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를 추억하며
[1] 결핍
어린 시절 엄마와 놀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유년기의 집을 회상하자면, 기형도의 시처럼 텅 빈 공허함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어두운 광장처럼 넓고 쓸쓸한 마루와, 하여 메아리처럼 웅얼거리던 TV 소리, 나를 염려하여 두고 간 차갑게 식은 간식 소쿠리들도 떠오른다. 나는 소쿠리에 놓인 감자나 옥수수 같은 것을 까먹으며 엄마를 기다리곤 했다는 기억이다.
엄마는 늘 일하느라 바빴다. 아니, 바쁘다기보단 고됐다. 엄마가 일을 시작한 것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다. 전태일 평전에 나올 법한 섬유공장에서 사춘기를 보낸 엄마는, 내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까지도 그 공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엄마의 공장은 3교대로 운영되었고, 주 5일 근무는 고사하고 휴일이나 연가 같은 개념도 희박한 시절이었다. 엄마를 종일 볼 수 있는 때는 3주에 한 번, 오전 근무조에서 야간 근무조로 교대되는 단 하루였다.
드물게 엄마와 나들이를 가던 날이면, 나는 무척이나 떼를 썼다고 한다. 하루는 모든 아이들이 귀가한 썰매장에서 바닥이 꽁꽁 언 신발을 신고 끝끝내 폐장 시간까지 썰매를 놓지 않아 애를 먹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나는 이제야, 그때 내가 떼를 쓴 이유와 엄마가 나를 다그치지 않은 이유를 안다.
나는 철이 없어서 모든 엄마는 대개 집에 없거나, 집에 있는 동안에는 자는 줄로만 알았고, 늦게나마 철이 든 때는 엄마를 탓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때문에 나의 결핍을 원망한 일은 없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렵의 쓸쓸함은 지금도 지울 수 없다.
[2] Die Hard but Nothing Lasts Forever.
그 시절 많은 아이들이 그랬듯이 나도 TV를 좋아했다. 케이블이라는 게 막 보급되던 시절이었고, 나로서는 엄마에 대한 결핍을 해결하는 수단이었다는 생각이다. 엄마도 그런 내가 애처로웠는지 딱히 TV 보는 일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라면 몇 번이고 돌려볼 수 있었다.
만화에서 예능, 예능에서 드라마, 드라마에서 영화로. 성장기를 따라 나의 시청 취향은 달라져 갔는데, 고등학교 무렵에는 영화를 무척이나 많이 봤다. 저걸 또 보냐. 누나가 구박하곤 했지만 나는 꿋꿋했다. 특히 좋아하던 영화는 다이하드3였다. 영화는 뉴욕 경찰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 역)이 말 그대로 죽도록 고생하여(Die Hard) 연방준비은행의 금괴 털이범을 처단하는 이야기였다.
이걸 또 보냐. 나조차도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어느 장면에서 시작했건 마침내 금괴 털이범을 처단하는 순간까지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엔딩에 이르러서는 마치 내가 금궤를 회수한 경찰이나 된 것처럼 뿌듯해지는 기분이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오랜만에 다이하드를 소개했다. 1편, 2편, 3편 요약본을 시청하고, 애피타이저로 나무위키를 읽었다. 영화의 원작 소설이 있는데 그 제목이 영원한 것은 없다(Nothing Lasts Forever)라든가 하는 이런저런 여담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웬걸, 브루스 윌리스가 치매를 앓는다는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2년 전에는 실어증으로 말을 잃었고, 어느 때부터 시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으며, 지금은 사람들을 거의 알아보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원작 소설의 제목처럼 야속한 세월의 섭리 앞에서 다시 한번 쓸쓸해졌다.
[3] 기억문답
기억의 지형은 날이 갈수록 불분명해진다. 그것은 마치 이상기후로 침식되는 동해안의 모래사장 같은, 혹은 거의 가라앉기 직전의 폴리네시아의 군도와도 같은 풍경이다. 잊히는 것만큼이나 잊는 것 역시 서러운 일이다. 더 이상 지나간 일로 마음이 일렁이지 않을 때, 생의 부피가 줄어든 것만 같은 상실감을 느낀다.
- 마음씀에서, 2024.5.
얼마 전에 쓴 기억에 관한 글을 잠깐 읽었다. 기억이란 뭘까. 나는 왜 기억에서 소멸을 떠올리는 것일까. 기억은 왜 더없이 소중하다가, 덧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기억의 풍경은 왜 풍화하고 침식하는 것일까. 소멸하는 것은 왜 쓸쓸하고 마는 것일까. 나는 뒤집어진 모래시계처럼 줄어드는 밤의 부피를 실감하며 기억에 대해 묻고 물었다. 묻고 물어도 알 수 없는 물음을 잠시 미루어 둔다.
창가에 서서 가뭇없이 깊어가는 하늘을 본다. 언젠가 밤하늘의 별빛은, 수억 년 전 수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쏘아진 것이라는 어느 책의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그리고 그 별빛이 빛나던 자리에 지금은 별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부연도 함께. 그런 과학적 논리와 무관하게 별빛은 여전히 아름답고 찬란한 것이었다.
나는 느닷없이 우주론을 떠올리며, 기억 역시 오래전 나라는 항성이 발(發)한 별빛 같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끝끝내 사라지거나 잊힐지언정, 그런 섭리와는 무관하게 기억은 여전히 아름답고 찬란한 것이었고, 그때의 나는 분명히 반짝이고 있었으니까.
(2024.7.18.)
[4] 기억 외전, 어느 일기에서
그제 저녁에는 하늘이 흐렸었다. 도서관을 나서 친구 차를 얻어 타고 동성로로 가는 길에, 친구는 '여자 사람' 만나는 나를 배려하여 하나뿐인 우산을 내 가방에 넣어 주었다. 그런 까닭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흐린 시내 거리를 걷는 동안에, 옛날 옛적 기억이 떠올랐었다.
조금은 틀어진 기억일 수도 있지만, 무렵은 늦은 장마로 심심치 않게 비가 내리던 계절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날 역시 느닷없이 내리던 비와, 어느새 내 옆에선 그 친구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빈손으로 사대(師大) 입구에 서 있던 내게, 뜻밖에 우산을 같이 쓰자던 그 친구의 호의와, 그때 걸었던 북문의 거리를 잊을 수 없다.
젖어드는 한쪽 어깨를 구겨 넣지 못했었지만, 그럼에도 맞닿아 있던 반대편 어깨의 부끄러움과, 그때의 기분들은 정말이지 잊을 수 없다. 그때만큼은 정말로 시간이 멎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마스트 옆에 양팔을 벌리고 선 어느 영화의 두 주인공처럼, 보잘것없는 내 인생에도 기억해야 할 순간이 있다면 그런 때가 아닌가 한다. 그 친구에게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겠지만, 나에게는 20대란 음반의 '골든히트*'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행히도 그제는 비가 오지 않았다.
*골든히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인용한 표현. 어떤 음반에서 가장 대중들에게 명곡으로 기억 남는 단 한 곡처럼, 인간의 생애에서도 시절을 대표하는 단 하나의 기억이 남아 있기 마련이라는 통찰이 담겨 있다.
(20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