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성(矮星)의 꿈

일을 대하는 나의 태도

by 박정호


[1] 암묵


수능이 49일 남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중간고사를 치지요. 저는 시험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의 암묵적인 합의에 따라 아이들에게 자율학습 시간을 주었습니다. 공부의 몫으로 주어진 자율 시간에 아이들이 하는 일들은 다양했습니다. 대개는 졸음을 졸았지만 대견하게도 공부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몇은 휴대폰에 고개를 묻고 게임을 하거나 쇼츠를 보더군요. 그 아이들은 귀에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꽂아서 선생이 옆을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화면에 몰입해 있었습니다. 저는 개중 하나의 어깨를 지긋이 잡고 웃어 보였습니다. 아뿔싸. 언젠가 학습지도를 이유로 학생에게 폭력을 당했다는 뉴스를 보았던 기억이 언뜻 떠올랐습니다.


기척을 느낀 학생은 답례처럼 웃어 보이며 휴대폰을 넣었습니다. 공부에 대한 의욕은 크게 꺾인 녀석이지만 마음만은 삐뚤어지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요. 학생의 태도에 안도하고 말았던 저의 지도에 가책을 느꼈습니다. “그만하고 공부해.”라며 학생을 다독였지만, 다독이는 저의 말에는 그 어떤 진심도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네.”라고 답하는 학생의 말 역시 그랬습니다. 그 무미건조한 대화가 자습을 부여한 교실 속 암묵적 합의와 닮아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의 합의는 효율적인 학습이라는 대의가 아니라, 서로의 편의를 해치지 말자는 타협에서 비롯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러고는 교탁 옆에 작은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멋쩍은 손길로 책상 위를 정리하고 교재를 읽었습니다. 어떤 문제의 선지에서 연민이라는 문학 개념을 물었습니다. 밑줄 친 어구에는 화자가 대상을 연민하는 마음이 드러나는가. 그런 듯도 아닌 듯도 싶은 모호한 표현을 보며 저는 번민에 싸였습니다. 20년째 번민을 벗어나지 못한 스스로를 향한 마음은 연민일까요 아닐까요. 밑줄 친 문장을 어쨌든 연민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설지의 풀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소심한 반항심으로 책을 덮은 후, 그제야 휴대폰에 고개를 묻고 쇼츠에 몰입한 아이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2] 허송


노트북을 켭니다. 교재를 연구하기 위해서라고 말을 하면 좋겠습니다만 오늘은 일할 의욕이 생기지 않습니다. 잠시 동안만 월급 루팡 짓을 해볼까 합니다. 직접 훔치지는 못해도 급여에 합당한 노동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월급을 챙깁니다. 일거리를 앞에 두고 하는 일탈은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LA-Dodgers에서 18년을 뛰었다는 클레이튼 커쇼*가 은퇴한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옵니다. 저보다 한 살 어린 대투수의 여정을 우연찮게 지켜본 일은 대단한 행운이었습니다.(류현진의 MLB 진출 덕분이지요.) 저도 그처럼 눈시울을 붉히며 은퇴할 날이 올까 하는 생각에 잠시 젖어 봅니다. 머나먼 미래의 일이라는 생각이지만 한편으로는 환몽 소설의 한 장면처럼 한나절의 꿈과 같이 지날 세월이라는 생각도 함께 듭니다.


쇼츠를 봅니다. 사자 갈기처럼 덥수룩한 수염으로 덮인 지금의 얼굴과 달리, 20대 커쇼의 낯은 깨끗하게 면도가 되어 있습니다. 말끔한 그의 얼굴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당대 최고의 투수였던 그의 구위(球威)입니다. 그가 던지는 커브볼*처럼 그의 인생도 정점을 지나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디가 정점이었는지 알 수 없는 저의 인생과 달리 그의 전성기는 그야말로 눈부셨습니다. 은퇴 이후 그가 살아갈 인생의 궤적은 어떤 것일까요. 그리고 은퇴를 향해 가야 할 제 인생의 궤적은 어떤 것일까요. 뜬금없이 꼬리를 물고 따라붙는 질문처럼, ‘커쇼 스페셜’에 이어 뜬금없이 추천되는 영상 하나를 눌러 봅니다.


“과학을 보다*”의 영상을 많이 보아서 그랬을까요. 유튜브 알고리즘의 추천 영상은 별의 일생에 관한 것입니다. 몇 번이고 다시 본 내용이지만 항성 진화(Stellar Evolution)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우주를 부유하는 성간 물질이 원시 항성이 되고, 원시 항성이 핵융합을 거듭하여 주계열성이 되며, 천제가 가진 질량과 온도에 따라 저마다의 형식으로 종말을 맞이하는 항성의 생애 주기는 인간의 그것과 매우 닮았습니다. 유시민은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에서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 제목을 인용하여 별과 인간의 닮음을 말했습니다. 자신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과학적 탐구심을 펼치기보다는 인문학적 상념을 떠올리고 만다는 자기 고백적 진술을 하였습니다. 사유의 깊이는 다를지언정 뼛속까지 문과인 저 역시도 그렇다는 생각입니다.



[3] 반성


10년도 더 지난겨울, 전역(轉役)을 했지만 아무 역(役)도 찾지 못했던 나날들의 쓸쓸함을 아직 잊지 못한다. 채워지지 않은 이력서를 보며, 어떤 방식으로도 쌓을 수 없던 이력의 공백과 적설처럼 쌓여가던 무직의 기간에 불안해하던 마음 역시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자조와 자괴로 점철된 청춘의 시간을 지나 중년으로 가고 있다. 나는 잘 살고 있나. 그리고 행복한가.

- 「어떤 해명」 중에서


지난겨울 ‘씀에세이’에서 쓴 글의 한 대목을 인용해 보았습니다. 선생으로 살아가는 저라는 별은 ‘전역을 했지만 아무 역도 찾지 못했던 나날의 쓸쓸함’ 같은 성간 물질에서 비롯한 왜성(矮星)*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저의 교직 생애는 원시 항성에 빗대어지는 수습기를 지나 교직 생활의 절정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주계열성에 가까운 상태겠지요. 가장 밝게 불을 밝혀야 할 경력의 중심기에서 잠시 의욕을 잃었던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듭니다. 학생과 주고받은 암묵적인 타협이나 번민으로 인한 체념이 저의 일상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저는 제가 가진 질량에 걸맞은 빛을 밝히는 항성이고 싶으니까요.


저라는 별은 MLB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클레이튼 커쇼나, 매번의 탈고가 베스트셀러로 이어지는 유시민과 같이 뜨거운 빛을 내뿜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들의 광채는 한 나라 안 혹은 국경을 넘어 동시대인들에게 두루 미칠 만큼 찬란하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하면 제가 당면한 일상의 문제는 보잘것없이 사소합니다. 저라는 별이 가질 수 있는 광량도 미미하겠죠. 그러나 저는 제가 가진 조건과 생활에서만큼은 따뜻하고 찬란한 인간이고 싶습니다. 선생이란 직업은 작지만 빛나는 꿈을 펼칠 수 있게 하는 조건입니다.


20-30년 년쯤 지난 어느 날 저도 퇴직이란 걸 하겠지요. 그때의 저는 백색 왜성*과도 같은 모습이 아닐까요. 핵융합이 끝난 별의 마지막처럼 소명을 다하였을 저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저는 커쇼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스타디움에서 박수를 받으며 은퇴식을 거행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제가 바라는 저의 뒷모습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저 저를 기억하는 몇몇의 학생들과 무렵까지 저를 지켜본 가족, 동료들의 격려를 받으며 교직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입니다.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그런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클레이튼 커쇼: 2008년부터 올해까지 LA-Dodgers에서 18년간 선수 생활을 한 MLB 야구 선수다.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선수다.

*그가 던지는 커브볼: 커브볼은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다. 커쇼가 매우 잘 던지는 구종이기도 하다.

*과학을 보다: 구독자가 280만 정도 되는 과학 유튜브 채널이다.

*왜성: 지름이 작고 광도가 낮은 행성

*백색 왜성: 질량이 크지 않은 별이 핵융합을 마치고 다다르게 되는 종말 단계. 이후 흑색 왜성을 거쳐 성간 물질로 흩어진다.


(2025.9.26.)






이전 09화어떤 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