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生)이라는 혼돈

아빠가 되며 깨달은 혼돈의 의미

by 박정호

[1] 프롤로그: 출산 일기


[추석]

꼼지 얼굴처럼 둥근 보름달 뜬 밤에

꼼지는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해요.

엄마가 보고 싶어 나도 모르게 양수 주머니를 터뜨렸나 봐요.

엄마, 아프지 마요.

엄마, 걱정하지 마요.

엄마, 꼼지를 지켜 주세요.

엄마, 꼼지가 만나러 갈게요.

엄마, 꼼지도 달님에게 소원 빌게요.

엄마, 아빠, 꼼지 우리 세 가족 오래도록 행복할 수 있게 해 달라고요.

* 꼼지: 우리 아기의 태명입니다.


[산통]

엄마가 아파요.

캄캄한 꼼지의 세계가 이제 꼼지를 밀어내려 해요.

엄마가 아파하는 순간에 꼼지도 아프고 힘이 들어요.

엄마 목소리, 아빠 목소리, 둘라 선생님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요.

엄마, 이제 꼼지가 곧 나가려나 봐요.

*둘라: 출산 도우미


[빛]

주변이 환해요.

한 번도 밝아본 적 없는 꼼지의 세계와는 많이 달라요.

화해진 눈으로 빛이 쏟아져요.

꼼지는 처음으로 목울음을 울어요.


[엄마]

연극의 주인공처럼 핀 조명이 떨어진 자리 가운데 누운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우리 엄마


오늘 주인공은 꼼지와 엄마


“꼼지야.”라고

엄마가 말하기 전에 나는 엄마가 엄마인 줄 알았답니다.


[아빠]

이곳은 세계의 밖

따뜻한 양수 대신 피부로 와닿는 공기가 차갑게 느껴지지만

“꼼지야.”라고 불러 주는 따뜻한 목소리

저는 아빠 덕분에 세상으로 온 일이 서럽지 않았어요.



[2] 2022.09.11.


우리 아기의 태명은 꼼지였다. 꼼지락거린다는 태명에 걸맞게, 태동이 거세고 힘찬 아기였다. 아내는 아기의 발길질에 늘 힘겨워하면서도 힘겨움으로써 아이의 삶과 기척을 느낄 수 있어 안도했다. 나는 그런 아내의 배 위에 손을 얹거나 얼굴을 묻은 채 태담을 건네는 일상 속에서 천진하게 행복했다. 아빠 됨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아빠 됨을 느껴서 좋았던 듯싶다. 그때의 기억과 감정들이 벌써 아득하지만, 한편으로는 뚜렷하고 명징하게 남아 있다.


그해의 추석 그러니까 2022년 9월 10일, 아기는 다른 방식으로 엄마의 배를 두드렸다. 무렵부터 태동이 잦아드는 것에 내내 불안해하던 아내가, 그날따라 계단 오르기에 열과 성을 다했기 때문이었다. 열과 성을 다한 아내의 부름에, 아이는 양수 주머니를 터뜨리는 것으로 응답했다.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부지런한 아내가 한 달도 더 전에 챙겨둔 출산 가방을 들고 효성병원으로 갔다. 까만 밤의 보름달이 유난히도 크고 밝았던 기억이 난다. 아내를 태우고 병원으로 가는 순간 내내 소원을 빌었기 때문이다. 그저 아내가 아기를 건강하게 세상 밖으로 내어줄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초보 아빠의 소원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내는 다음 날 아침부터 꼬박 8시간을 넘게 진통했다. 오후 늦게부터는 꼼지의 맥박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아내는 무통 주사를 맞으며 분만을 서둘러야 했다. 아내가 분만실로 갔다. 가깝지만 먼 곳으로 사라지는 아내를 보며, 다시 마주하는 아내는 한 아이의 엄마가, 다시 마주하는 나는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분만실 너머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울음을 듣는 순간 나는 드디어 아빠였다. 곧이어 수술이 잘 끝났다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나와 닮은 조그마한 한 인간을 조우했다. 너였구나.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할 아이에게 한참을 이야기했다. 양수 너머 전해지는 태담이 아닌, 공기를 매질로 하는 나의 첫마디가 아이에게 온전히 전해지기를 바랐다. 이해되지 않겠지만, 나의 목소리로 아이가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며 그랬다.



[3] 생이라는 혼돈


마취가 채 가시지 않은 아내를 곁에 두고, 출산 일기를 썼다. 뱃속에서 열 달, 그리고 산도를 지나며 세상을 마주한 아이의 감정을 어떠했을까 생각하면서, 그날의 아내와 훗날의 아이를 위해 적어 내린 글이었다.


‘혼돈’이라는 주제를 두고 문득 그날의 일기와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은, 산도를 열어젖히며 세상으로 고개를 내민 아기의 첫 감정이 아마도 혼돈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둠에서 빛으로, 양수에서 공기로, 안에서 밖으로, 탯줄에서 분유로. 살아온 모든 질서와 인식이 뒤바뀌는 순간의 감정이야말로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혼돈이 아닐까 했다.


처음으로 부모 되는 일 역시 혼돈 그 자체였다. 그것 역시 내가 살아온 경험과 질서 너머의 세상으로 들어서는 일이었다.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아기의 생리 문제를 해결하는 일부터, 건강하고 영민한 아이로 기르기 위한 고민과 의사 결정을 해나가는 일까지 모두 알지 못하는 혼돈의 세계였다. 그 속에서 18개월을 살았다. 18개월 동안 나와 아내는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다른 관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삶이란 생(生)으로 혹은 다른 무엇으로 그렇게 혼돈이라는 이정표를 남긴다. 그런 혼돈 속에서 ‘나’란 존재는 이따금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변화하기도 한다. 혼돈으로 인한 변화는 대체로 고통스럽고 고민스럽기 마련이지만, 나는 그 변화와 고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빅뱅을 거쳐 혼돈(Chaos)에서 질서(Cosmos)로 나아간 우주적 시간처럼, 인간의 시간도 혼돈을 거쳐 정돈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여정일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예순이 넘어 서른을 넘은 아들 걱정을 하는 나의 엄마가 시사하듯 육아에 끝이 있겠냐마는, 아빠 노릇의 혼돈이 갈무리되는 어느 날에는 좀 더 성숙한 인간, 나은 인간이 될 것이라는 천진한 바람을 가져 본다.



[4] 에필로그: 혼돈(混沌)과 혼돈(혼豚), 그리고 정돈*


네이버에 ‘혼돈’이라는 검색어를 찾아보았다. 네이버는 전국적으로 흩어진 돼지고기, 돈가스 맛집 지도와 함께 전화번호 몇 개를 일러 주었다. 혼자 먹는 돈가스 뭐 그런 건가. 혼돈(混沌)보단 혼돈(혼-豚)이지. 네이버의 가르침에 무릎을 탁 친다.


혼돈(混沌)에 대해서는 아직도 혼란스럽다. 혼돈이 무엇이며, 그리하여 내 삶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명쾌하지 않다. 혼돈도 나의 삶도 4월에는 정돈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2024.3.21.)


*이 글 역시 대구 글쓰기 모임 '마음씀'에서 작성한 것이었으며, 그때의 주제가 '혼돈'이었음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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