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연작

'신발'에 대한 습작시 몇 편

by 박정호

[1] 반 고흐의 구두


몽마르트 언덕으로부터

볕이 쏟아지던 날,

파리의 작은 작업실에 앉아

한 폭의 그림을 그린다.


모시듯 얹어 둔 구두 한 켤레가

묘하게 그리는 화가와 닮았다.

성한 곳 없이 닳고 닳고 닳은

신이었고, 발이었던 것


신이었고 발이었던,

어떤 것을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너는

닳고 닳고 닳아서

닮고 닮고 닮은

나의 일부였구나.

아니, 또 다른 나였구나.


그래서 고흐의 “구두”는

그 자신의 자화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날의 작업은

거울을 놓아두고

스스로의 얼굴 형상을 붓질하듯이

성한 곳 없는 내면의 낯을

캔버스에 채우고 채우는 일이 아니었을까.




[2] 고무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장지(葬地)로 모시기 전에 집에 들렀다 가셔요."


장례지도사의 말을 따라

영정 사진을 안고 마지막으로 집 안팎을 한 바퀴 돌았다.


노환으로 기억을 잃으신 할아버지는

갑작스러운 영정(影幀) 앞에 영문을 모르고 곡(哭)을 하셨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따라 우셨다.


나는 낡은 현관에 천연히 놓인

고무신 한 짝에 눈물이 났다.


그 천연한 한 짝이

가슴에 품은 영정보다도 더 할머니 같았다.


신(身)은 없이 신으로 남은 할머니께선

사는 일과 사(死)는 일*은

그렇게 멀고, 이렇게 가깝구나.

말씀하셨다.


* 사는 일과 사(死)는 일: 이현호, 「묵음」 중에서 인용함



[3] 아기 신


잠이나 잘까 하고

현관을 본다.


나의 기척을 감지한 센서등이 불을 밝히고

핀조명 같은 빛이 내린 자리에

우리 아기의 신발이 빛난다.


어른 남자의 손가락이 두 개쯤 들어갈까 싶은 작은 신발이지만

우리 아기의 발은 씨앗같이 작아서 꼭 들어맞는다.


나는 아이의 발에 포장하듯 신을 신기는 순간이 좋다.

아이는 신을 신으면 놀이터로 나가는 줄을 알아서 신을 신기도 전에 벌써 들뜬다.

그런 아이의 웃음을 보는 일은 젊은 부모만 가질 수 있는 특권 같아서 좋다.



언젠가 아이의 씨앗 같은 발이 자라서

아내를 닮은 예쁜 구두를 신게 되는 날,

하여 나의 품을 떠나게 될 어느 날이 올 것을 안다.



나는 민들레 홀씨처럼 떠나가는 딸이

나의 울타리 밖에서 꽃 피우는 모습에

서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아버지가 되었으면 한다.

그것이 늙은 부모가 가져야 할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오늘은 늙지 않았으니,

내일도 놀이터에서 늙지 않은 부모의 노릇을 실컷 해 주어야겠다.


(2024.8.10.)


※ 대구 글쓰기 모임 '마음씀'에서 '신발'을 주제로 쓴 글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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