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친 길 위에서

인생에 대한 자문자답

by 박정호

기차를 타고 뒤를 돌아보면 굽이굽이 쳐 있는데

타고 갈 때는 직진이라고 밖에 생각 안 하잖아요.

저도 반듯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면 굽이쳐 있고 그게 인생인 거 같죠.

- 「다큐 3일, 서민들의 인생분기점: 구로역 편」 중에서


숙제를 미루고 하는 일들은 언제나 왜 그렇게 재미있는 건가. 글쓰기 과제를 남겨둔 채 유튜브를 보는데 어느새 30분이 흘렀다. 그러다 ‘다큐 3일’이라는 영상을 보다가 눈이 멎었다. 직진이라 생각하며 달려온 길도 돌아보면 굽이쳐 있는 게 인생이라는 담담한 말이 어찌나 멋있던지. 범인(凡人)이라 할 만한 이의 비범(非凡)한 통찰이 마음 깊이 와닿았다. 산다는 건 그런 거구나. 되뇌고 되뇌게 하는 힘을 가진 말이었다.


나 역시 곧은 줄 알고 나아갔지만 굽이진 인생을 산 범부(凡夫)였다. 그 굽이진 길을 열심히 걷고 걸었다. 특히 10대 때는 대학이라는 과업, 20대 때는 취업이라는 과업을 이루기 위해 내내 수험생이어서 애를 먹었다. 나는 대학 입시를 두 번 보았고, 임용 시험은 다섯 번 쳤다. 개중에는 수험생이라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미흡하게 준비한 시험도 있었지만, 마음 한편은 늘 무거운 수험생이었다.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해 놓은 생애 주기에서 늦어질수록 조바심이 들어 불안해했고, 몸과 마음을 다쳐 앓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굽은 줄 모르고 나아간 시간들이 지금에 와서는 뜻깊고 행복했다.


오히려 서른 넘어 맞이한 오랜 시간 동안은 숙제처럼 이루어야 할 일들이 많지 않은데 오히려 불행하게 느껴졌다. 삶은 여전히 바쁜데 나의 걸음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 것 같은데 그 일이 누구를 위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거절하지 못해 쌓인 군더더기들이 나를 답답하게 했다. 그런 순간의 삶 속에서 나는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잃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스물의 나와 서른의 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비록 가진 것이 없었지만 나를 위해 굽이친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던 스물의 ‘나’와 모자라지 않은 삶 속에서 스스로는 거두지 못한 서른의 ‘나’를 돌이켜 보며, 내게 필요한 삶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스스로를 사랑할 것.

그리고 스스로를 위해 살아갈 것.

혼란스러운 순간에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문(自問)하고, 자답(自答)할 것.

너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는가 하고.

그리하여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것.


(2024.3.7.)


※ 대구 글쓰기 모임 '마음씀'에서 적은 글을 일부 고쳐 옮깁니다. 글 주제는 원래 "'자'로 시작하는 말에 대한 자유로운 쓰기"였고, 이 글의 원제는 "자문자답(自問自答)"이었습니다.


dmitry-rodionov-uMdrK06651M-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Dmitry Rodio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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