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재하는 감정에 대한 성찰
[1] 감정의 칵테일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서른이 넘어 술을 입에 댄 날들을 합해도 열 번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절주(節酒)나 금주(禁酒)를 따로 다짐한 일은 없다. 오히려 음주(飮酒)가 나의 욕망을 거스르는 일이었으니 의지가 필요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결혼의 이점 가운데 하나로, 절주나 금주의 명분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꼽았다. 그 정도로 술은 내게 매력이 없다.
그런 내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은 음주 경험이 몇 번 있다. 서른두 살의 여름, 태국에서 마신 칵테일은 그중 하나였다. 그해 여름은 8월이 아니라 2월이었다. 태국은 일 년 내내 여름인, 그런 나라였다. 이국 호텔의 루프탑 카페에서 나는 친구가 권하는 술을 마셨다. 레시피 없이 아무렇게나 섞어 만든 평범한 칵테일이었지만, 여행이라는 안주를 곁들인 순간 그것은 그 어떤 명주(名酒)가 부럽지 않은 고급주(高級酒)였다.
그날의 상차림은 단출하지만 더할 것이 없었다. 연신 부는 더운 바람과 휴양의 나라를 찾은 관광객들의 북적거림, 국적을 알 수 없는 언어로 가득 채워진 소란이 루프탑의 풍경과 잘 어울렸다. 외향형 인간인 친구의 농담도 술의 풍미를 더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녀석은 탁월한 사교성을 발휘해, 그날 역시 초면의 외국인에게 다가가 이런저런 부탁을 주고받으며 친분을 쌓았다. 왜,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는 나의 물음에 친구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뭐.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문득, 손에 쥔 칵테일이 녀석의 농담과 닮은 것처럼 느껴졌다.
절반쯤의 사실과 나머지 절반쯤의 거짓. 혹은 참이라고도 거짓이라고도 할 수 없는 모호한 것들을 섞어 만든 친구의 농담이 꼭 내 손에 쥔 혼합주(混合酒), 칵테일처럼 느껴졌다. 이름도 레시피도 없는 녀석의 농담은 그날 그곳의 분위기와 녀석의 화술(話術)을 통해 묘한 맛을 내는 것이었다. 나는 술도 농(弄)도 좋아하지 않지만, 녀석의 화술과 주술(酒術) 만큼은 예외인지도 모르겠다. 아마 가끔 일상을 내려놓고 싶을 때 녀석과의 여행이 그리워지는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 인생의 쓴맛, 그리고 단맛
술을 삼가는 일 다음은 커피를 삼가는 일이었다. 쓴 것들을 모조리 끊어서일까, 요즘은 다시 삶이 쓰게 느껴지는 날이 많았다. 제법 단단해졌다고 믿어온 마음이, 사소한 일로 흔들리곤 했다. 나는 작은 불의에 크게 분노하고, 커다란 불의에는 침묵하고 마는 나의 작은 마음에 속상해졌다. 산다는 건 그런 거라고, 혹은 가장(家長)이란 그런 거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내가 가끔은 미웠다.
삶이 쓰다 느껴질 때, 남들이 하는 술이나 커피 대신 출사를 갔다. 목적지는 지도를 펼쳐 차로 닿을 수 있는 아무 땅끝이었고, 해 뜨는 시각이나 해 지는 시각에 맞춰 당도하면 그게 끝이었다. 나는 인적 드문 해변에서 나처럼 세월을 허송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며 쓸쓸해지는 일이 좋았다. 그렇게 하고 나면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절기(節氣)처럼 꾸준한 취미는 아니었지만, 나름의 유서(由緖)를 가진 취미는 아이를 키우며 손을 놓았다.
그제는 오랜만에 출사를 다녀왔다. ‘나의 감정을 드러내는 물건을 소개하라’는 글쓰기 모임의 주제 때문이었다. 먼 곳은 아니었다. 아이를 씻기고 하루가 저무는 시각에, 단출하게 동네 풍경을 찍었다. 그 소박한 단기 출사(短期出寫)가 수줍게 내린 봄비처럼 가문 마음을 얼마만큼은 해갈해 주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인쇄하여 펼쳐보니, 그것은 마치 근래 나의 내면 풍경이 아닌가 싶었다. 베낄 사(寫)에 참 진(眞)을 써서 사진이라 불리는 인쇄 매체는, 빛을 담은 풍경을 베끼는 것인 동시에 사람의 마음을 베끼는 일이 아닐까. 사진의 결과물에 영향을 미치는 데는 카메라의 설정값뿐만 아니라, 사진사의 마음과 태도에도 큰 지분이 있다. 그런 것은 마음의 설정값이라 할 만하다. 나는 내가 찍은 여러 사진들을 통해 서른일곱 봄날, 내 마음의 설정값이 무엇이었는지를 가늠해 본다.
나는 나의 사진들로부터 피로와 자조, 불안과 부담 같은 부정적 감정부터 충만과 안도, 기대와 감사 같은 긍정적 감정까지 하나로 갈무리할 수 없는 여러 줄기의 감정들을 읽어낸다. 그 모든 감정이 뒤섞인 사진을 모자이크 하듯이 펼쳐내 보니, 여행지에서 마셨던 칵테일을 입에 댔을 때의 기분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쓴맛, 단맛 뒤섞인 그 감정의 정체는 미각적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묘한 범주에 속해 있다. 나는 나의 사진들을 음미(吟味) 하며 오랜만에 취하듯 생각에 잠겨 본다.
(2024.4.11.)
※ 윗글 역시 대구 글쓰기 모임 '마음씀'에서 '내가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을 주제로 작성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