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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움직인 음악과 노랫말 (존 케이지 「4'33''」를 듣고)

by 박정호

[1] 프롤로그: John Cage, 「4’33”」


1952년 8월 29일, 미국 뉴욕의 한 야외공연장에서 어떤 피아니스트가 무대 위로 올랐다. 관객들로부터 가벼운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그는 자리에 앉았다. 악보를 넘긴 후 안경을 쓰는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그리고 잠시 멈칫하더니 연주를 준비하는 듯싶던 그의 손이 건반을 건너 건반 덮개를 덮었다. 그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아무런 연주도 하지 않았다. 여느 피아니스트처럼 진지한 표정이지만, 그뿐이었다.


그것은 무음(無音)의 연주였다. 정적 속에서 숨죽인 관객들의 기침 소리, 귀 끝을 스치는 바람 소리, 무연(無演)의 연주와는 무연(無緣) 한, 풀벌레 소리만 가득했다. 그렇게 4분 33초가 흘렀다. 피아니스트는 다시 사뭇 진지하게 등장을 역재생한 것처럼 악보를 덮고 안경을 벗었으며, 건반 덮개를 연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관객들은 마찬가지로 가볍게 환호하고 박수를 쳤다.


현대 음악의 통념을 깨고 새로운 장을 열었다 평가받는, 「4분 33초」의 첫 공연이었다.


*공연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JTEFKFiXSx4



[2] 영화의 재구성, S#52 몽타주


*아래는 조로증을 앓는 소년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의 한 장면을 각색한 글입니다. 영화는 김애란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입니다.


열여섯에 여든을 넘긴, 조로(早老)의 소년이 있었다. 사춘기도 채 제대로 겪지 못한 아이의 마음을 두고 몸은 벌써 저만치 늙어 있었다. 주름진 손과 얼굴, 이른 나이에 새겨진 육신의 고통으로 아이는 신음했다. 그러나 아이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연민과 동정의 시선이었다. 그 배려 없는 관심이, 잘못 쓴 양분처럼 아이를 시들게 했다. 그것이 그 아이의 삶이었다.


어느 날, 아이는 처음으로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생겼다. 친구가 된 이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한 소녀였다. 소녀는 소년에게, 자신 역시 머리카락을 모두 잃었고 일 분이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안다는 말로 병의 깊이를 가늠하게 했다.


두 아이의 교유가 깊어가던 날, 소녀는 소년에게 물었다. 넌, 언제 살고 싶어지니. 소년은 생각했다. 생의 감각을 흔드는 순간에 대해. 남들보다 수 배 빠르게 시들어가는 육신 속에서, 그런 운명 속에서. 생을 긍정하고 갈구하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푸른 하늘의 하얀 뭉게구름을 볼 때.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들을 때.

맑은 날 오후, 엄마와 함께 햇빛을 머금은 포근한 빨래 냄새를 맡을 때

무뚝뚝한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가 연속극을 보며 우는 걸 볼 때

저녁 무렵 골목길에서 밥 먹으라고 손주를 부르는 할머니의 소리가 울려 퍼질 때

여름날 엄마가 아빠 등목을 해 주며 찬물을 끼얹는 걸 볼 때

초승달이 뜬 초저녁에 아빠와 함께 초롱초롱한 금성을 볼 때

반짝반짝 빛을 내며 야간 비행을 하는 비행기를 볼 때


소년은 살고 싶었다. 세상 가장 평범하게 관찰되는 풍경과 사건들을 바라보며, 그런 삶이 이어지고 허락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일 분이 영원처럼 느껴지는 고통이 닿기 전, 영원과 영원 사이 찰나의 일상이, 소년에게는 누구보다도 더없이 소중했다.



[3] Noise Uncanceling


밤마다 산책을 한다. 육아기(育兒期) 아빠에게 허락되는 몇 안 되는 사치이자 취미이다. 산책은 약속이나 조율을 필요치 않는다. 그러므로 육아와 쉽게 병행한다. 천변(川邊)으로 이사 온 덕에 가진 습관이 육아기에 빛을 본다. 그나마 다행이다.


오늘도 걷는다. 잠깐만 다녀올게. 하고 양해를 구한다. 그래라는 아내의 답은 매번 고맙고, 그로부터 현관을 나서는 순간은 매번 즐겁다. 산책하지 못하는 날이면 열심히 일한 끝에 월급을 공제당한 것처럼 서러워진다. 월급을 잃어야 하는 삶만큼이나 산책을 잃는 삶도 가난한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많지 않은 월급과 길지 않은 산책이지만 일의 대가로 누리는 보상과 자유가 이만하면 부족하지는 않은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몇 달 전에는 걷기라는 사치에 한 가지 취미를 더했다. 바로 음악 듣기다. 음악에 조예가 깊진 않지만, 산책하는 시간을 좀 더 즐기고 싶은 마음에 나름대로는 값비싼 물건을 샀다. 그것은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갖춘 헤드폰, QC Ultra였다.


Quiet-Conmfort라는 이름답게, 헤드폰을 쓰고 나면 소음 없이 귀가 편안했다. 때로는 음악을 듣고, 때로는 강연을 들으며, 때로는 통화를 하면서 걷고 걸었다. 광고처럼 멋진 문구로 편의성을 포장하진 못해도 제법 오랜 기간 만족감을 주는 편안함이라고 나는 설명했다. 겨우내 감기로 고생하면서도 겨울이 가면 헤드폰을 쓰기 어려울 것 같아 아쉬운 기분이 들 정도로 만족감이 컸다.


그런데 어느 날, 헤드폰을 챙기는 일이 썩 번거롭게 느껴졌다. 노이즈 캔슬링을 캔슬링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천변을 걷던 마음으로 아무것도 휴대하지 않은 채 평범하게 스쳐가는 풍경에 눈길을 쏟고, 풍경과 닮은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산책이 그리워졌다. 그날은 허전한 귀로 산책을 다녀왔고 퍽 만족했다.


그날 이후 이따금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챙기지 않고 산책을 가곤 하는데, 그런 산책이 좋은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산책을 하며 듣는 세상의 소리, 평범한 수다와 백색 소음이 그 어떤 음악보다 마음을 편하게 하는 때가 있다. 조로의 소년이 생을 갈구하던 때 떠올린 소박한 풍경처럼, 어떤 날에는 선곡하지 않아도 들려오는 세상의 연주가 가장 좋은 음악이자 가사가 아닐까 한다.


내가 굳이 음악을 찾지 않는 날의 산책은 영원과 영원 사이 찰나의 일상이 그리워지는 마음 때문인 듯싶다.



[4] 말 없는 말


존 케이지의 「4분 33초」처럼, 침묵으로 더 많은 것을 전하는 음악과 문학을 몇 가지 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시대유감(時代有感)」으로 불합리한 검열 제도에 항거했고, 황지우는 「묵념, 5분 27초」라는 시를 통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뜻을 전했다.


때로는 침묵이 더 큰 전언을 전하는 순간이 있다. 나는 비록 말 없는 말에 대해 침묵하지 못했지만, 침묵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음악과 시 한 편을 이렇게 전해 드린다.



[5] 에필로그: 그리고 아차상


말하지 않는 말, 소리 내지 않는 연주에 대해 오래 이야기했다. 그렇다고 해서 음악을 부정하거나 침묵만을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음악은 음악이 아닌 것들이 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힘이 있다.


예컨대 음악은 음악과 닮은 나의 자아와 조우하게 한다. 음악을 통해 나는 지금은 찾을 수 없는 ‘그때의 나’를, 혹은 애써 외면하지만 떨쳐낼 수 없었던 ‘숨겨진 나’를, 그 밖에도 일상적 자아와는 결이 같다 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나를 마주한다.


에필로그에는 결이 다른 나를 불러내는 몇몇 곡을 소개한다.


스물다섯을 채 못 넘기고 시간이 멈춰버린 동기 형의 애창곡, 부활의 「사랑할수록」

그 형과 함께 본 영화 「비열한 거리」의 OST였던, 부활의 「노을」

삶과 사랑을 자조하면서도 긍정하는 노랫말이 아름다웠던, 권진아의 「운이 좋았지」


이런 곡들에는 아차상을 주겠다. 기회가 된다면 아차상의 노랫말들로도 한 타래의 이야기를 풀어 보고 싶다.


(2024.4.4.)




※ 윗글 역시 대구 글쓰기 모임 '마음씀'에서 '내가 좋아하는 가사'를 주제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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