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서문(書文)의 서문(序文)

나는 누구인가

by 박정호


[1] 프롤로그: 사람이 책이라서요.


"사람이 책이라서요."


대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한 권의 책을 읽는 기분이라는 그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라는 사람을 밝혀보라는 이번 주의 주제를

그래서 역(逆)으로 해석해 본다.


사람이 한 권의 책일 수 있다면,

한 권의 책을 닮은 한 타래의 글도

한 인간의 면모를 부분적으로나마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통해

식민시대를 살아간 청년의 맑은 마음을 가늠할 수 있는 것처럼


나는 나에 대한 글쓰기를 통해

우물을 보듯 마음을 본다.


오늘의 글쓰기는

나라는 서문(書文)의 서문(序文)이다.



[2] 가르치다


아마도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가르친다.


나의 수업에서

시(詩)는 시시해요, 라거나

소설은 거짓이잖아요, 라는

그래서인지 시시함과 거짓을 배워가는 학생을 보며


가르치는 일은 때로 그르치는 일이라는 것을

이따금 느낀다.


그러나 그 어떤 시시함으로부터

그리고 그 어떤 거짓으로부터

누군가는 배우고

또 깨우친다


사실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르치는 것이더라도

깨우침은 가르침과 그르침을 가려 오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므로 나 역시 생(生)의 선(先)과 후(後)에 관계하지 않고

가르침과 그르침으로 깨우치고자 한다.



[3] 씀에세이


데드라인은 목요일입니다.


마음씀에서 씀에세이로 그리고 호스트가 바뀌었지만, 마감을 앞둔 사투는 바뀌지 않는다. 누구도 글을 대신 써 줄 수 없다는, 쓸수록 명징하게 깨달아지는 [쓰는 인간*]이 쓰고 살아야 하는 숙명 때문에 그럴 것이다.


[나라는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라는 주제를 받고 생각이 깊어진다. 나는 뭘까. 나는 누구일까. 빈 종이에 나와 관련된 단어를 쓴다. 대중 없이 쓰인 말들이 제각각이라 어지럽다. 나는 그 말들을 모아 엉성하게나마 계통을 세워 본다. 나의 삶은 공적 의무와 사적 의무, 그리고 취미 영역으로 나누어진다.


세 갈래로 나누어진 삶의 영역들이 「삼국지연의」의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처럼 아슬하게 균형을 이룬다. 할애하는 시간으로 따진다면 공적 의무는 위(魏), 사적 의무는 오(吳), 취미 영역은 촉(蜀)에 해당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국력과 반비례하여 연의의 서술이 촉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듯, 나의 마음도 취미의 영역에 기울어 있다.


나의 취미는 [씀에세이]다. 누군가는 클럽에서 몸을 흔들고, 누군가는 헬스장에서 쇠질을 하듯, 책상 앞에서 글을 궁리하고 생각을 터놓는 것이 나의 취미다. 취미가 뭔가요. 글쓰기요. 그러면 [너답다]는 표정이 대답처럼 돌아온다. 처음에는 그 반응에 어리둥절했으나, 이제는 개의치 않는다. 당당해서 멋진 클럽 죽순이처럼, 나도 당당한 씀돌이이고 싶은 마음이다.


[씀에세이]는 글을 부려 노는 클럽이다. [씀]을 하는 [에세이] 모임이고, 우리는 [씀에] 대한 [세이]를 나눈다. 어떤 필친이 말했다. 고통스러운 글쓰기를 마치고 나면, 금요일 모임의 입장권을 얻어 낸 기분이 듭니다라고. 나는 지금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입장권을 갖기 위해 정말이지 열심히 쓴다.


글을 쓰면 뭐가 좋아요라고들 많이 묻는다. 글을 씀으로써, 그리고 말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용과 가치에 대해 다시 글을 쓴다해도 분량이 적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짧게 대답한다.


[재밌어요] 라고. 그게 취미의 본질 아닌가.


한 주에 한 편을 쓰고, 두 주에 한 번 모여 대화를 나눈다. 나의 삶은 이 규칙적인 씀과 말을 기점으로 너울거린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재미]를 위해.


* '쓰는 인간'이란 표현은, '작가'가 아니라, '쓰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하는 은유 선생님의 표현을 빌렸다.

(은유 선생님은 「올드걸의 시집」을 시작으로 여러 편의 책을 쓴, 지금도 쓰는 사람이다.)



[4] 에필로그, 「오 분간」


이 꽃그늘 아래서

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

(중략)

이 그늘 아래서

어느새 나는 머리 희끗한 노파가 되고,

버스가 저 모퉁이를 돌아서

내 앞에 멈추면

여섯 살배기가 뛰어내려 안기는 게 아니라

훤칠한 청년 하나 내게로 걸어올 것만 같다.


- 나희덕, 「오 분간」 중에서


어느새 제법 말이 유창해진 나의 아이를 보며,

나희덕의 시구를 떠올려 본다.


비단 아이를 기르는 일뿐만 아니라

판서를 하다가 혹은 글을 쓰다가

나 역시 조금씩 늙다가 또 상상처럼 금새 희끗해져서

지긋한 노인이 되어 있을 것 같다.


(20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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