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창시절 그리고 지금 (함민복 「가을」을 읽고)
[1] 프롤로그: 함민복, 「가을」
당신 생각을 켜 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2] '가을'의 추억
한 시간째다. 몇 줄의 글을 쓰고, 마음에 들지 않아 지우기를 수십 번이다. 모래사장을 넘실거리는 해변의 파도처럼, 검고 굽은 선들이 화면의 얼마만큼을 채우고 물러난다. 문장의 파도 속에서 부질없는 생각들이 휩쓸려간다. 문장과 기억을 고르고 고른 끝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인생도 기억도 따지고 보면 공수레 공수거다.
마감을 통보받은 새벽은 늘 이 모양이다. 게으르지만 욕심이 많은 인간의 말로다. 때로는 잘 쓰겠다는 욕심보다, 꼭 쓰겠다는 책임이 문장을 나아가게 한다. 오늘도 뒤늦게 욕심을 내려놓고, 책임을 떠올리며 문장을 이어 간다.
조급한 새벽을 불평하진 않겠다. 초저녁엔 딴짓을 많이 했다. 이사를 했으니까 글을 쓰기 위한 최적의 동선을 세팅해야겠어.라고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 전선이 보이면 좀 그렇잖아. 하고 선을 정리했다. 참고할 만한 책을 얹어둘 공간이 필요할 것 같아. 하고 잡기를 치웠다. 그러고 나니 갑자기 피곤했다. 맑은 정신으로 글을 쓰는 게 좋지 않겠어. 그리고 한숨을 잤다. 좌초되듯 궁지에 몰린 새벽은, 좌초가 아닌 자초였다.
요행인지 다행인지, 잠에서 깨어난 후 시 한 편이 생각났다. 함민복 시인의 「가을」이었다.
“당신 생각을 켜 둔 채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학창 시절 백묵으로 「가을」을 판서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중학교 1학년이었다. 이런 시도 있어. 하시면서, 시란 녀석을 친근하게 생각하라고 당부하신 날이었다. 델리스파이스의 노랫말처럼 중1 때까진 늘 첫째 줄에 앉았던 앉았던 내가, 그 선생님을 좋아하게 된 순간이었다. 애석하게도 그분이 하신 수업 내용이나 다른 추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선명하게 판서된 한 줄의 시구, 그리고 그보다는 흐릿한 설렘의 기억이 지금 남아 있는 전부였다. 그러나 그것은 초저녁의 단잠 속에서 생각을 켜 두고 떠올릴 만큼 소소하지만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3] 나도 소소한, 어쩌면 아름다운
당신 생각을 켜 놓은 단잠을 자고 나서, 문자 한 통을 읽을 수 있었다. 스승의 날을 넘겨 인사드리는 일이 죄송하다며, 여건이 된다면 7월에 보면 좋을 것 같다는 7년 전 졸업생의 문자였다. 매년 녀석이 물어 안부를 주고받기를 7년째, 이제 아가씨가 다 된 그 아이와 성인 대 성인으로 교유한다. 나는 그 아이와 교유하는 일이 머쓱하지만 감사해서, 그 시간이 길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같은 해의 졸업생 가운데 한 명은, 내게 또 다른 방식으로 안부를 물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한 그녀는, 의과 국시를 합격하여 드디어 의사 자격을 갖추었다고 했다. 학창 시절부터 비범했던 그녀의 안부와 소식을 들으며 나는 늘 경외감을 느낀다. 학생을 통해 배운다는 말을 그녀를 통해 실감한다. 의료계의 문제들로 취업을 유예한 그녀는, 그 시간마저 허투루 쓰지 않고 기초의학을 공부하는 데 매진한다고 했다. 첫 월급을 받으면 스테이크를 대접하겠다는 그녀의 인사가 과분하지만 고마운 기분이었다.
오늘 오후에는, 휴가를 나왔다는 2년 전 졸업생이 다녀갔다. 백령도에서 해병대로 근무한다는 녀석의 얼굴은 작년과 달리 밝아 있었다. ‘다’나 ‘까’로 맺음 되는 종결 표현을 유려하게 사용하는 그의 말투와 한껏 당당해진 걸음걸이, ‘어서 전역하려구요’에서 ‘부사관을 해볼까 해요’로 바뀐 녀석의 태도 변화는 성장일까 변심일까 알 수 없었다. 나는 녀석이 오늘은 웃을 수 있어서, 내가 그의 웃음에 교감하고 공감할 수 있어서 그게 좋을 따름이었다. 전역이든 임관이든 다음 그의 소식도 같이 나누고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나는 그들을 고마운 존재로 여긴다. 나는 아직 나를 잊지 않은 그들의 마음이 매번 감사하다. 그들과의 교유를 통해 내 교직 생활이 아주 잘못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안도를 느낀다. 그러나 그 충만한 감정만큼, 차츰 서먹해지며 잊히는 순간이 올 때면 쓸쓸해진다. 내가 알던 모습과는 달라져 녀석들에게 더는 내어줄 것이 없어지는 일을 걱정한다. 더 이상 그들과 교유하지 않는 날에 느끼는 허전함이 작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의 소멸은 막을 수 없다. 그리고
기억의 소멸 역시 막을 수 없다.
내가 갖고 있는 학창 시절의 기억들은 대개 드문드문, 흐릿흐릿하다. 한때의 전부였던 선생님, 친구들의 얼굴과 이름이 더 이상 또렷하지 않다. 기억의 지형은 날이 갈수록 불분명해진다. 그것은 마치 이상기후로 침식되는 동해안의 모래사장 같은, 혹은 거의 가라앉기 직전의 폴리네시아의 군도와도 같은 풍경이다. 잊히는 것만큼이나 잊는 것 역시 서러운 일이다. 더 이상 지나간 일로 마음이 일렁이지 않을 때, 생의 부피가 줄어든 것만 같은 상실감을 느낀다.
기억이든 망각이든 그 모든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인생의 섭리다. 비록 잊혔거나, 잊히고 있거나, 잊히더라도, 한때의 시간 속에서 봉우리처럼 우뚝했던 나의 선생님, 나의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그것은 잊힐지언정 무의식 아래 해저 지형처럼 현저하게 남을 것이다. 나는 소멸이라는 섭리 앞에서 더는 쓸쓸해 않기로 한다. 그리고 오늘의 풍경에 충실하기로 한다. 다음 주에는 좀 더 열심히, 수업을 준비해야겠다.
[4] 에필로그: 박○○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20년 전, 선생님의 국어 수업을 듣고 설렜던 ‘정호’라는 아이입니다.
20년 전 학생이었던 저는, 어쩌다 보니 선생 노릇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때 수업하시던 선생님의 나이를 훌쩍 넘어 편지를 쓰고 있지만, 열네 살 중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 드네요.
그러니까 이것은 열네 살 학생의 마음으로 쓰는, 서른일곱 선생의 편지라는 생각입니다.
“당신 생각을 켜 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함민복 「가을」
지금도 학생들 앞에서 이 시를 판서하시며 시의 친근함을 설명하고 계실까요?
아니면 지금은 교단을 떠나 계실까요? 떠나 계신다면 어떤 모습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실까요?
선생님께서 전하신 시와 수업이 저에게는, 그리고 학생들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열넷 학생의 마음으로 여러 가지 물음을 철 없이 물어봅니다.
닿지 않을 물음이지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을 떠올리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웃음 가득할 수 있는 삶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쨌거나 저에게는 고마운 선생님이시니까요.
기억 속에서 내내 아름답고 싱그러우신 모습이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판서하신 그 한 줄의 시가 어쩌면 저를 교단으로 이끌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선생님처럼 먼 훗 날, 한 명의 학생에게라도 설렘이나 고마움으로 기억될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정호 드림 -
(2024.5.22.)
※ 대구 글쓰기 모임 '마음씀'에서 '학창시절'을 주제로 쓴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