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나의 하늘(유치환의 「깃발」을 읽고)
[1] 프롤로그: 유치환, 「깃발」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2] 아침의 의식(어느 5월의 일기, 2024.5.8.)
하지(夏至)가 가까워온다. 동향의 창을 넘나드는 햇살이 조금씩 빨리 찾아온다. 이제 갓 여섯 시를 넘긴 시각일 것이다. 햇살보다 부지런한 아내는 벌써부터 출근 준비를 서두르는 모양이다. 유아식을 삶고 옷 단장을 하는 소리가 무의식(無意識)을 넘어 고막을 간지럽힌다. 나는 전의식(前意識) 언저리에서, 아내의 체온이 채 사라지지 않은 이불에 얼굴을 묻고, 해설피 울음 우는 여름 소처럼 늑장을 부려 본다.
“세인아, 일어나.”
아이를 깨우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가 가끔 ‘정호야 일어나’처럼 느껴지곤 한다. 아내의 목소리 후엔 이내 자박거리며 걸어들어오는 아이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해사하게 웃으며 “아빠!”라고 외치는 아이가 안방을 넘어 드는 순간, 더는 늑장을 부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체념 속에서 의식(意識)을 챙기기로 마음먹는다.
아이를 안고 바깥 화장실로 간다. 온수를 틀고 엉덩이를 씻긴다. 기저귀를 갈아 준다. 밤새 용변을 보았다면 발진 크림도 잊지 않는다. 안아 들 때 허공을 가르는 힘찬 발길질이 아이의 성장을 가늠하게 한다. 차츰 버거워지는 성장세를 보며 드는 기분은, ‘벌써 이만큼’이라는 대견함과 ‘언제 저만치’라는 막연함 사이 어디쯤이다.
아이의 아침은 아내가 먹인다. 나는 얼굴을 씻고 수염을 깎는다. 푸석해진 얼굴을 보며, 마흔이 채 되지 않은 내가 ‘벌써 이만큼’ 늙어 있다는 사실에 흠칫 놀란다. 성장과 노화는 등가교환이 아닐까 아찔해진다. 교무실에서 관리와 시술의 노하우를 주고받던, 아주머니 선생님들의 대화를 떠올려 본다. 만사를 제쳐두고 이야기꽃을 피우던 그들의 목소리에 뒤늦게 공감한다.
“여보, 견과류.”
아차. 아침을 준비하던 차였다. 아내의 목소리로 그것을 기억해 낸다. 노화 예방에 좋다는 견과류 한 줌과 미숫가루 비슷한 천마 차(天麻茶) 두 잔을 준비한다. 단출한 아침이지만, 부부에게 허락된 최대한의 성찬이다. 그렇게 타협했다. 아내는 거기에 과일 몇 조각을 더 곁들여 먹는다. 그녀의 부지런함을 존경하지만, 차마 과일까지는 손이 가지 않는다.
식사를 마친 후, 양치를 한다. 꼬꼬마 우리 딸의 이도 닦아 준다. 양말을 챙긴다. 나의 것과 딸의 것을. 겉옷과 마스크도 마찬가지로. 신발 역시 그렇다. 외출을 앞둔 딸의 표정은 언제나 고무되어 있다. 매일 가는 어린이집 등원 길도 저렇게 좋을까. 어떤 아이들은 등원이 싫어 내내 운다는데, 외향적인 딸의 성격이 다행스럽기만 하다.
일곱시 삼십 분, 어린이집에 도착한다. 어린이집은 우리 아이의 등원으로 개시(開始) 한다. 말하자면 우리 아이가 늘 첫 번째로 등원한다. 나는 원장님께 죄송스러워 꾸벅, 아이에게 미안해서 꾸벅, 두 번 고개를 숙인다. 아이는 그런 나의 정수리 너머로 배웅하는 인사를 건네준다. 여기까지가, 가끔은 내려놓고픈 아침의 의식(儀式)이다.
[3] 시험 (10년 전 가을의 일기, 2016.10.27.)
모의고사 치는 날은 아침부터 바쁘다. 시험지를 옮기고, 안내 방송을 하고, 여러 가지 일정을 칠판에 기록한다. 휴대폰을 수거하고, 주의 사항을 알리고, 시험 잘 칠 것을 격려한다. 감독 시간표를 확인한다. 또 무엇이 있을까. 학년 모의고사 담당을 맡은 후, 시험 치는 사람의 입장에서,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의 입장으로 바뀌어 본다. 올해만 네 번째 일이었지만, 10년을 넘도록 수험생의 입장이어서, 아직도 낯설고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기분이다.
본령이 울리면 아이들은 시험 문제를 푼다. 필기구가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가, 플라스틱 지붕 아래 소낙비 소리처럼 요란하게 들려온다.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밑줄을 긋고, 단서를 남기는 하나하나 표정들이 나를 초조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느 때의 나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언제나 문제를 풀고 있었던 20대의 나를 기억해 내고, 지금의 모습에 안도한다. 지금도 여전히 평가받으며 누군가는 나를 시험하지만, 적어도 수험생은 아닌 지금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수험생 시절에는, 가을이면, 바람이 쌀쌀해지면, 마음의 수은주도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시험이 다가올수록 다그치지 못한 지난 1년을 후회해야 했고, 나를 다그치도록 만드는 나의 환경과 세상을 원망해야 했다. 줄어든 모집 정원을 보면 마음이 내려앉았고, 때로는 늘어난 정원을 보고 기대에 부풀기도 했다. 정해진 궤도를 공전하는 소행성처럼, 시험이란 행성 주변을 돌고 도는 기분이었다.
얼마 전에, 재수 학원에서 만난 형의 글을 인용한 옛날 일기를 읽었다. 오랫동안 다른 사람이 만든 정답 속에서 살아온 대신, 앞으로는 그런 세상에 자기가 묻고 자기가 답을 만들며 살아가겠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그 형은 세 번 만에 명문 법대에 갔고, 서른에 훌륭한 판사가 됐다.
나의 인생도 그처럼 뜨거움이 있었으면 좋겠다. 거룩하고 숭고한 꿈이 아니어도, 나에게도 정답이라 할 수 있는 세계가 있었으면 좋겠고 그런 목적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수험 생활이 멎으면 그리 살리라 했던 모습으로, 타의로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고,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로 설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나의 삶은 그런 것들을 위해 노력하고 뜨거워지는 삶이었으면 하고, 그런 방향으로 불고 불어 갔으면 한다.
[4] 인간의 조건
사전에 의하면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자유’라 한다.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의식을 가진 인간이 가진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누구나 스스로의 마음에서 비롯하는 욕망을 구속이나 제한 없이 한껏 충족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무한한 자유를 누리기엔 인간의 삶은 한없이 짧고, 생의 조건은 더없이 한정적이다.
유치환 시인은 인간이 가진 실존적 욕망과 한계를 「깃발」이란 시를 통해 표현했다. 깃발은 깃대 끝에 묶여있다는 그 존재 조건에 의해 바람에 나부끼고, 또 그리하여 푯대 끝을 벗어나지 못한다. 시인은 인간을 실존적 조건이라는 깃대에 묶인 하나의 깃발로 인식했다. 시인에 의하면 인간은 인간이기에 자유와 같은 이상적 가치를 추구하지만, 또 인간이기에 완전한 자유에는 도달할 수 없는 존재로 파악된다.
나는 철학적 수준에서 유치환의 고뇌를 깊이 있게 이해하지는 못한다. 다만 아침의 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근래의 아침이나, 시험의 궤도를 전전했던 10년 전의 수험 생활 가운데 느꼈던 결핍과 바람으로 그것을 짐작할 따름이다. 그러한 일렁임은 자유를 꿈꾸는 마음의 나부낌이 아닐까 한다.
아마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겠지만 유무형의 얽매임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운 삶은 없을 것 같다. 실존적이라기엔 민망하지만, 소시민이나 일상인으로서 해결해야 할 생의 과업들은 다양한 형태로 나를 구속하고 억압할 것이다. 지금도 아들 노릇, 남편 노릇, 아빠 노릇, 선생 노릇, 친구 노릇을 잘하는 일이 여간 버겁지 않다.
그러나 구속이라 표현한 다양한 구실과 노릇을 두고 불평은 하지 않으려 한다. 선택하고 선택 된 나의 삶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편이 좋을 듯싶다. 다만 가끔 자유를 갈망하는 바람이 마음속에서 세차게 불어올 때, 마음의 기상을 세심하게 읽는 태도 정도는 가지고자 한다. 내 바깥의 것으로 나로서의 삶이 송두리째 침식되지 않을 수 있게.
그런 정도의 태도는 온전한 자유보다는 여유에 가깝게 느껴진다. 나는 지금 자유롭기보다 좀 더 여유롭고 싶은 것 같다.
(2024.5.9.)
※ 대구 글쓰기 모임 '마음씀'에서 '해방'을 주제로 적은 글입니다. 유치환의 「깃발」이 구속과 해방 의지를 다루고 있어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