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만난 사람들'로부터 나를 반성하며
[1]
눈이 내린다. 올해 들어 벌써 두 번째 폭설(暴雪)이었다. 아이는 지난번처럼, 오늘도 어린이집 마당에서 눈을 맞으며 놀고 있을까. 나는 눈사람을 빚고 썰매를 타며 해사하게 웃을 아이의 얼굴을 떠올린다. 적설(積雪)로 덮인 너머의 운동장 풍경처럼, 출근하여 느끼는 나의 불평도 잠긴 듯 잠시 가라앉는다.
교사(校舍)로 이어지는 인도에는 그 어떤 발자국도 보이지 않는다. 오늘 뭐 할까. 아마도, 아무도, 출근하지 않았을 건물을 향하다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뽀득, 뽀드득]. 몸의 무게로 내려앉는 설로(雪路)의 파열음이 새삼 새롭다. 가끔은 이렇게 걸음을 늦추며 내딛는 발의 감촉과 소리에 귀 기울이듯, 인생을 늦추며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좋을 듯싶다.
[2]
역시나 아무도 있지 않은 교무실에 들어서며 전등과 난방기를 켠다. 온기가 퍼지려면 아직 한참의 시간이 남아 있다. 나의 머릿속도 바람이 든 듯 서늘한 기분이다. 교무실도 머릿속도 일을 하려면 예열이 필요하다. 나는 읽지 못한 공문과 메시지를 읽으며 머리를 덥힌다. 머릿속도 교무실도 조금씩 뜨끈해진다.
적설이 걷히는 풍경처럼 새삼스럽지 않은 일상의 윤곽이 점차 드러난다. 나의 일상은 학생과 관련된 공무(公務)다. 내가 담당한 공무의 풍경은 바쁜 와중에 한가롭고, 또 권태로운 모습이다. [학교 일이란 게 원래 그래]라는 선배들의 말을, 그래서 조금씩 수긍해가는 편이다. 참도, 거짓도 아닌 생활기록부의 기록들을 점검하며 그렇게 생각한다. 아마도, 점검을 위해 오늘 방문한다는 장학사 역시 비슷한 생각을 가질 것이다.
[3]
점심을 먹는다. 내가 장(長)을 맡은 부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회식이었다. 서로 말한다. 먼저 드세요. 소담하게 차려진 음식을 두고, 모두 순서를 미룬다. 내가 말한다. 장유유서(長幼有序) 합시다. 쉰 살을 넘은 실무원 선생님이 첫술을 뜬다. 적설을 걷어내듯 음식을 덜어낸다. 대화의 윤곽도 조금씩 드러난다. 대화의 상(床)도 소담하지만 풍성하다.
채 한 시간을 못 지나 실무원 선생님이 수저를 내려놓는다. [오늘 면접을 도와드려야 해서 일찍 가봐야 할 것 같아요.] 2년 만의 첫 회식이 그렇게 파한다. 교무실로 돌아간다. 면접 준비를 부탁한 다른 부장은 아직 오지 않았다. 대신, 낯선 여자분 하나가 쭈뼛하게 우산을 털며 교무실 앞에 서 있다. 먼 길을 걸어오셨을까. 바람을 맞은 듯 낯빛이 붉다.
[4]
혹시, 면접 오셨나요.
네.
여기, 따뜻한 물 한 잔 드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면접관은 아니지만 면접자에게 함부로 호의를 베풀지 못한다. 온수 한 잔이 내가 베풀 수 있는 호의의 최대치다. 사소한 호의에 몸 둘 바 모르고 고마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나도 모르게 안쓰러워진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안쓰러움을 그녀가 읽은 듯하여, 나는 다시 미안해진다.
대기실은 여기예요.
감사합니다.
대기실에는 정장을 입고 앉은 다른 면접자 한 명이 미리 기다리고 있다. 챙겨 온 지도안을 읽으며 수업 시연을 준비하는 그의 표정이 비장하게 느껴진다. 체증과 한파를 뚫고 늦지 않기 위해 아침부터 그는 서둘렀을 것이다. 그 모습은 오래전의 나였고, 어쩌면 지금의 나 역시 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비슷한 자리에서 직(職)을 얻기 위해 학교를 전전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5]
10년도 더 지난 겨울, 전역(轉役)을 했지만 아무 역(役)도 찾지 못했던 나날들의 쓸쓸함을 아직 잊지 못한다. 채워지지 않은 이력서를 보며, 어떤 방식으로도 쌓을 수 없던 이력의 공백과 적설처럼 쌓여가던 무직의 기간에 불안해하던 마음 역시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자조와 자괴로 점철된 청춘의 시간을 지나 중년으로 가고 있다. 나는 잘 살고 있나. 그리고 행복한가.
자문(自問)의 대답을 구하며, 나는 10년 전의 나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근]이라는 일상 속에서 [권태]를 느끼는, 그리고 그 모습을 수긍하고 마는 나의 모습이 조금은 부끄럽다. 언젠가 중년을 돌아봤을 때, 그때의 마음은 자조와 자괴로 점철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공무는 어쩔 수 없이 권태롭지만, 전역으로 깨달은바 군역(軍役)의 세월을 사랑한 것처럼, 나는 권태 속의 공무를 불행으로 여기지 않는다. 나는 선생이라는 공무로부터 얻어지는 즐거움을 때때로 사랑한다. 권태롭지만 하여 열심히 한다. 그리고 욕심을 버린다면 밥벌이로는 월급이 모자라지 않아서 처(妻)와 함께 벌이하면 여식(女息)을 포함한 가족이 굶지 않는다. 나는 굶지 않아, 글을 쓰고, 책을 내어 볼 궁리를 한다. 마흔이 다 되어 꿈이란 걸 가져 본다.
10년 전의 나에게 전할 수 있다면, 나는 이런 방식으로 권태를 해명하고 사과할 수 있을 것 같다. 해명이 변명이지 않을 수 있도록 열심히 살고, 열심히 써야겠다.
(2025.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