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대한 습작시 몇 편
[1] 프롤로그
누구나 바다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있다.
주머니 속에 감추어 둔 몽돌처럼
속 깊은 곳에 감추어 두고 만지작만지작거리는
그러다 잊히고, 그러다 떠오르기도 하는
바다의 내음을 기억하는 추억이 있다.
[2] 후포항
“정호야, 바다에 가자.”
새벽 시장에는 인생이 있다며
아버지는 낙방으로 세월을 허송하는 나를 일으키셨다.
적요한 어둠에 싸인 7번 국도와
성에 낀 차창으로부터 시려오던 이마를
이마보다도 차갑게 시려오던 마음을 잊을 수 없다.
오늘은 배가 뜨지 않아요.
난감해하던 상인과, 아버지, 그리고 나의 표정도 잊을 수 없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폐장이었던 시장에서 내가 보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언젠가는
삶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거나,
혹은 예측할 수 없는 무엇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오늘은 유독
난감하고 머쓱해하던 아버지의 표정이
나를 향한 사랑과 위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3] 토끼
2020.12.24.
우리는 광안리에 갔었지.
당신의 발에 토끼를 수놓은 슬리퍼를 신겨 주었지.
수 놓인 토끼처럼 해사하게 웃던 당신의 얼굴은 잊을 수 없지.
2024.07.31.
우리는 다시 광안리에 갔지.
토끼를 수놓은 슬리퍼 대신,
토끼를 닮은, 그러니까 당신을 닮은 딸아이와 함께 바다에 갔지.
[4] 바다
“바다”라고
두 돌이 채 안 된 딸아이가 말했다.
그것은 [바다]라기보다
사실은 [빠다]에 가까운 것이었고
그것이 [바다]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빠다]에 온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했고, 대견했다는 생각이다.
피서지에서 피서(避暑:더위를 피하다)하지 못했지만,
폐장이었던 시장처럼,
피서하지 못한 피서도,
우리에게
그리고 아이에게
몽돌 같은 추억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여름이었다.
(2024.8.4.)
※ 대구 글쓰기 모임 '마음씀'에서 '바다'를 주제로 쓴 짧은 글 몇 편을 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