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새바람같이는

사랑의 끝에 마주하는 마음의 풍경 (이영광, 「높새바람같이는」을 읽고)

by 박정호

[1] 프롤로그: 높새바람같이는

나는 다시 넝마를 두르고 앉아 생각하네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내가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내겐 지금 높새바람같이는 잘 걷지 못하는 몸이 하나 있고,

높새바람같이는 살아지지 않는 마음이 하나 있고

문질러도 피 흐르지 않는 생이 하나 있네

이것은 재가 되어가는 파국의 용사들

여전히 전장에 버려진 짐승 같은 진심들

당신은 끝내 치유되지 않고

내 안에서 꼿꼿이 죽어 가지만,

나는 다시 넝마를 두르고 앉아 생각하네

당신과 함께라면 내가, 자꾸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 이영광, 「높새바람같이는」

[2] 당신과 함께라면 내가, 자꾸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이별에 관한 단 한 편의 시를 꼽으라 한다면 오늘의 나는 이영광의 「높새바람같이는」을 고르겠다. 시를 읽는 마음은 해석이 아니라 공감을 위해 벼려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한 글이다. 어떤 당신과의 공교로운 마주침으로 사랑을 했던 일을 행운이라 할 수 있다면, 이별의 시기에 펼친 한 시선집에서 이 시를 마주한 것도 사사로이 넘길 행운은 아닐 것이다. 시선집을 펼쳤을 때 나는 청년 화자가 당면한 이별을 선명하게 그려보았다. 그리고 ‘넝마를 두르고 앉아 생각하네’에 이어진 다음 문장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내가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높새바람 부는 언덕에 앉아 넝마를 두른 어깨너머로 바람처럼 흩날려가는 문장이 발화되는 순간을 상상해 본다. 나의 삶은 당신과 함께 있음으로써 스스로가 좋아지던 시절을 지나, 당신이 부재함으로써 살아지지 않는 마음이 되어 파국으로 나아간다. 치유되지 않는 당신은 박제처럼 꼿꼿이 죽어간다. 당신의 존재로 인해 긍정되던 나는 이제 그의 부재로 인해 부정된다. 살겠다는, 혹은 살기 위해 잊겠다는 다짐조차도 스스로가 미워 세울 수 없는 나날들이 이어진다. 그 참혹한 절망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때로는 삶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지는 순간이 있다. 그러한 순간의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다. 이별의 순간을 지나는 삶이 바로 그렇다. 살아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배반하고, 결국 살아지는 삶. 그 속에서 일상의 끈을 붙들고 선 스스로의 가증스러운 얼굴을 기어이 견디고 납득하는 삶. 그러나 나는 가증스러운 납득의 시간을 지나 당신이 부재한다는 절망의 낯빛이 서서히 누그러지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이제는 서두의 문장과는 조금 다른 어조로, 같은 형식의 발화를 되뇐다.

“당신과 함께라면 내가, 자꾸만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높새바람같이는」의 시적 진술이 그러하듯이, 사랑과 이별의 순간 역시 수미상관의 반복이다. 당신이 부재한다는 절망으로부터 당신이 존재했었다는 희망을 발견한다. 그 사소한 깨달음이 사소하지 않은 위로를 건네주기에 마지막 문장은 더욱 빛난다. 나의 삶에서 그런 위로가 필요치 않게 된 것은 애석한 일이다. 그 애석함이 어떤 때는 사랑을 잃은 애석함보다 애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삶은 사랑과 이별의 수미상관으로부터 너무 멀리 나아간 듯싶다.

[3] 교직원 회의


개학 첫날이었다. “충천의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라는 가정통신문의 당부가 무색하도록, 아이들은 방전에 가까운 표정으로 졸음을 졸았다. 스무 해 전 나와 닮은 뒤통수를 보며 나는 깨우지도 깨우치지도 못하는 교사가 되어 무기력했다. 학생이 밉지는 않으나 학생과 대면하는 형식으로부터 느껴지는 권태와 무기력은 밉게 느껴졌다.

교직원 회의를 위한 단축수업은 그나마 위안이었다. 크지 않은 도서관에 소담히 모여 선생님들은 수다를 떨었다. 방학은 어땠느니, 가족은 어땠느니. 의도치 않게 엿들은 대화를 통해 나는 나의 청춘부터 황혼까지의 시간을 간접 체험했다. 저들의 대화 속에 내가 지나오고 지나가고 지나가야 할 인생의 통과의례들이 모두 들어있었다. 상영관 앞에서 결말을 듣고 만 관람객처럼 나는 서글퍼졌다.

교직원 회의의 전달사항은 회의에 앞서 엿들은 대화와 달리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개정된 법안과 학사일정에 대한 부장 선생님들의 안내가 이어졌고, 마무리 순서로 교감 선생님에게 마이크가 건네졌다. 주례처럼 길어지는 결언 속에서, 방전에 가까운 표정으로 졸음을 졸던 아이들의 심정이 새삼 이해되었다. 그리고 이제 끝인가 싶었던 순간, 그의 입을 통해 도저히 믿기지 않는 어떤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2월까지 근무하셨던, ○○○ 선생님께서 오늘 소천(召天) 하셨습니다.”

정전처럼 이어지던 잠깐의 정적과 정적 속에서 얼어붙었던 선생님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와 소천하다를 각각 주어와 서술어로 삼은 문장이 나타내는 사태를 현실적으로 떠올릴 수 없었다. ○○○가 지시하는 인물을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거나, 소천하다라는 동사의 의미를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잠깐의 정적 속에서 모두 그런 생각이었을까. 복전(復電) 작업이 서서히 진행되는 작업장처럼 조금씩 현실감각을 찾아가던 도서관에서 선생님들은 황망한 표정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4] 빈소


故○○○ 님, 42세 여성

故○○○ 님께서 8월 13일 별세하셨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모바일로 닿은 부고장을 읽고 빈소를 찾아갔다. 활짝 웃는 영정이 낯이 익어서 고인의 죽음이 차마 실감 나지 않았다. 헌화를 얹은 후, 고인의 남편과 조배(弔拜)-답배(答拜)를 주고받았다. 헌화처럼 머리가 하얗게 센 상주의 얼굴이 맑지만 초췌하여 안쓰러웠다. 건너편에 서 있던 고인의 딸아이들은 천진하게 슬픈 표정이었다. 나는 이른 나이에 아내를 잃은 남편과,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아이의 마음을 위로할 길이 없어 말을 잃었다. 나는 황망함에 압도되어 낯익은 문상객과도 말을 섞지 못했다.

빈소를 나섰을 때, 하늘은 맑고 해는 중천이었다. 때아니게 화창한 풍경을 보며, 마흔두 살이었던 고인의 삶도 더없이 눈부셨어야 할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인의 사인은 희귀암이었는데 병명을 안 날로부터 하나의 계절이 채 지나기도 전에 생을 마감했다. 급작스럽게 쇠약해가는 몸을 보며 느꼈을 고인의 고통과 두려움을 나는 감히 짐작하지 못한다. 고인의 마음을 고통이나 두려움 따위의 단어로 갈음하거나 가늠할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다만 나는 고인의 생이 마지막까지 강건하고 아름다웠다는 것을, 고인의 남편이 보낸 문상에 대한 답신으로부터 알 수 있었다.

“삼가 인사 드립니다. (중략) 고인이 투병 중에 그토록 갈망했던 평범한 일상을 하루하루 감사하며 씩씩하게 살겠습니다. 고인과 함께 꿈꾸고 계획했던 일들을 조금이라도 이룰 수 있도록 힘을 내겠습니다.”

- 고인의 남편이 보낸 답신의 일부

고인이 된 아내의 계정에 접속하여 조문객들에게 인사를 전하는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투병과 간병의 시간 동안 고인과 함께 갈망하던 일상을, 이제는 고인 없이 살아가겠다며 다짐하는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나는 고인과 유족을 추모하고 애도하겠다며 빈소를 찾았지만, 고인의 남편으로부터 오히려 많은 것을 배웠다. 그 어떤 슬픔으로도 일상은 영원히 중단될 수 없으며, 생은 오직 삶이 그치는 순간으로만 그쳐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고인의 남편이 쓴 답신의 내포 속에, 「높새바람같이는」의 마지막 문장이 담겨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202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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