 마라며 엄포를 놓던 교감 선생님의 당부가 문득 떠오른다. 선생님 돌아오세요라며 드문드문 날아오던 카카오톡, 문자와 애써 내내 밝으려 했던 엄마의 표정도. 그런 것들이 없었다면 아마 나의 후일담은 무척이나 다르지 않았을까.


그해 5월에는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고,

돌이켜보면 특별하고도 감사한 봄이었다.


(2023.12.11.)


※ "Side B"의 도입은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장면 전환과 문체를 참조하여 습작처럼 적었습니다.

이전 04화10년 후의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